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동찬] 외화 로케이션 유치하려면 세제 정비부터
2010-12-17
글 : 강병진
사진 : 최성열
세계영상위원회 이사직 재선된 장동찬 청풍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

스파이더맨이 테헤란로의 마천루를 누비는 게 가능할까? 장동찬 청풍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은 먼저 해외 영화인들을 위한 세금 제도와 인센티브 시스템 등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내에서 외국영화의 로케이션 유치를 위해서는 그들에게 매력적일 만한 상품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장동찬 운영위원장은 전세계 영상위원회의 국제 네트워크인 세계영상위원회(Association of Film Commissioners International, AFCI)의 12명의 이사 중 한 사람이다. 59개국 369개 영상위원회가 회원으로 가입해 회원간의 영화 및 TV프로그램 로케이션 유치활동을 조율하는 이 기구에서 그는 지난 2008년, 유일한 아시아인 이사로 선정된 다음, 2년 뒤인 지난 11월2일 재선됐다. 세계영상위원회의 구체적인 활동, 그리고 해외의 영상위원회들이 자국 로케이션 유치를 위해 어떤 활동을 하는지 물어보았다.

-세계영상위원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는 곳인가.
=영상위원회간의 국제 네트워크와 함께 각 영화에 맞는 로케이션 지역과 그에 대한 정보를 주는 곳이다. 예를 들어 남아프리카나 로마의 유적지에서 촬영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허락을 받고, 돈을 얼마나 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들이다. 보통은 현지인을 코디네이터로 고용해서 여기저기 알아보게 한 뒤 선발대를 보내는데, 그럴 필요가 없는 거다. 정보에 따라 추진하면 그곳에 가기 전에도 허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런 조율이 어려운 때에는 적어도 어떤 곳과 연계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줄 수 있다. 정보 제공에 대한 비용은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웃음)

-오래된 조직인가.
=1975년 뉴욕에서 처음 시작됐다. 정부나 주정부, 지자체의 예산을 지원받는 공공적인 영상위원회만 가입할 수 있다. 또 그중에서도 5명 이상의 직원과 나름대로 적정 규모의 예산이 있는 영상위원회가 자격을 얻는다. 우리나라에도 11개의 영상위원회가 있는데, 그중 세계영상위원회에 가입한 곳은 5곳뿐이다. 청풍, 서울, 부산, 전주, 경기 등이다. 조직 자체가 미국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미국쪽 회원들의 입김이 센 편이다. 총회 또한 격년제로 한번은 미국에서 열리고 한번은 다른 나라에서 열리게 되어 있다. 운영의 중추인 이사 중 반 이상이 미국인이다. 고문단에도 주로 폭스나 워너의 부사장이거나 유사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아시아의 영화시장이 점점 커지면서 회원이 많아졌고, 그래서 아시아쪽 이사가 한명은 있어야겠다는 필요성이 부각된 거다.

-세계영상위원회의 이사는 어떤 업무를 처리하나.
=명예직으로 있는 건 아니다. 실제로 단체가 운영하는 데 필요한 많은 일들을 한다. 감사에도 참여하고 운영계획을 세우고, 할리우드와 연계하는 일도 해야 한다. 회의를 하면 12시간 정도 하더라. 메일도 상당히 많이 오는데, 그에 따라 자기 의견을 보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종종 전화로 회의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1년에 한번씩 시네포지움(Cineposium)이란 총회를 여는데 거기도 참여해야 한다. 내년에는 파리에서 열리고, 2012년은 다시 미국에서 열릴 예정인데, 2013년 총회를 제천에서 유치하기 위해 뛰는 중이다. 올해 LA에서 열린 총회 때는 최명현 제천시장과 함께 참석하기도 했다. 총회에 참석하면 세계적인 동향을 파악하고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데, 한국쪽 회원들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직원 한명 정도를 보내는데, 내가 볼 때는 사무국장급 이상이 가는 게 좋을 것 같더라.

