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고니 위버가 11월29일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일보사가 주최한 ‘세계 여성 리더십 컨퍼런스’에 특별 강연자로 초청돼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것이다. 위버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 시리즈로 주체적이고 강인한 여전사의 대명사가 됐다. <아바타>에 출연하면서는 SF영화계의 전설로 불리기에 이르렀다. 위버는 정작 자신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점차 활발해지기 시작하던 시대의 분위기 덕을, 리들리 스콧, 제임스 카메론 등 좋은 감독 덕을 봤다는 얘기다. 이번 컨퍼런스에 초청된 이유도 “도무지 모르겠다”면서 “주최쪽에서 알파벳순으로 명단을 쭉 보다가 그저 나를 고른 건지도 모르겠다”고 스스로를 낮췄다. 조용한 카리스마가 돋보였던 위버를 30일 신라호텔에서 만났다.
-세계 여성 리더십 컨퍼런스에 초청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또 영화 속 강인한 여전사의 모습과 실제 모습은 얼마나 부합하나.
=컨퍼런스에 참석한 여성들은 여성 고유의 감성, 힘, 의사결정력이 모두 합쳐져야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나는 영화에서 강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 게 아니라 남자가 먼저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그렸다. 내가 그리고자 했던 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전문직 여성, 중심이 확고히 잡힌 여성, 어머니 같은 여성의 모습이었다. 이번 컨퍼런스에 참석한 여성 리더들은 확고한 의사결정력을 가진 동시에 가정과 일에서 모두 성공한 분들이다. 나를 초대해준 한국에 감사할 따름이다. 한국은 새롭고 혁신적인 사고들에 매우 개방적인 나라인 것 같다.
-한국영화에서도 그런 혁신성이 보이던가.
=애석하게도 한국영화에 대해 잘 모른다. 한국 방문을 계기로 꼭 봐야 할 한국영화 목록을 사람들에게 적어달라고 하는 중이다. <괴물>은 두번 봤는데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영화였다. <마더>도 좋은 평을 받은 영화로 알고 있어 기대가 크다.
-어릴 적에 배우로서의 재능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던데, 지금의 시고니 위버가 있기까지 재능과 노력과 운이 어떻게 상호작용했다고 보나.
=예일대학교에서 드라마를 공부할 때 영향력있는 두명의 교수님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다. 그들의 말을 머릿속에서 최대한 빨리 지우고자 노력했다. 또 좋은 교육을 받았기에 무엇이든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운도 좋았다. 연극 무대에 먼저 섰는데, 그때 리들리 스콧 감독의 눈에 띄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전형적인 금발의 미녀가 아니라 183cm 이상의 장신에 강인한 체력에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을 찾고 있었다. 마침 내가 눈에 띈 거다. 큰 행운이었다. 그렇게 내가 가진 개성과 자신감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 같다.
-최근 부쩍 영화를 많이 찍고 있다. 앞으로 개봉할 영화만 7편이다.
=우선 SF코미디영화 <Paul>이 있다. 사이먼 페그, 닉 프로스트, 세스 로건이 출연한다. 만화에 열광하는 괴짜(Geeks)들이 코믹콘에 참여하고 거기서 에일리언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다. <Cedar Rapids>에서는 에드 헴스와 함께 출연한다. 내가 헴스의 과학 선생님으로 나오고, 둘 사이에 로맨스가 꽃피는 코미디영화다. 또 우디 해럴슨과 <Rampart>를 찍었고, 뱀파이어코미디영화 <Vamps>에선 악하지만 아름다운 뱀파이어 역으로 출연한다. <The Cold Light of Day>에선 냉철한 CIA 요원으로 나오는데, 얼마 전 스페인에서 촬영을 마쳤다. 브루스 윌리스와 함께 출연하며, 총격신이 많은 액션영화다. 테일러 로트너 주연의 <Abduction>도 있다.
-<고스트 버스터즈3>에 출연한다는 얘기도 있다. 또 <에이리언> 후속 시리즈가 만들어진다면 출연할 의사가 있나.
=<고스트 버스터즈3>에 대한 루머는 끊임없다. 해롤드 래미스(<고스트 버스터즈> 각본가)가 세간의 루머가 모두 사실이었으면 <고스트 버스터즈3>가 30편은 더 되겠다고 말했을 정도다. 만약 만들어진다면 훌륭한 영화가 될 거라 생각한다. 출연하고 싶은 의향은 있다. <에이리언>은 현재 프리퀄이 만들어지고 있다. 탄생비화이다 보니 내가 출연할 일은 없다.
-한국에선 나이 든 여배우들이 할 수 있는 역이 적다. 당신은 여전히 열정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뭔가.
=시대적으로 운을 많이 타고났다. 내가 일을 시작하던 당시 미국 여성들이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영화 제작자들이 남성 캐릭터로 이야기를 만들어놓고 다시 살펴보니 모던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고, 이야기를 수정하는 과정에 캐릭터가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주위 사람들이 내가 30살, 40살, 50살 나이를 먹으면 더이상 내가 좋은 역할을 맡지 못할 거라고 얘기했다. 그런 말을 귀담아들었다면 상당히 우울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영화계에선 남자와 여자 모두 스스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기회가 분수처럼 샘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