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는 김태용 감독의 첫 멜로영화다. 미국에서 만난 한국남자와 중국여자가 보내는 하루는 상당히 조용하고 쓸쓸하다. <여고괴담2 : 두 번째 이야기> <가족의 탄생>등의 전작이 섬세하게 조율된 대사와 연기로 짜여진 리듬의 영화였다면, <만추>는 그들이 놓인 도시와 그들의 얼굴을 숨죽여 바라본다. <만추>는 이만희 감독의 원작에 이어 이미 김수용의 <만추>와 김기영의 <육체의 약속>로 제작된 이야기다. 김태용 감독이 원작에서 취한 것과 채워넣은 것에 대해, 그리고 그가 만난 탕웨이와 현빈에 대해 물었다.
- <만추>는 첫 멜로영화이고, 글로벌 프로젝트인데다 유명한 원작의 리메이크다. 부담스럽지 않았나?
= 멋모르고 시작했다. 한 여자가 감옥에서 나왔다. 한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 감옥으로 돌아갔다. 이 세 문장의 느낌에 크게 끌린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시나리오를 쓰다보니 부담이 생기더라. 다만 나에게도 재밌는 여행같은 영화가 될 것 같았다.
- 김수용의 <만추>와 김기영 감독의 <육체의 약속>등 기존 작품들과 달라야겠다는 고민이 많았겠다.
= 오히려 어떻게 하면 비슷할까를 고민했던 것 같다. 그 맥을 어떻게 이어가야 될지가 관건이었다. 전체적 설정상 지금의 <만추>는 그 작품들과 너무나 다른 영화가 될 수 밖에 없으니까.
- 결과물로 봤을 때는 전혀 다른 영화로 봐도 될 것 같다. 다만, 현빈의 이미지가 이만희 감독의 남자 같다는 의견이 있다.
= <휴일>의 신성일 같은 느낌이 있다. 나도 그처럼 고전적인 남자를 만들어 보려고 했다. 원작과 이어질 만한 장면을 생각한 것도 있다. 원작의 기차 에피소드들이 워낙 좋아서 비슷한 느낌의 다른 에피소드를 만들려고 했다. 김혜자 선생님의 <만추>에서는 자고 있는 남자에게 신문을 덮어주는데, 이때 자상한 누나의 느낌이 있다. 그런데 극중의 애나의 캐릭터상 그런 호의를 베푸는 게 어색해보였다.
- 탕웨이가 연기한 애나는 감각이 없어 보이는 여자더라.
= 주변의 사람들을 밀어내는 여자였으면 했다. 탕웨이는 좀 더 따뜻해야 하거나, 화를 내거나 해야하지 않냐고 했지만 나는 그녀에게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기를 바랐다. 재밌는 건 실제의 탕웨이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였다. 매우 사교적이고 명랑하고, 건강한 사람이다. 탕웨이는 애나가 조금이라도 힘을 갖기를 원했다. 그녀의 바람이 너무 크기 때문에 무표정으로 연기를 해도 드러날 것 같더라.
- 로케이션 지역으로 시애틀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 비와 안개 때문에 선택한 곳이다. 시애틀은 커피로 유명하고, 커트 코베인이 자살한 곳이기도 하지 않나. 6개월 내내 햇살이 비추다가 다시 6개월 동안 비가 내리는 곳이다. 막상 헌팅을 갔을 때는 날씨가 좋을 때여서 좀 당황했다.(웃음) 그런데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으니까, 겨울이 되면 자살률이 높아진다고 하더라.
- 언어의 차이를 갖고 만든 대화 장면이 흥미로웠다.
= 한국에서 상영할 때는, 탕웨이가 중국어로 말하는 장면에서 자막을 아예 빼볼까 했다. 애나의 사연이 드러나는 부분이지만, 상대인 훈이나 관객까지 모르게 해보고 싶었다. 누가 누구를 안다는 게 뭘까라는 질문이 화두였던 것 같다. 상대의 모든 과거를 다 안다고 해서 관계가 깊어지는 건 아니라고 본다.
- 먼저 제작된 다른 <만추>와 달리 두 남녀는 정사를 나누지 않는다. 하지만 고민은 해봤을 것 같다.
= 어떤 관객들은 배신감을 느끼는 것 같다. (웃음) 찍을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애나에게 적극적인 표현 자체를 지운 이상 그 지점까지 밀고가는 게 맞지 않아보였다. 결과적으로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처럼 됐는데, 어떤 면에서는 30세 이상 관람가인 것 같기도 하다. 정사신이 아닌 다른 풍경에 관심이 있는 관객들이라면 <만추>에서 그들의 감정을 스스로 찾으려 할 것 같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