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유정] 창작자로서의 호기심, 도전이다
2010-12-10
글 : 강병진
사진 : 오계옥
스크린 데뷔한 뮤지컬계의 스타 연출자 <김종욱 찾기> 장유정 감독

의외였다. 영화 <김종욱 찾기>를 연출한 이는 뮤지컬 <김종욱 찾기!>의 원작자이자 연출자인 장유정 감독이다. 의외라기보다는 우려했던 게 사실이다. 단순한 스토리를 춤과 노래로 채우는 뮤지컬을 영화로 번안할 때 과연 영화 한편 만든 적 없는 감독은 어떤 영화를 만들까. <김종욱 찾기!> <오, 당신이 잠든 사이> <형제는 용감했다> 등으로 뮤지컬계의 스타 연출자로 자리잡은 그에게는 괜한 무리수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혹시 뮤지컬영화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런데 의외였다. 지난 11월24일 언론시사를 통해 공개된 <김종욱 찾기>는 우려와 달리 원작에 크게 기대지 않고 좀더 두터운 캐릭터와 요소들을 채운 영화였다. 그리고 뮤지컬영화가 아니었다. 지난 1년간 무대를 떠났던 장유정 감독은 현재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를 연출하는 ‘연출님’으로 불리고 있다. 연출님이 감독님으로 불리게 된 사연과 그동안의 과정이 궁금했다.

-<김종욱 찾기> 이전에도 영화를 준비한 적이 있었다고 하더라.
=2006년 즈음에 여자 캐릭터가 원톱인 로맨틱코미디를 준비했다. 그때도 감독 데뷔를 준비한 거였다. 그 작품은 코미디이긴 한데 좀 센 작품이었다. 결국 엎어졌다. 나중에는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는데 하나는 스릴러, 그 다음에는 로맨틱코미디. 그리고 <오, 당신이 잠든 사이>가 영화화 준비를 할 때 최종각색을 했었다. 그렇게 몇번 슬쩍 손을 담그긴 했지만 다 잘 안됐다. 심지어 판권을 계약한 <오, 당신이 잠든 사이>와 <형제는 용감했다>는 판권이 다시 돌아왔다.

-<김종욱 찾기>는 어떻게 연출까지 맡게 된 건가.
=영화는 나랑 인연이 안 맞는구나 했는데, 언젠가 비행기 안에서 수필름의 민진수 대표와 민규동 감독을 만났다. 영화 속의 지우와 기준이 만난 인연과 비슷하다. (웃음) 수필름의 영화에 좋은 느낌을 갖고 있었는데, 1년 뒤에 함께 뮤지컬을 해보자는 연락이 왔다. 그때는 스케줄 때문에 못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다시 몇 개월 뒤 <김종욱 찾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하더라. 그때 민진수 대표와 박준호 프로듀서가 대뜸 나더러 연출을 하라고 했다. 두 사람이 나를 설득하는데, 정신을 차릴 수가 없더라. 왜, 남자친구가 매번 바뀌는 여자친구가 어느 날 어떤 남자를 데리고 왔는데 왠지 저 남자랑은 결혼할 것 같은 느낌을 가질 때가 있지 않나. 이전에는 판권을 계약해도 영화화되지 못했지만, 두분이라면 정말 영화를 만들어낼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감독을 하게 되어 있었다. (웃음)

-이전에 영화를 준비했으니, 자신의 의지도 있었을 거다.
=뮤지컬 연출로는 7년째인데, 나도 모르게 익숙해진 게 있었다. 신작을 부지런히 하는 연출가도 있지만 나는 운이 좋아서 오픈런을 통해 한 작품을 계속 다지는 경우였다. 내 기질에 어울리지 않게 고여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주변 사람들은 많이 말렸다. 영화계는 말할 것도 없고 자칫하면 뮤지컬쪽에서도 등을 돌릴 수 있으니까, 하던 거나 열심히 하라는 거지. 하지만 나는 창작자로서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렇다고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을 텐데.
=그것도 없으면 내가 원더우먼이지. (웃음) 조감독을 해본 적도 없고, 뮤지컬쪽에서도 상당히 연극적인 작품을 연출했었다. 내가 나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다. 하지만 하겠다고 결정한 뒤에는 다른 이들이 나를 무시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없애기로 했다. 사람들이 나를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고 봤다. 누가 “이것도 몰라?” 그러면 난 그것도 모른다고 하면 될 거 같더라. (웃음) 감독노트가 바뀔 때마다 맨 첫장에 써놓았다. “모든 도전하는 자는 먼저 시작한 사람들의 편견과 불신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그러고는 스탭들에게도 내가 부족한 걸 까놓고 가자고 했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이 채워줄 수 있도록 그들을 존중하면 되겠다 싶더라. 촬영 6개월 전부터 몇몇 분들께 일대일 강의를 받기도 했다. 민규동 감독이 추천해준 책들을 보고, 영화 <베스트셀러>와 <페스티발> 현장을 찾기도 했다. 영화에 부평아트센터에서 찍은 장면들이 상당히 많은데, 그 장면들은 잘 아는 배우들을 데리고 가서 모든 신을 미리 리허설하기도 했다.

