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한국영화를 봤네, 한국 사랑 돋네
2010-12-09
글 : 오정연
뉴욕대학교 한국영화 학술행사에 참여한 네명의 뉴요커, 한국영화·드라마를 말하다

지난 11월11일부터 14일까지 뉴욕대학교 영화과는 한국영화에 대한 토론, 한국영화 상영(<옥희의 영화> <검은 땅의 소녀와> <휴일>), 그리고 한국 음식으로 가득했다. “한국영화-미디어와 초국가성”이라는 제목으로 뉴욕대학교, 한국 교류재단, 코리아 소사이어티, 뉴욕 한국문화원, 한국영상자료원이 후원한 학술행사가 열렸다. 미국 예일대학교 더들리 앤드루,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소영 교수 등 영미권 학자, 평론가, 산업 관계자 30여명이 초청됐다. 이번 행사에서 논의된 것은 <맨발의 청춘>과 <올드보이> 등 불법·합법적으로 일본의 원작 텍스트를 끌어들인 한국영화의 문화적 번역(얼 잭슨 주니어, 한국예술종합대학), <괴물>의 사운드를 담당한 라이브톤 최태영 등이 돌비 컨설턴트로서 한국상업영화의 독특한 사운드디자인에 미친 영향(줄리안 스트링거, 노팅엄 대학), 그리고 2000년대 이뤄진 범아시아 합작영화 붐과 70년대 한국·홍콩 합작 경향의 연관관계(이상준, 뉴욕대학) 등이었다.

한국영화를 주제로 한 단독 국제 학술행사로는 북미 지역 최대 규모로 진행된 이번 컨퍼런스에서 가장 인기리에 진행된 세션은 ‘포커스 디스커션’. 뉴욕아시아영화제의 고란 토팔로비치, 최초의 아시아드라마 합법 스트리밍 서비스 사이트 ‘드라마피버’(www.dramafever.com)의 승 박, 비공식 <왕의 남자> 팬 사이트(wang-ui-namja.com)의 대니얼 고든, 그리고 영화 웹진 시네어섬(cineawesome.com)의 한국 및 아시아영화 담당 루퍼스 드 람 등 팬으로서 한국 문화와 인연을 시작한 4명의 패널이 참여한 시시콜콜한 수다를 전한다(이후 대담 기사는 11월13일 오후 5시30분부터 1시간여 동안 진행된 공식 디스커션과 이후 별도로 진행된 추가 인터뷰와 대담을 재구성한 결과물이다).

고란 토팔로비치 Goran Topalovic

이름 토팔로빅이 아니라 토팔로비치. 17살 때 옛 유고연방에서 뉴욕에 발을 디뎠다.
경력 좋아하는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 위해 ‘서브웨이 시네마’를 만들어 뉴욕아시아영화제의 전신 격인 ‘두기봉 회고전’을 개최한 지 10년. 차이나타운의 팬보이는, 1년에 한번 아시아영화에 목마른 뉴요커를 위한 오아시스, 뉴욕아시아영화제 공동 수장이 되었다.
최근 한국영화 최고작 <부당거래>. “시네필 류승완이 필름메이커로서의 자신의 길을 찾고 성숙해지면서 감독으로서 뛰어난 본능을 완벽하게 발현했다. 그의 모든 영화를 사랑하지만 이번 영화는 정말 뿌듯했다. 홍콩에 두기봉이 있다면 서울에는 류승완이 있다.”

대니얼 고든 Danielle Gordon

경력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금융회사에서 정보기술 담당으로 8년째 일하고 있다. 영화를 정식으로 공부한 적은 한번도 없지만 평생 고전, 무성, 예술, 인디영화 ‘전문’ 팬으로 살아왔다.
최초로 접했던 한국영화 <춘향뎐>. 2007년 <뉴욕 타임스>에 실린 뉴욕영화제 기사에서 리뷰를 접한뒤 관람을 결심.

승 박 Seung Bak

한국 이름 박승권. 11살 때 가족과 미국행. 이름의 첫 글자를 영어 이름으로 택했지만 그나마 ‘승’보다는 ‘성’에 가까운 발음으로 불린다.
경력 경제학 전공. 연수익 3억달러 규모를 자랑하는 파이낸셜 소프트웨어& 미디어회사의 부사장, 책임 마케팅 담당으로 일하다가 최신·인기 한국 드라마를 무료로, 영문 자막으로 볼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 ‘드라마피버’(www.dramafever.com)를 공동 창립했다.
최고의 한국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남녀 노소,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나 좋아할 만한 보편적이고 훌륭한 이야기.”

