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씻고 봐도 정상은 없다. <페스티발>의 인물들은 누구랄 것 없이 모조리 ‘변태’다. 경찰관인 장배(신하균)는 ‘양놈’들보다 거시기가 크다는 근거없는 자부심을 확인하기 위해 악악댄다. 장배의 우악스러움에 정나미가 떨어진 영어강사 지수(엄지원)는 ‘나 홀로 오르가슴’을 위해 갖가지 도구를 사들인다. 한복 의상실 주인 순심(심혜진)은 밤마다 동네 철물점에 들러 킬힐을 신고 채찍을 휘두른다. 반면 건장한 체격의 기봉(성동일)은 순심의 감당 못할 카리스마 앞에서 가면을 쓰고 기어다닌다. 다 큰 어른들만 ‘변태’가 아니다. 여고생 자혜(백진희)는 땀에 젖은 팬티를 팔아 돈을 벌고, 자혜의 데이트 신청을 번번이 거절하는 어묵 장수 상두(류승범)는 말하지도 걷지도 못하는 인형과 열애 중이다. 국어교사 광록(오달수)도 어느 날부터 갑자기 란제리를 즐겨 입기 시작한다.
<천하장사 마돈나>에 이은 이해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페스티발>은 ‘변태’ 커플들의 별난 행진을 소재 삼은 섹스코미디다. ‘의심나면 다시 보고 수상하면 신고하라.’ 풍기문란 단속을 피해 한동네 사는 변태 커플들이 갖가지 소동을 꾸미는데,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커져야 세진다는 확고한 믿음의 소유자 장배는 동거녀인 지수의 바이브레이터를 질투하고, 대물로 인정받고 싶어 안달하는 장배를 위해 지수는 교복 입은 여고생으로 변신한다. SM으로 의기투합한 순심과 기봉은 한술 더 뜬다. 그들은 상상 속의 섹스를 만끽할 수 있는 각종 기구들을 함께 발명하는 데 여념이 없다. 자혜는 상두의 환심을 사려고 약을 탄 박카스를 내밀고, 뒤늦게 발동한 성적 흥분을 참지 못하고 상두는 경찰 앞에서 자위하는 모습을 들키기까지 한다. 방 안에서 맴돌던 광록은? 직접 확인하시라.
“<러브 액츄얼리>의 샤방샤방 포르노 버전이면 좋겠다.” 이해영 감독의 바람대로, <페스티발>은 건전사회를 일탈하려는 ‘변태’들의 과감한 애정 행각을 상큼하게 묘사한다. ‘변태’들의 기이하고 야릇한 행위를 부담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건 <페스티발>이 던지는 반문 때문이기도 하다. <페스티발>은 ‘모두 하고 있습니까’ 대신 ‘모두 즐기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일하듯이 섹스하고, 남들처럼 섹스하고, 그러니 행복하느냐는 추궁이다. 그런 점에서 ‘변태’들의 교성은 특별한 잠자리를 갖고 싶다는 색다른 호기심보다 섹스 한번 제대로 해보자는 필사적인 안간힘에 가깝다. 맛깔스럽게 대사를 치고 천연덕스럽게 상황을 내보이는 배우들의 능숙함도 돋보이지만, 변태들의 좌충우돌이 그들을 변태라고 손가락질하는 세상과 정면으로 부딪칠 때 덤으로 파생되는 통쾌한 폭소가 <페스티발>의 재미다.
극중 인물들은 누군가의 남친이거나 누군가의 엄마이거나 누군가의 선생님이거나 누군가의 딸이다. 그들 모두 섹스를 하긴 한다. 장배는 진급 못한 분풀이로 섹스를 하고, 지수는 황홀한 쾌락을 고대하며 섹스를 한다. 동상이몽이다. 순심과 기봉 커플은 어떠한가. 섹스가 도둑질이라도 되는 양 그들은 쓰개치마를 쓰고, 주민들의 항의를 걱정해야 한다. 자혜와 상두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다. 자혜에게 섹스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설렘인 반면 상두에게 섹스는 언제나 두려움이다. 둘 다 남몰래 상상의 대상과 섹스를 꿈꿀 수밖에 없다. “니가 나를 알아”라고 소리쳐봤자 해결되는 건 없다. <페스티발>의 인물들은 서로 부딪치면서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기에 앞서 콤플렉스로 비뚤어진 자신을 당당하게 긍정하는 것이 먼저임을 배워나간다.
변태들의 일탈은 결국 즐거운 놀이로서의 섹스를 복구하기 위한 모험이다. 그 모험의 시작은 ‘건전하고 안전한’ 사회에 딴죽을 거는 것이고, 그 모험의 끝은 변태라는 낙인에도 쿨하게 웃으며 축제를 즐기는 것이다. 순심이 딸에게 “세상엔 변태 엄마도 있는 거야”라고 말할 때, 또 기봉에게 ‘우리 지옥 가자’고 말할 때, 진짜 지옥이 어디인지, 진짜 변태가 누구인지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페스티발>은 변태 남녀를 앞세워 세상의 변태를 꿈꾸는 영화다. (마지막 장면을 놓치지 마시길. 깜짝 놀라게 하려는 의도라기 보다 사랑의 기적을 증거하는 감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