-원작을 각색할 때 세운 방향은 무엇이었나.
= 당장 원작이 짐이냐, 날 태우고 갈 마차냐부터 고민했다. 원작은 1인22역을 하는 멀티맨이 중요했다. 멀티맨이 극의 스피드와 리듬을 좌우했기 때문에 원작의 재미가 살았는데, 영화에서는 그럴 수 없지 않나. 그런데 그걸 뺄 경우, 과연 이 이야기가 영화적으로 먹힐까 싶더라. 난 원작을 버리자는 입장이었고 프로듀서는 원작을 심화하자는 쪽이었다. 여러 시도를 해봤다. <섹스 & 시티>처럼 만들어보기도 했고, 미스터리를 보강하기도 했는데, 결국 원작을 바닥에 깔게 됐다. 대신 영화에서 필요한 게 뭘까 생각해보니 30대 여성이 가진 일에 대한 고민이더라. 원작에서 남자는 일을 찾지만, 여자는 사랑만을 이야기했으니까.

-극중 지우는 뮤지컬 무대감독이다. 아무래도 잘 아는 분야이니 수월했을 것 같다.
= 물론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이었던 건 맞다. 하지만 무대감독이 현실과 낭만을 오가는 지우에게 어울릴 만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원작의 여자는 종교신문 기자였다. 종군기자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현실과 타협한 상황인 거다. 뮤지컬 무대감독 또한 화려한 세계에 발을 걸치고는 있으나 ‘언더’에서 일하는 역할이다. 처음에는 원작처럼 기자로 생각했는데, 워낙 자주 소개된 직업이고 일단 볼거리가 부족해 보였다. 뮤지컬 공연장의 특징이 중요하기도 했다. 여기로 들어오면 환상이고 나가면 현실이 되는 거다. 98신에서 보면 지우가 무대에서 “스탠바이, 고!”를 하면 바로 그녀의 기억 속에 있는 환상이 나온다. 그런 관계를 잘 연결해줄 수 있는 공간이 공연장이라고 생각했다.

-뮤지컬 공연이란 무대가 있고, 주연배우가 춤과 노래를 하는 장면도 있다. 하지만 뮤지컬영화는 아니다. 당연히 뮤지컬영화로 만들 줄 알았다.
= 민진수 대표와 프로듀서는 뮤지컬영화를 고려했는데 난 정공법을 선택했다. 그때는 지우의 직업을 기자로 설정하고 있을 때였는데, 사무실에서 기자들이 갑자기 노래를 부르는 게 황당할 것 같더라. <시카고>나 <물랑루즈>처럼 어울리는 캐릭터와 공간이 있는 게 아니니까. 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지금 영화에 4분짜리 뮤지컬이 있는데, 거의 한편을 만드는 공력이 필요했다. 예산도 많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 여건을 내가 잡고 케어해서 하기에는 경력이나 능력이 부족했다. 물론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해보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어떤 장면은 노래만 부르면 바로 뮤지컬영화가 될 것 같았다. 경찰서에 모인 사람들이 첫사랑 때문에 떠드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 맞다. 시나리오상에서도 너무 연극적이지 않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기준이 첫사랑 사무소를 만들게 되는 계기를 고민하다가 나온 건데, 처음에는 별의별 설정이 많았다. 결국 정면충돌을 생각한 거다. 어차피 이야기가 황당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거고, 내가 무대 출신인데 그게 숨긴다고 숨겨질 것도 아니라고 봤다.

