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는 이창동 영화 중 프랑스에서 가장 성공한 작품이다. 이창동의 작품을 처음 보는 관객은 대개 영화의 첫 장면이 주는 눈부신 아름다움에 도취된다. 자유롭게 뛰어노는 아이들, 찌는 듯한 여름 햇살, 경치를 가로지르는 물결의 신선함. 그리고 갑자기, 그림자 사이로 떠오르는 시체 하나. 이에 대해 몇몇 평론가는 시인 랭보와 그의 시 하나를 언급하기도 했다. 몸에 총알이 박힌 채 계곡 깊은 곳에 평화로이 누워 있는 어느 군인의 모습을 부드럽게 묘사하는 랭보의 시 <계곡의 잠꾸러기>다. <시>라는 제목을 단 영화를 두고 한 비유로는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랭보를 떠나서, 이창동은 그 처음 몇초 동안 그의 영화의 아름다움과 엄청난 폭력성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초록물고기>를 필름 누아르라고 한다면 이미 거기서 이창동은 천둥이 지난 뒤의 하늘빛 같은, 잡티 하나 없이 맑은 크리스털 빛쪽으로 기울었던 것 같다. <박하사탕>에서 이 감독이 선호하는 빛깔은 분명히 나타난다. 배우들의 의상과 배경 위에 비친 조금 흐릿한 하늘빛. 다소 내적이고 야행성을 띤 작품 <오아시스>는 빛이 조금 덜한 작품이지만, 이창동의 푸른빛과 밝은 그림자는 <밀양>에서, 그리고 <시>의 서두에서 다시 나타난다. 거의 투명한 이 빛은 보통 유리벽 같은 것에 의해 움츠러져 있는데, <박하사탕>과 <시>에서는 자동차의 앞 유리창, <밀양>에서는 상점의 쇼윈도, 또 방바닥이나 은색 이불에 내리치는 햇빛에 의해 움츠러져 있다. 푸른빛이 화면의 표면을 완전히 점령하고 일종의 막을 형성하는데, 이것은 물 위에 뜬 기름처럼 가볍게 관객과 화면 사이에 놓이는 하나의 아주 얇은 방위막이다.
이 하늘빛 벽은 아주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압박감을 준다. 이 벽은 이창동의 주요 테마인 ‘내부와 외부와의 관계’를 감지할 수 있게 해준다. 외부는 아름다움이고 부드러움이다. 이창동의 작품에서 줄거리가 서울에서 진행되는 경우는 드물다. 바로 이 점이 겉으로 보기에 따뜻하고 인정이 넘치는 인간관계, 사람들 사이의 어떤 근접성을 구축하는 데 기여한다. 하지만 이런 세계는 환상이고 외관상의 부드러움일 뿐이다. <시>에 나오는 의사의 빨간 꽃이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였듯이 말이다. 푸른빛의 방위막 밑으로는 죽은 아이들과 부패한 경찰과 자격이 없는 부모가 잠들어 있다. <박하사탕>에서 삶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히 흘러가고 있는 동안, 지하실에서는 고문을 한다. 이창동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혼자 있을 때만, 그리고 갇혀 있을 때만 자유롭게 스스로를 표현한다. <밀양>에서 송강호는 자신의 정비소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고, <시>에서 윤정희는 텅 빈 노래방에 홀로 있을 때 사랑 노래를 부른다. 남의 눈에 띄지 않을 때, 마이크 앞에서, 인물들은 드디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 푸른빛은 그렇게 어두움에 자리를 내준다. 하지만 그들 목소리의 메아리는 쿠션을 넣은 벽을 넘지 않는다. 메아리는 노래하는 이들을 현기증나는 고독 속으로 다시 돌려보낼 뿐이다.
나는 이창동을 잘 알지 못한다. 간혹 그를 마주쳤을 때 나는 그가 그의 영화를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정중하게 미소를 지었고, 부드럽게 말을 했고, 흘러내리는 머릿결에 시선을 반쯤 가린 채 조심스레 걸었다. 그런 그의 뒤에서, 영화속에서 푸른빛 그림자 너머로 표현되는 그의 격노를 간신히 엿볼 수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