루퍼스 드 람 Rufus de Rham

경력 뉴욕대 영화학과 학부 졸업, 현재 같은 대학 석사과정에서 영상아카이빙 및 보존을 공부 중. 시네어섬에 한국영화 관련 아티클을 쓰고, 아시아영화 전문 팟캐스트 브이시네마(vcinemashow.com)의 고정패널로 활동 중.
인생의 목표 한국에서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 최고의 SF영화를 제작·감독하는 것(이미 트리트먼트가 있다). 류승완 감독과 술 마시기(자리만 마련된다면 ‘베프’가 될 것이라는 근거없는 믿음이 있다).

고란 토팔로비치 개인적으로 1990년대 말, 특히 1999년이 한국영화에서 중요하다. <쉬리>를 처음 보고 “한국에서 영화를 만드는구나!” 하고 깨달았으니까. (웃음)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DVD로 봤을 때의 감동은 대단했다. 뉴욕아시아영화제에서 ‘Korean Cinema Attacks’라는 한국영화 특별전을 개최했을 때 관객도 놀라는 걸 확인했다. 첫째, 한국에서 영화를 만드네, 둘째, 근데 다들 엄청나네.

승 박 가족과 평생 함께 즐겨봤던 한국 드라마를 어떻게 하면 쉽게 합법적으로 볼 수 있는지를 궁리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한인마트에서 불법 녹화된 비디오를 대여하는 것 말고 다른 모델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수익모델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2009년 8월 처음엔 방문자가 한달에 3만, 4만명이었는데 현재는 월 40만명 정도다.

대니얼 고든 <뉴욕 타임스>에서 <왕의 남자> DVD 리뷰를 읽었고, 그 뒤로 그 영화는 10번도 넘게 봤다. 그 정도 예산으로 만들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모든 문화적인 백그라운드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많이 알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한국의 대중영화 자체에 매료됐다.

루퍼스 드 람 고등학생 때 한국 친구를 따라 한달간 대구를 방문했을 때 본 <신라의 달밤>이 최초의 한국영화였다. 정말 재밌었고, 진짜 놀랐다.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다니! (웃음) 이후 “"친구 아이가” 같은 부산 사투리로 배우고, 본격적으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 3학년 때는 아예 연세어학당에 등록해서 한국에 살았는데, 대부분 영상자료원에서 살았다.

대니얼 고든 해외에서 한국영화를 보는 팬으로서 모든 한국 DVD의 부가영상에 영어자막이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영화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달시 파켓의 사이트(www.koreanfilm.org)에서는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에 대한 소식을 알 수 있다. 소셜네트워크도 좋은 정보처다. 한국영화나 배우들도 손쉽게 팬들과 소통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물론 여전히 한국 콘텐츠에 대한 ‘영문’ 소스는 한정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지만 의외로 인터넷에서 깊이있는 자료를 찾기가 힘들다는 걸 깨닫고 많이 아쉬웠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외국 팬들 위해 영문 자막·사이트 만들어주세요

루퍼스 드 람 트위터를 통해 부지영, 윤성호 등 내가 관심있는 독립영화감독들과 멘션을 주고받는다. 인터넷 기술의 최첨단을 걷는다는 한국에 온라인을 활용한 합법적인 배급방식이 자리잡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한국 콘텐츠를 궁금해하는 더 많은 외국인들을 위한 영문사이트 제공이 시급하다. 한국영상자료원의 VOD 서비스 정도는 해외에서 이용이 가능해야 한다. 한국 독립영화를 합법 다운로드할 수 있는 사이트, 인디플러그를 알게 되어서 신나서 들어갔는데, 영문 제공이 안되는 거다! 대다수의 한국 사이트가 익스플로러에서만 회원가입과 결제 등이 가능하고 공인인증서가 필요하거나, 주민번호를 입력해야 회원가입이 가능한 구조도 문제다.

승 박 처음에 한국에서 MBC 등의 공중파 방송국을 상대로 파트너십 계약을 맺을 때 가장 큰 장애는 인터넷 배급에 대한 의심 혹은 두려움이었다. 인터넷 배급이 해적판 유통을 용이하게 할 거라는 회의가 팽배해 있었다. 아무도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피버’는 긍정적인 경험적 수치를 제공하는 출발지점이다.

고란 토팔로비치 미국은 외국영화에 자국영화 시장을 내주지 않기로 악명이 높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외국영화를 통해 외국 문화를 더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극장들은 언제나 돈이 되는 영화만 튼다. 그러니 인터넷을 배급 창구로 개척하는 것은 합리적인 수순이다.