-연기의 리듬이 다른 영화에 비해 빠르다. 그것도 무대의 특징일까.
= 모든 연극, 뮤지컬 연출자들이 다 빠른 건 아니다. 내가 좀 빠른 걸 선호하는 편이다. <김종욱 찾기!>는 두 사람만 나오는 이야기라 공연 때부터 빠르게 갔었다. 영화도 어차피 이야기가 새로운 건 아니기 때문에 스피디하게 가자고 했다. 우리 영화는 인서트나 전경숏을 거의 안 찍었다. 대신 소리로 신을 연결했다. 무대에서 지우가 “스탠바이, 고!” 하면 바로 기준이 “오!” 하면서 친구와 통화를 하는 식이다. 믹싱 단계에서 대사가 끝나고 다른 대사가 맞물릴 때의 속도감으로 영화 전체가 한통으로 흘러가도록 고려했다.

-인도에서 촬영한 장면은 어딘가 감독이 작정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색감의 톤도 강하고 일단 많이 담겨 있다.
=그것도 많이 자른 거다. 사실 내가 감독을 하겠다고 결정해놓고는 다음날 대표님한테 좀 유치하게 물어봤다. 그런데 인도는 가실 건가요? 안 가면 나 안 할래요. 제주도나 중국 이런 데 안되고, 도시가 예쁘다고 해서 프라하도 안된다고, 무조건 인도여야 한다고 했다. 운명과 인연에 관한 이야기인 만큼 인도라는 공간의 색감과 시간 자체가 너무나 중요했다. 지금도 대표님과 PD님에게 감사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인도를 가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두분은 시스템적으로 어려운 걸 나한테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해낸 다음 나중에야 말하더라. 만약 내가 그 이야기를 들었으면 나도 타협하려고 했을 거다.

-뮤지컬 <김종욱 찾기!>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카메오로 나왔다. 뮤지컬을 본 관객이 즐길 수 있는 요소를 배치했다.
=처음에는 카메오가 아니었다. 다들 한 작품에서 최소한 주·조연을 맡고 있는 배우 아닌가. 회의를 하는데, 다들 이 사람보다는 오만석이나 엄기준이 어울리지 않겠냐고 하면서, 그런데 해주겠냐고 고민하더라. 난 조용히 있다가 그냥 “나랑 친한데…” 이랬다. (웃음) 결국 내가 전화를 돌려서 부탁드렸다. 우정출연이 10명이 넘는데, 전화를 돌리는 데 한 시간이 안 걸렸다. 나는 그들이 안 해주는 건 둘째치고 혹시 이들이 나 때문에 할 수 없이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다. 그런데 너무나 감사하게 최일화 선생님을 포함해서 다들 흔쾌히 응해주셨다. 말하자면 다들 장유정 감독 만들기에 동참해준 거지. (웃음)

-매체의 차이가 있겠지만 원작과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부분이 달라진 것 같다.
=뮤지컬이 첫사랑 찾기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영화에서는 두 사람이 성장한다는 부분을 강조하려 했다. 한번도 끝까지 가지 못한 지우는 기준의 충고로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얻는다. 항상 뮤지컬 뒤편에 있다가 무대로 나서는 부분은 그래서 중요했다. 기준 역시 한번도 떠나본 적이 없다가 여행을 결심하게 되는 부분이 중요했다. 뮤지컬이 멀티맨을 포함해 세 사람의 이야기였다면 영화는 두 사람에게 좀더 집중하게 된 것 같다.

-현재는 <금발이 너무해>를 연출 중이다. 이후 다른 작품도 있나.
= <금발이 너무해> 이후 예정된 큰 작업은 없다. <김종욱 찾기>를 끝냈으니, 이제는 다시 뭔가를 섭취할 때인 것 같다. 작품을 쓰거나 강의하는 시간은 갖지 않으려고 한다. 오히려 내가 강의를 듣고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영화는 기회만 있다면 다시 해보고 싶다. 사실 장르를 가리려는 생각이 없다. 모퉁이를 돌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인도처럼 새로운 공간에 가서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

-그런데 왜 하필 김종욱이었나.
=이름이 가진 울림 때문이랄까. 흔하면서도 뭔가 마음을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ㅁ과 ㅇ이 부드러운 느낌으로 가다가 ㄱ이 딱 맺어주지 않나. 한번은 김종욱 전 우리투자증권 회장님이 CJ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왜 김종욱이냐고 물어보신 적도 있다. 공연할 때마다 오시고 화환도 보내주셨다. 결혼식 때도 화환을 보내주셨더라. 사람들이 다들 사진 찍으면서 왜 이 사람과 결혼 안 했냐 그러고 난리였다. (웃음) 가장 많이 묻는 게 내 첫사랑 이름이냐는 건데, 그런 거 아니다. 노코멘트다. 김씨 성 가진 사람도 만나봤고, 가운데 자가 ‘종’인 사람도 만나봤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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