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네명의 게이 벗들 이야기를 담은 영화 <종로의 기적>
2010-10-11

<종로의 기적> Miracle on Jongno Street
이혁상/한국/2010년/119분/와이드앵글

종로에, 낙원동에는 게이들이 있다. 여기서 만나 어울린, 네명의 게이 벗들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종로의 기적>이다. 한 게이 감독은 게이 영화를 만들면서 문득 주변 사람들 뿐 아니라 스탭들까지 자신을 감독이 아닌 게이로 여긴다는 사실을 아프게 깨닫는다. 게이로 살면서 겪은 많은 어려움들, 특히 군에 가서 정신병원에 갇혔던 괴로움마저 떠오른다. 하지만 이제 영화를 통해 정체성을 드러내고, ‘커밍아웃’ 이후 다가오는 끊임없는 숙제를 감당해 나가는 게이 감독의 ‘컷’ 소리는 드높다. 한 인권운동 단체 실무자 게이는 사랑하는 사람과 열심히 살아간다. 외국인노동자와 연대하면서 “차별과 천대 같은 억압에 맞서기 위해 함께 나서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사람은 일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장애인도, 외국인노동자도, 게이도 모두 일해야 산다. 여기 제한이 있어서는 결코 안된다. 그 제한이 뚜렷한 이 땅에서 그걸 바꾸려면 행동하고 활동해야 한다며 나선 게이 활동가의 발걸음은 힘차다. 시골에서 올라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차마 드러내지도 나누지도 못하던 자영업자 게이는 낙원동 덕에 ‘친구사이’와 ‘지 보이스’ 합창단에서 제 삶을 찾는다. 여기서 ‘커밍아웃’하고, 즐겁고 신나는 ‘시골게이 황금기’를 보낸다. 불행히도 그 황금기는 오래 가지 않는다. 깊은 병에 걸려 가족들에게 커밍아웃하고, 게이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 아래 떠나는 시골게이의 퇴장은 위풍당당하다. 한 직장인 게이는 뜨거운 사랑에 빠졌다. 그의 사랑은 낙원동에서 만난 에이즈 감염자다. 그도 에이즈 치료제를 놓고 벌이는 다국적 제약기업과 정부의 농간을 비판하고 해결을 요구하는 운동에 적극 나선다. 게이들은 섹스만을 바란다고 흔히 오해하는데, 다만 그 사랑이 너무 좋고 마음에 들어서 사귀는 일인데 왜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않느냐, 는 사랑에 빠진 게이의 항의는 멋지다. 감독은 이렇게 절절하고, 아픈 이야기를 쉽게, 가깝게, 따뜻하게 담아낸다. 당연하지! 그건 일상이니까!

정유성 서강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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