<옥희의 영화>는 정말이지 대단한 영화다. 반복과 차이라는 홍상수 감독 고유의 주제를 이토록 확장시킨 영화는 없는 듯 느껴진다. ‘세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네개의 단편 모음’이라는 이 영화의 구성은 주제와 구조를 극명하게 드러내 끝난 뒤 보는 이를 잠시 동안 멍하게 만든다. “많은 일들이 반복되면서, 또 어떤 차이를 가지는 이 인생이라는 게 뭔지는 끝내 알 수 없겠지만 제 손으로 두 그림을 붙여놓고 보고 싶었습니다”라는 옥희의 대사처럼, <옥희의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오르는 순간 정확하게 ‘뭔지는 끝내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반복과 차이를 가진 이 네개의 단편이라는 ‘그림’을 ‘붙여놓고 보고 싶’게 만든다. 물론 도무지 붙지 않긴 하지만.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우려도 있었다. 수많은 인물들이 교차하던 전작들과 달리 세 인물에만 초점을 맞추는 탓에 영화가 앙상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또 구조가 두드러진 영화인 만큼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그러나 놀랍게도 감정적 울림은 상당한 여진을 남겼고, 몇몇 장면은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개인적으로 홍상수 감독 영화 중 가장 감성적이다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이 영화의 독법이야 다양하겠지만, 내가 그렇게 느낀 건 문성근을 중심에 놓고 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두번 등장하는 문성근의 뒷모습은 그야말로 심금을 울렸다. 마지막 장 ‘옥희의 영화’ 후반부에 아차산을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도 쓸쓸했지만 세 번째 장 ‘폭설 후’의 마지막 대목은 근래에 본 가장 서글픈 장면이었다. “겨울 골목에서 혼자 걷다 상투적인 뭔가를 토하”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이 중년 남성의 뒷모습은 가슴을 뭉클 쥐어짰다(아, 서러운 아저씨의 운명이여! 아니, 원빈이 아닌 그저 ‘나이든 남자’의 비루함이여!). 거기엔 문성근의 공헌이 가장 컸을 것이다. 노사모와 관련된 이미지 탓인지 언젠가부터 문성근이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는데 <옥희의 영화>에서 그는 오랜만에 연기 ‘짬밥’이 뭔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옥희의 영화>가 문성근을 재발견하게 했다면, 이에 대한 이번호 특집기사는 독자 여러분들로 하여금 정한석 기자를 재발견하게 해줄 것이 틀림없다. ‘전영객잔’ 필진에서 스스로 빠진 뒤로 묵직한 글을 잘 쓰지 않았던(그의 최근 화제작은 ‘아저씨의 눈으로 본 <이클립스>’였다) 정한석은 이번에 작심하고 <옥희의 영화>에 달려들었다. 200자 원고지로 90매가 넘는 그의 이번 글은 영화를 보지 않은 독자들에게 다소 생경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홍상수 영화세계라는 대형지도의 첫장이기도 하니 그냥 읽어도 무방할 듯하다. 또한 <옥희의 영화>를 보고 이 글을 다시 읽는다면 정한석이 여전히 열심히 고민하고 공부하는 기자-평론가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음… 그런데 한석아, 다음에 90매 쓸 땐 미리 얘기 좀 해주면 안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