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소식]
게이, 낙원의 게이를 찍다
2010-10-11
글 : 김도훈
<종로의 기적>의 이혁상 감독

종로는 게이들의 은밀한 낙원이다. 종로구의 깊숙한 그곳, 낙원동으로 들어서면 손을 맞잡은 남자들이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울고 웃는다. <종로의 기적>은 종로의 삶을 대변하는 4명의 게이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소준문은 마초적인 영화현장에서 게이감독으로서 살아가는 고단함을 이야기하고, 동성애자인권연대의 활동가 병권은 차별 없는 세상을 외치고, 요리사 영수는 게이합창단 활동을 통해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발견하고, 대기업 사원 욜은 HIV 양성 판정을 받은 연인과 살아간다. 여기에는 또 한명의 주인공이 있다. 감독 이혁상이다.

이혁상 감독은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공동 창작집단인 ‘연분홍치마’의 활동가로서 다큐멘터리 <마마상>과 <레즈비언 정치도전기>등에 참여해왔고, <종로의 기적>은 첫 연출작이다. 원래 그가 찍고 싶었던 것은 동성애자의 메카로서 종로의 역사를 다루는 다큐였단다.

“하지만 역사다큐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고, 그런 와중에 동성애자 인권단체인 친구사이에서 커밍아웃에 관한 다큐를 만들자고 의뢰를 해왔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종로의 기적>은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담겨있는 영화다. “누구를 촬영할 것인가부터 고민이었다. 대국민 커밍아웃이 가능해야 하는 동시에 다큐적인 재미가 있는 인물이어야 했다. 게다가 촬영을 하고 나서도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해야 할 것인가, 과연 극장개봉을 해도 좋을 것인가….” 수많은 선택과 고민을 헤치고 3년 만에 완성된 <종로의 기적>은 결국 출연자의 비극적인 죽음과 행복한 성장을 두루 담아내는 어떤 역사가 되었다.

네 명의 주인공 외에도 이혁상 감독을 또 한명의 주인공이라고 한 이유는, 그 역시 종로의 낙원을 거니는 게이이기 때문이다. 이혁상 감독은 “출연자들의 얼굴을 팔면서 찍고 있는데 나는 대체 뭔가 싶었다. 이 다큐의 유일한 미덕이라면 게이가 찍는 게이 다큐라는 거다. 그렇다면 나 자신 역시 드러내는 게 올바른 방식이었다”고 말한다. 영화는 어떻게 정체성을 깨달았는지를 읊조리는 감독의 목소리로 시작되고, 그는 결코 존재를 숨기는 일 없이 카메라 뒤에서 숨을 쉰다. 그렇게 <종로의 기적>은 영화 속과 밖에서 기적처럼 커밍아웃한다.

사진 강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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