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소식]
바람아 멈추지 마오
2010-10-10
글 : 강병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김태용 감독의 <만추> 출연한 탕웨이

영화 <만추>에는 두 가지 진풍경이 담겨 있다. 비와 안개에 젖은 시애틀의 풍경, 그리고 탕웨이의 쇠잔한 얼굴이다. 그녀가 연기한 애나는 살인죄로 복역중인 죄수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잠시 집으로 돌아온 그녀에게 세상은 자유의 즐거움을 쉽게 내주지 않는다. 이때 한 남자가 나타나 특별한 하루를 선사한다. 부부인 척 음식을 먹고, 연인인 척 놀이공원을 찾고, 미친 듯 뛰어보기도 하고. 그러나 애나의 표정은 온 몸의 감각을 잃어버린 것처럼 변함이 없다. 그 대신 탕웨이는 자신의 얼굴에 스산한 바람을 일으킨다. 매혹적이다.

“고통과 맞닥뜨려야 하는 여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눈을 크게 뜨고 이겨내는 상황이 감동적이었다.” 탕웨이가 <만추>에서 본 것은 ‘희망’이었다. “절망 끝에 희망을 찾으면, 그 앞에 올 것은 찬란한 햇빛”일 거라는 믿음. 하지만 <만추>의 애나는 단순한 즐거움조차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 연출을 맡았던 김태용 감독과 의견조절이 필요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내 연기력이나 연륜상 무표정 속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연기가 어렵기도 했지만, 나는 애나에게 좀 더 많은 움직임과 표정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태용 감독은 약간의 미소조차 감춰야 한다고 했다. 표정을 비우라는 그의 말대로 연기했고, 오늘 처음 영화를 봤다. 이제야 그의 이야기가 뭔지 알겠다.” 탕웨이의 얼굴 외에 <만추>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녀의 목소리다. <만추>는 언어의 장벽을 가진 남녀가 나누는 흥미로운 대화의 영화다. 남자가 알고 있는 중국어는 ‘하오’(좋다)와 ‘화이’(나쁘다)뿐이다. 그에게 애나는 자신의 과거를 모두 털어놓는다. 이때 탕웨이가 가진 중저음의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격렬한 감정을 드러낸다. “아마도 애나는 그때 이 남자에게 감사했을 것 같다. 그가 준 선물에 대한 감동, 그에 대한 믿음을 느끼며 연기했다. 어쩌면 애나가 드디어 희망을 찾는 순간이었을 거다.”

연기 방식뿐 아니라 한국의 감독과 배우와 만난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상대역 훈을 연기한 현빈과의 조화는 극중의 애나와 훈이 서로 다가가는 과정과 다를 게 없었다. “<만추>는 문화적 차이에 따라 감정적인 표현도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된 영화다. 현빈과의 호흡도 천천히 맞출 수밖에 없었다. 그와 눈, 입, 손 그리고 발까지 사용해 대화했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를 수록 이 배우와 함께 하는 연기가 깊어진다는 느낌을 얻었다.” 현재 여러 편의 차기작을 촬영 중인 그녀는 “지금도 애나를 생각하면 참을 수 없을 만큼 뭉클하다”고 했다. “<만추>를 통해 난 또 한번 성장한 것 같다. 내 심장은 지금도 뛰고 있다.” 탕웨이의 얼굴에 또 다시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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