-세계영상위원회를 통해서 볼 때 다른 나라들은 로케이션 유치를 위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일단 영상위원회의 성격이 우리나라와 좀 다르다. 한국의 영상위원회 활동이 로케이션 서비스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면, 다른 나라는 아예 영화산업을 함께 관장하는 곳이 많다.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영화진흥위원회가 함께 있는 거다. 많은 나라들이 영화산업을 지식산업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산업으로 보고 있다. 일단 촬영팀이 들어온다고 해서 특별한 시설을 따로 세우거나 할 필요가 없지 않나. 공장이나 빌딩을 세울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 서비스를 하면서 돈을 쓰게 하는 거니까.

-로케이션 유치의 파급효과가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나? 사실 로케이션 유치사업이라고 하면 <반지의 제왕>과 뉴질랜드, 웨타 디지털 정도만 떠오른다.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을 예로 들면, 이 영화가 전체 예산 1500억원 중에서 400억~500억원을 요르단에 쓰고 갔다. 이 정도 예산의 영화는 아니어도 웬만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은 열흘에서 한달 정도 있으면서 100억원 정도를 쓰고 가는 거다. 아직 한국에서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유치된 적이 없었다. 홍콩이나 중국이 좀 많았고, 일본이 7편 정도를 유치했다. 그들이 매력적인 풍경과 문화유산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은 나라 전역에 100개 정도의 필름오피스가 있었는데, 로케이션 유치가 국가적인 산업으로 부각되면서 JFC(Japan Film Commission)이란 중앙기구를 특수법인으로 만들었다. 그곳에서 국가를 홍보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한편, 각 지역에 맞는 프로젝트를 분배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영화가 안 들어오는 이유는 해외에서 알 만큼 마케팅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마케팅할 수 있는 상품이 없다. 그들을 끌어올 만한 제도적인 시스템이 없으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보나.
=일단 세제 정비. 외국 영화인들에게는 부가가치세를 돌려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기준이다. 그리고 인센티브 제도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도 영상위별로 있기는 하지만, 최고 1억원 정도다. 그런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영화가 1억원을 돌려받자고 한국에 오겠나. 지금은 대부분의 국가가 인센티브 시스템을 확장하는 추세다. 특히 미국은 최근 몇년 동안 30개주에서 인센티브 제도를 만들었다. 촬영을 하면서 쓴 돈의 30%를 돌려주는 거다. 이전에는 인센티브 제도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그동안 영화산업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주에서도 관심을 갖게 된 거다. 호주는 최고 40%를 돌려준다. 또 뉴질랜드는 아예 기술쪽 인센티브 정책과 제작쪽 정책이 분리돼 있다. 로케이션 유치뿐만 아니라 후반작업 유치에도 지원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무래도 뉴질랜드의 시스템을 좋은 모델로 보고 있겠다.
=뉴질랜드는 1년에 자국영화가 3, 4편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후반작업쪽은 세계 최고로 인정받지 않나. 웨타는 <아바타>의 일을 받으면서 600명가량을 고용했고 그들은 2년 동안 일을 할 수 있었다. 2500억원 정도가 그 회사에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그만큼 산업적인 시선에서 볼 필요가 있다. 영화산업의 수익성을 박스오피스로만 따지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다. 우리나라는 기술과 인력은 다른 곳 못지않지만, 해외 마케팅이 잘 안되고 있다. 다짜고짜 아름다운 풍경이 있으니 오라는 건 말이 안되지 않나. 사실상 마인드가 별로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거다. 예를 들어, 세계 3대 공항 중 하나인 인천공항은 로케이션이 정말 어렵다. 만약 인천공항이 007 시리즈 같은 영화에 나온다고 생각해보면, 그 홍보효과는 엄청날 거다. 하지만 공항 운영진이나 그 위의 기관은 일단 공항만 잘 운영하면 되겠지란 생각을 하는 거다. 정부에서는 한국을 알리기 위해 많은 돈을 들이고 있지만, 로케이션 유치는 자본을 유입하면서 자동적으로 한국을 알릴 수 있는 기회 아닌가. 예산을 배정하고 룰을 만들어야 마케팅도 할 수 있는데, 그런 대응정책이 없는 게 안타깝다.

