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로 나미에 이전에 심혜진이 있었다. 지금의 코카콜라 CF는 땀과 열정을 이야기하지만, 1980년대 중반 그녀가 출연한 CF는 세련된 도시문화의 상징으로 콜라를 내세웠다. 점심시간을 맞은 현대 직장여성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CF 속 심혜진은 투피스 정장과 지적인 안경을 쓰고 콜라를 마셨다. 말하자면 차도녀의 원조라고 할까. ‘콜라 같은 여자’로 수식되던 그녀는 이어 영화 <결혼 이야기>로 신세대 주부의 시대를 알렸고, 이후 <박봉곤 가출사건> <은행나무 침대> <초록물고기> 등을 통해 배우로 입지를 다졌다.
그녀가 진짜 아내와 엄마를 연기한 건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와 드라마 <돌아와요, 순애씨>부터다. 20대부터 40대까지 언제나 대한민국 아가씨, 아줌마들의 자아발견을 선도했던 심혜진은 이제 <페스티발>의 SM마스터 순심을 통해 “지옥에 갈지라도” 자기 안의 성적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한국영화와 드라마에서 언제나 앞서갔던 ‘언니’가 심혜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