승 박 우리 사이트에서 한국인 비율은 5%에 불과하다. 30%가 아시안, 40%가 백인, 나머지가 흑인과 히스패닉이다. 온라인에서 국적과 지리적 위치는 무의미하다. 이후 ‘아시아 팝컬처’를 카테고리로 하는 콘텐츠를 배급하는 게 목표다. 한국 드라마 팬이라면 한국영화를 좋아하고, 일본이나 중국의 드라마도 좋아하더라. 한국, 일본, 중국, 대만 그 어떤 국가의 대중문화든 익숙해지면 나머지 국가 역시 거부감 없이 즐긴다. 그러니 배급이 효율적으로 이뤄진다면 예상보다 훨씬 많은 관객에게 접근할 수 있다. 과거에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보듯 쉽게 접할 방법을 제시해주기만 하면 된다.

루퍼스 드 람 한국영화가 인터넷을 통한 합법적인 유통에 앞장서지 못한 것은 2차시장 붕괴에도 원인이 있다. 미국에서 DVD 시장의 최대 소비자인 10대들이 한국에서는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낸다. 이들은 20대가 되어도 여전히 부모와 함께 살기 때문에 집에서 영화를 보고 음식을 해먹는 등의 미국식 데이트 문화가 불가능하다. DVD방 같은 콘텐츠 제공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이윤이 돌아가지 않는 구조의 소비패턴만 양산된다. 온라인을 통한 2차 판권 시장을 고민할 기술적 여건이 갖춰졌지만 이번엔 10대들이 불법 다운로드에 먼저 맛을 들여버린 게 문제다.

코미디·멜로·액션 두루 섞은 ‘짬뽕 장르’의 매력

<왕의 남자>

고란 토팔로비치 요즘의 관객은 모종의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즐거움을 공유하는 적극적인 수용자들이다. 그들에게 한국영화가 ‘한국영화’로 인상을 남기는 게 중요하다. 한국영화가 미국에서 어떻게 성공을 거둘까, 라는 건 비즈니즈맨 혹은 거대 시장의 입장만 반영할 뿐이다. 콘텐츠로서 한국 대중문화의 가능성은 무척 크다. 더이상 ‘어른’을 위한 상업영화를 만들지 않는 할리우드와 달리 한국에선 여전히 성숙한 어른 관객을 대상으로 뭔가 사회적인 발언을 시도하는 상업영화가 만들어지고 또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다. 예술영화와 장르영화가 종종 결합된다는 점도 흥미롭다.

대니얼 고든 한국영화가 미국에서 상품으로 지니는 가치는, 그것이 아시아 대중문화 중에서도 거의 모든 장르를 포괄한, 그 자체로 일종의 장르처럼 소비된다는 점이다. 일본 하면 호러, 홍콩 하면 액션, 하는 인식과는 다르다. 내가 한국영화에 매료된 것도 그 때문이다. <왕의 남자>에는 코미디, 비극, 멜로, 액션 등 모든 종류의 이야기가 다 있다.

승 박 나는 드라마밖에 이야기할 수 없는데, 한국 드라마는 매우 리얼하다. 거대 예산에 엄청난 특수효과로 무장한 미국의 TV시리즈와 비교해봐라. 시즌제로 해를 거듭해서 제작되는 미국 TV시리즈와 달리 결말이 명확한 것도 한국 드라마의 장점이다. 모든 게 어떤 식으로든 매듭짓기 때문에 질질 끌지 않고 볼 수 있다. 좀 바보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한국 드라마 속 배우들은 다들 예쁘고 잘생겨서 좋아한다는 미국인들도 많다. (웃음) 한국에서 시청률이 별로 좋지 않았다는 드라마 <소울메이트>도 배우를 좋아하게 된 유저들이 계속해서 본다. 한국에서의 시청률은 우리 사이트에서의 성패와 무관하다.