-청풍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 이전에는 경기영상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전에는 영화제작가협회의 사무처장이었다. 그런데 그 이전 활동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영화계에는 어떻게 들어오게 된 건가.
=사실 많이 모를 거다. (웃음)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었고, 1980년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1997년에 돌아왔다. 미국에서는 광고회사에서 일했다. 미술을 공부한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게 광고더라. 12년간 광고일을 하면서 휴지회사부터 BMW까지 약 500개 회사가 세운 마케팅, 캠페인 전략들을 알 수 있었다. 그 때문에 한국에서 영화를 할 때도 홍보로 시작했다. 정지영 감독의 <까>였는데 영화가 정말 재밌더라고. 하지만 연봉 300만원 받는 처지에서 재미만으로 일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시 LG정유에서 마케팅 관련 일을 했는데, 대기업이라 내부적으로 부대끼는 게 많아서 결국 다시 영화계로 왔다. 그때 한 일이 <하얀방>의 프로듀서였다. 그런데 이 영화도 흥행에서 참패했다. 또 한 3개월을 고민하다가 본 게 전주영상위원회의 사무국장 공채공고였다. 세계영상위원회와 인연을 맺은 게 그때였다. 직원이 2, 3명 정도일 때였는데, 일단 세계화에 맞춘 전략이 필요할 것 같아서 회원으로 가입시켰다. 그 뒤가 제작가협회였고, 그 다음이 경기영상위원회, 그리고 지금 제천에 온 거다.

-제작가협회 사무처장으로 처음 봤던 터라 어떤 영화를 했는지가 궁금했다. 이제 영화 제작은 아예 계획하지 않는 건가.
=1년 전부터 준비해온 게 있다. 뉴질랜드와 합작하는 형태의 영화다. 트리트먼트는 내가 썼고, 지금은 뉴질랜드 현지작가가 초고를 쓰고 있다. 한국이 영화를 독특하게 잘 만드는 나라인데, 눈을 넓혀서 전세계 70%의 인구를 대상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했다. 뉴질랜드 영화계에는 2003년부터 공을 들였다. 한국영화가 할리우드로 가려면 파트너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일단 영어를 쓰고 할리우드 시스템과 가까운 파트너여야 하는데, 내 생각에는 뉴질랜드가 딱 맞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였나.
=우리가 영어영화를 만들려면 그들의 문화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영어를 쓰는 나라는 4, 5개국 정도다. 나름대로 분석을 해봤다. 홍콩은 이미 동서양의 문화가 조합된 곳이기 때문에 진정한 서양문화지역으로 볼 수 없다. 그리고 상업이 발달한 도시인 만큼 위험할 수 있다. 필리핀은 영어를 잘 쓰지만 영화적 인프라가 없지 않나. 뉴질랜드는 우리나라보다 비용이 20∼30% 정도 비싸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통용되는 예산으로 찍을 수 있는 곳이다. 사람들이 술 먹고 어울리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또 영화를 시작하면 불같이 덤벼서 35일 안에 찍는다. 또 할리우드 시스템을 워낙 철저하게 따르고 있다. 어떤 이들은 뉴질랜드가 1년에 몇편 만드는지, 인구가 몇명이나 되는지만 따지는데, 그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영화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얼마나 높은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청풍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으로서는 어떻게 일하고 있는 중인가.
=처음 직원들을 만났을 때 난 세일즈맨이라고 얘기했다. 직원들이 국내 지역의 세일즈를 한다면, 난 해외 세일즈를 담당하는 거라고. 내가 전국 영상위원회 위원장 중에서는 사무국장 출신으로 위원장이 된 첫 번째 케이스다. 실무형이 될 수밖에 없는 거다. 그 첫걸음이 세계영상위원회 총회를 제천에서 유치해서 제천과 한국을 알리는 일이다. 도시의 크기와 인구의 수는 두 번째 문제다. 결국 영화산업은 마인드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시장의 의지도 올해 LA총회를 통해 확인했고, 당장은 아니겠지만 나름대로 국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하고 있다. 바쁘긴 하지만, 다이내믹하게 일하는 만큼 많은 재미를 얻는 중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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