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뉴스]
[외신기자클럽] 이 다리, 현실과 환상 사이
2010-11-17
글 : 아드리앙 공보 (포지티브 기자. 영화평론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부터 <인셉션>까지 많은 영화 속 배경으로 등장한 비라켐교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파리에 관광객이 부족한 적은 없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파리에 새로운 관광객을 불러모은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인셉션>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센강에 있는 한 다리(橋)의 아찔한 전망을 노련한 거울놀이로 탈바꿈해놓는 기가 막힌 장면이 있는데, 바로 에펠탑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비라켐교 위에서였다. 빛이 반사되는 칸막이들을 디카프리오가 하나씩 미끄러뜨리는 그 장면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바로 비라켐교 위에서가 아닌 다른 어떤 장소에서도 그런 장면을 실현할 수 없다는 거다. 그 장면은 거의 그 다리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시퀀스처럼 보인다. 비라켐교는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가장 오래된 다리도 아니지만 영화인들을 매혹시키는 다리임에는 분명하다.

사실 비라켐교는 다리가 아니라 고가식 수도교(水道橋)다. 그 위를 지나가는 행인은 다리 밑으로 흐르는 센강과 머리 위에서 질주하는 지하철 6호선 사이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격이 된다. 비라켐교 정면에는 철로를 받쳐주는 수십개의 기둥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우뚝 서 있다. 마주 보는 두개의 거울과 그 속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그림자들을 연상시키는 스펙터클한 장면의 깊이가 바로 거기서 나온다. 그 이미지에는 환상적이면서도 아주 순수한 무언가가 있다. 마치 비라켐교 자체가 특수효과인 것처럼 말이다. 이런 비라켐교가 영화에서 다소 마술적이고 혼란스런 이야기들에 연루되는 건 당연한 것. 디즈니가 벤자민 게이트(<내셔널 트레저> 시리즈의 주인공- 편집자)의 모험의 한 장면을 비라켐교 위에서 벌어지게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샘 가르바르스키 감독의 <머나먼 거리>에서도 비라켐교를 볼 수 있었다. 이 작품은 다니구치 지로의 유명한 만화를 가르바르스키가 프랑스에서 각색한 것으로, 내용은 기차에서 깜박 잠이 든 어느 만화가의 이야기인데,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도시에 도착해서야 잠에서 깬 주인공은 1960년대의 청소년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가르바르스키는 주인공이 사는 아파트를 비라켐교 위로 설정했다. 그러니까 그 아파트가 현실과 환상의 두 세계 사이에 위치한 과거 어딘가에 있는 일종의 기압조정실 같은 것이 되는 셈이다.

<뮌헨>에서 스티븐 스필버그는 비라켐교 위에 아예 시장 하나를 짓는다. 그렇게 해서 그는 거의 있을 수 없는 그림엽서, 그러니까 소세지 판매 진열대와 에펠탑이 서로 포개지는 우스꽝스런 파리의 모습을 창조한다. 그러나 비라켐교 위에서 촬영한 영화 중 가장 전설적인 작품은 뭐니뭐니해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다. 초미니스커트를 입은 한 여자가 기둥 사이를 걸어나간다. 마리아 슈나이더다. 비라켐교 위쪽의 아파트에는 아내를 잃고 비애에 가득 찬 한 남자가 있다. 말론 브랜도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뜨겁게 사랑하고, 또 뜨겁게 서로를 파괴시킨다. 이 작품에서 비라켐교 위의 아파트는 대륙에서 잘려나간 외딴섬이 된다. 베르톨루치는 아파트의 건축적인 아름다움은 물론 전철의 소음과 색소폰 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는 음향까지도 승화해 표현한다.

끝으로 재닛 잭슨이 만든 뮤직비디오 <컴 백 투 미>를 통해 비라켐교를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라켐교의 마술적인 매력이 영화예술과 연관성이 있다는 걸 이해하려면 밤에 자전거를 타고 한번 지나가 봐야 한다. 양쪽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기둥들을 뒤로하고 깜박거리는 도시의 불빛들은 마치 조명을 받은 필름처럼 살아 있는 심장을 팔딱거린다. 비라켐교에서 바라본 파리는 하나의 영화가 된다.

번역 조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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