고란 토팔로비치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외국에 보여주고 싶은 것에 대한 모델이 확실하다. 영화는 대중영화 외에 고전이나 예술영화여야 한다는 것이라든지. 근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한국에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영화라도 미국의 대중시장에 제대로 번역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일정 멜로드라마나 코미디. 한 나라의 문화 콘텐츠에 대한 인식은 그 나라에 대한 역사와 사회 전반에 대한 인식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은 미국시장에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뒤처져 있지만 지난 10년 사이 많은 발전이 있었다. 이런 것들은 언제나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루퍼스 드 람 ‘Asian Extreme’이라는 레이블링은 일종의 인종주의라고 생각해서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름 유효한 구석은 있다. 한국 장르영화가 극단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바로 폭력의 물리적인 거리 때문이다. 총을 사용하는 할리우드영화에는 수백명의 사람을 죽여도 일정한 거리 밖에서 벌어진다. 근데 총기 문화가 없는 한국영화 <친구>를 봐라. “고마해라 마이 먹었다 아이가” 하는 장면. 평생의 친구에게 쉰 몇번 칼을 맞는 동안 코앞에서 계속 눈을 마주친다. <달콤한 인생>이 한국영화처럼 안 느껴졌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인물들이 총을 예사로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승 박 ‘드라마피버’는 아시아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소개를 제공하는 출발지점이다. <엽기적인 그녀>나 <올드보이>가 많이 알려졌다 해도 그런 걸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이 태반이라는 전제가 있다. 나온 지 몇년이 지난 <대장금>이나 <내 이름은 김삼순>이 여전히 순위를 다투는 걸 보면 이건 현실적인 전제다. 온라인 세계에선 ‘최신작’이라는 개념이 없다. 중국의 어떤 관객은 지금도 <대부>를 인터넷으로 처음 접한 뒤 “세상에 이런 걸작이!”라고 감탄한다. 물론 언어라는 장벽은 언제나 무시할 수 없다.

<올드보이>
<엽기적인 그녀>

루퍼스 드 람 드라마 <쩐의 전쟁>을 중국 불법 DVD로 구해서 본 적이 있다. 처음 1, 2회 때는 그냥 자막 번역이 이상하다 하는 정도였는데, 나중엔 아예 영어라고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내용은 점점 궁금해지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승 박 중요한 건 뉘앙스다. 이를테면 백수가 친구에게 “야, 자장면이나 먹자!”라고 말한다 치자. 이건 그냥 “나가서 뭐나 먹자” 정도면 무리가 없는데 이걸 “우리 나가서 검은 콩 소스 국수 먹자”라거나 혹은 자장면을 jjajangmyeon으로 표기한다. 대체 저게 뭔가를 생각하느라 텍스트에서는 관심이 떠나버릴 수밖에 없다.

대니얼 고든 나는 한국영화나 드라마가 모든 욕을 f**k으로 번역하는 게 이상했다. 자꾸 그렇게 심한 욕이 나와서 처음엔 진짜 이상했는데 한참 뒤에야, 아마도 한국인들은 그걸 일상적으로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가벼운 욕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짐작하게 됐다.

고란 토팔로비치 해괴한 홍콩영화의 영어자막에 익숙해져 있어서 한국영화의 자막은 문제로 느끼지도 못했다. 예전의 홍콩영화 자막은 미국 팬들 사이에서 패러디나 농담의 소재가 될 정도로 유명했다. (웃음)

이명세 감독의 ‘드링킹 세션’ 듣고 한국 문화 배워

<괴물>

루퍼스 드 람 한국영화에서 언어만큼 미묘한 게 바로 술자리 문화다. 한국에서 1주일 동안 집중적으로 주도를 배웠는데(웃음), 그 이후 대부분의 한국영화를 볼 때마다 ‘아, 이런 거였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대니얼 고든 맞다. 나도 뭔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더랬다. 처음엔 주변 여자들에게 어필하려고 그러는 건가, 짐작했었는데. (웃음)

고란 토팔로비치 이명세 감독이 뉴욕에 체류할 때 ‘드링킹세션’을 수강했는데, 한국 문화에 대해 지금 알고 있는 모든 것까지는 아니어도 절반 이상을 그때 배웠다. (웃음) 이젠 삼겹살집에서 소주가 없으면 내가 먼저 허전하다며 소주를 찾는다. (웃음) 물론 한국영화가 뭔지 알겠다고 생각했던 예전과 달리 아무리 해도 모르는 게 있다는 걸 안다. 이를테면 <짝패>처럼 나중에 보면 전혀 새로운 영화라는 걸 깨닫는 경우가 많다. 그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홍콩영화 등의 흔적만 봤다. 그런데 1970년대 한국 액션영화를 보고 나서야 그 영화 안에 있던 것이 뭔지 진짜 알 수 있었다. 잘생기지도, 엄청난 육체를 가진 것도 아닌데,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두 주먹만 믿고 그 길을 가는 한국적인 남성 액션영웅의 모습이 거기에도 있다.

대니얼 고든 몇년 만에 친구들 사이에선 한국 문화 전문가가 됐다. 동생이나 친구 커플들은 어떤 한국영화를 보면 좋을지 문의하거나 <괴물>을 보고 한국영화의 팬이 되었다며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다른 나라의 역사와 사회, 문화를 배우면서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영화 한두편을 본 게 아니라 전혀 다른 세계를 향한 통로를 개척한 셈이다.

사진 조너선 벤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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