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일기> The Journals of Musan
박정범/ 한국/ 2010년/127분/ 뉴 커런츠
탈북자는 최근 충무로 안팎의 감독들이 새롭게 발견하기 시작한 소재다. 김동현 감독의 독립영화 <처음 만난 사람들>과 장훈의 <의형제>가 대표적인 예다. 박정범 감독 역시 2008년 미장센단편영화제에서 탈북자를 다룬 단편 <125 전승철>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다. <무산일기>는 <125 전승철>의 아이디어를 연장시켜 완성한 장편이다.
주인공 전승철(감독이 직접 연기한다)의 주민등록 뒷번호는 125로 시작한다. 탈북자라는 의미다. 그는 배불리 먹기위해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왔지만 온갖 폭력에 시달리며 시간당 2천원짜리 포스터 붙이는 일로 입에 풀칠을 한다. 그는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는 여자를 마음에 둔 채 그녀가 일하는 도우미 노래방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지만 돌아오는 건 멸시뿐이다. 비루한 탈북자의 인생에 유일한 위안을 주는 것은 길거리를 떠돌던 백구 한마리다.
<무산일기>는 탈북자의 현실만을 구슬프게 읖조리지 않는다. 대신 박정범의 카메라는 자본주의 피라미드의 바닥에서 살아가는 탈북자들이 서로를 등쳐먹는 현실까지 서슴없이 파고들며, 종종 뒤틀린 종교적 믿음에 대한 아이러니를 잡아채는데도 성공한다. 인공 조명 없이 핸드헬드로 인물들의 뒤를 따르는 <무산일기>의 미학적 재주는 다르덴 형제에게 조금 빚을 지고 있는 듯 하다. 우리는 지난 몇년간 다르덴 스타일의 독립 영화를 질릴만큼 목도해왔다. 그러나 거장의 영향력 속에서 강직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무산일기>에는 관객의 심장을 움켜쥐는 강렬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