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관광객이 부족한 적은 없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파리에 새로운 관광객을 불러모은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인셉션>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센강에 있는 한 다리(橋)의 아찔한 전망을 노련한 거울놀이로 탈바꿈해놓는 기가 막힌 장면이 있는데, 바로 에펠탑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비라켐교 위에서였다. 빛이 반사되는 칸막이들을 디카프리오가 하나씩 미끄러뜨리는 그 장면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바로 비라켐교 위에서가 아닌 다른 어떤 장소에서도 그런 장면을 실현할 수 없다는 거다. 그 장면은 거의 그 다리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시퀀스처럼 보인다. 비라켐교는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가장 오래된 다리도 아니지만 영화인들을 매혹시키는 다리임에는 분명하다.
사실 비라켐교는 다리가 아니라 고가식 수도교(水道橋)다. 그 위를 지나가는 행인은 다리 밑으로 흐르는 센강과 머리 위에서 질주하는 지하철 6호선 사이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격이 된다. 비라켐교 정면에는 철로를 받쳐주는 수십개의 기둥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우뚝 서 있다. 마주 보는 두개의 거울과 그 속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그림자들을 연상시키는 스펙터클한 장면의 깊이가 바로 거기서 나온다. 그 이미지에는 환상적이면서도 아주 순수한 무언가가 있다. 마치 비라켐교 자체가 특수효과인 것처럼 말이다. 이런 비라켐교가 영화에서 다소 마술적이고 혼란스런 이야기들에 연루되는 건 당연한 것. 디즈니가 벤자민 게이트(<내셔널 트레저> 시리즈의 주인공- 편집자)의 모험의 한 장면을 비라켐교 위에서 벌어지게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샘 가르바르스키 감독의 <머나먼 거리>에서도 비라켐교를 볼 수 있었다. 이 작품은 다니구치 지로의 유명한 만화를 가르바르스키가 프랑스에서 각색한 것으로, 내용은 기차에서 깜박 잠이 든 어느 만화가의 이야기인데,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도시에 도착해서야 잠에서 깬 주인공은 1960년대의 청소년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가르바르스키는 주인공이 사는 아파트를 비라켐교 위로 설정했다. 그러니까 그 아파트가 현실과 환상의 두 세계 사이에 위치한 과거 어딘가에 있는 일종의 기압조정실 같은 것이 되는 셈이다.
<뮌헨>에서 스티븐 스필버그는 비라켐교 위에 아예 시장 하나를 짓는다. 그렇게 해서 그는 거의 있을 수 없는 그림엽서, 그러니까 소세지 판매 진열대와 에펠탑이 서로 포개지는 우스꽝스런 파리의 모습을 창조한다. 그러나 비라켐교 위에서 촬영한 영화 중 가장 전설적인 작품은 뭐니뭐니해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다. 초미니스커트를 입은 한 여자가 기둥 사이를 걸어나간다. 마리아 슈나이더다. 비라켐교 위쪽의 아파트에는 아내를 잃고 비애에 가득 찬 한 남자가 있다. 말론 브랜도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뜨겁게 사랑하고, 또 뜨겁게 서로를 파괴시킨다. 이 작품에서 비라켐교 위의 아파트는 대륙에서 잘려나간 외딴섬이 된다. 베르톨루치는 아파트의 건축적인 아름다움은 물론 전철의 소음과 색소폰 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는 음향까지도 승화해 표현한다.
끝으로 재닛 잭슨이 만든 뮤직비디오 <컴 백 투 미>를 통해 비라켐교를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라켐교의 마술적인 매력이 영화예술과 연관성이 있다는 걸 이해하려면 밤에 자전거를 타고 한번 지나가 봐야 한다. 양쪽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기둥들을 뒤로하고 깜박거리는 도시의 불빛들은 마치 조명을 받은 필름처럼 살아 있는 심장을 팔딱거린다. 비라켐교에서 바라본 파리는 하나의 영화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