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통의 전화를 받았슴다. 그 전화는 백은하 기자였슴다.
백 기자는 ‘이제 때가 됐죠?’라고 말했슴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슴다.
백 기자는 아직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임다.
지금으로부터 1년6개월 전. 영화 (<와니와 준하> 옛날 제목 - 글쓴이)의 촬영을 앞두고 백은하 기자가 나와 인터뷰를 했더랬슴다.
그리곤 내 인생의 영화를 써보라고 딱 두번 권했고,
마냥 부끄러운 척하던 나는 글쎄 두번이나 거절을 하고 말았던 것임다.
그뒤 영화 은 캐스팅을 못해서 주구장창 밀리게 되었슴다.
그게 미안했던 걸까여? 백 기자는 다시는 전화하지 않았슴다.
그리고, 1년6개월 뒤 백 기자는 다시 전화를 한 것임다.
나는 영화 <와니와 준하>가 망해서 무지 속상해하고 있었슴다.
그래서 백 기자가 참 뻔뻔하다고 생각했슴다.
하지만 이내 씨익 웃었슴다.
‘이게 <와니와 준하> 마지막 홍보 기회여’라고 생각한 것임다.
곧 비디오 출시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문제가 생겼슴다.
아 글쎄 생각해보니 내 인생의 영화가 없는 것이었슴다.
나는 이래봬도 영화과를 나왔슴다. 참 쪽팔렸슴다.
다시 한번 백 기자를 욕하며 깊이 고민했슴다.
그러자, 아 글쎄 좋은 생각이 떠올라버렸슴다.
나는 <와니와 준하> 마지막 홍보를 해야 됨다.
그런데 대놓고 보라 그러면 누가 좋아하겠슴까?
이때 <병태와 영자>가 생각났슴다.
비슷한 영화를 얘기하는 척하면서 <와니와 준하> 홍보를 하겠슴다.
아… 근데 이 영화, 제목 빼면 <와니와 준하>랑 뭐가 비슷한지 모르겠슴다….
…한나도 비슷하지 않슴다. …정말 미안함다.
이 모든 잘못은 백 기자한테 있슴다.
나는 그렇게 쓰기 싫다고 말했던 것이었슴다.
나는 지금 너무 미안한 나머지 <병태와 영자>가 쪼끔 기억이 날라구 함다.
일단 <병태와 영자>는 <바보들의 행진> 속편임다.
<바보들의 행진>은 송창식의 <왜 불러>에 맞춰 장발단속에 쫓기는
말 안 듣는 대학생들 얘김다.
때는 바야흐로 70년대.
근데 이 친구들은 하라는 데모는 안 하고 노상 술이나 먹고
걸핏하면 동해에 고래 잡으러 간다고 뻥이나 침다.
그러다 진짜로 한놈이 죽슴다. 남은 놈은 군대 감다. 물론 애인 있슴다.
70년대를 주름잡던 이름, 영자. 본명 이영옥. 참 이쁨다. 이 친구는 1, 2편 다 나옴다.
<바보들의 행진>은 반체제 나쁜 영화임다.
반면 <병태와 영자>는 군대 갔다 온 병태가 정신차리고
멋있는 의사와 결혼하려는 영자를 끝내 뺏는 데 성공한다는 얘김다.
멋있는 의사, 젊은 날의 한진희씨임다. 한진희씨는 지금도 멋있음다.
그러니, 이 영화도 웃김다. 왜 영자가 돈도 없고 바보 같은 놈과 결혼한단 말임까?
어! 그러고보니 <병태와 영자>는 <와니와 준하>와 닮은 게 있슴다.
남자 주인공들 무지 쿨함다. 여자 주인공 무지 이쁨다.
자∼알 보면 더 비슷한 것도 있슴다. 결정적으로 다른 거 있슴다.
감독임다. <바보들의 행진> <병태와 영자> 고 하길종 감독님 작품임다.
학교다닐 때 들은 이분 전설이 생각남다.
미국 남가주대학 다닐 때 동기들이 루카스, 코폴라 이런 인간임다.
근데 하길종 감독님이 이 인간들보다 영화 잘 만들었담다.
아깝슴다. <스타워즈>만큼, <대부>만큼 잘 만드는 감독님이 일찍 돌아가셨슴다.
뭐가 그렇게 속이 상하셨는지 술 많이 드셨담다.
술 때문에 사람들 망가지는 거 이거 안 됨다. 지금 바야흐로 연말임다.
아참. 배창호 감독님의 <고래사냥> 관계 있슴다.
아! 나는 이 영화들을 무지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었슴다.
백은하 기자랑 술 한잔 해야겠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