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태현의 말버릇 중 하나는 가까운 대상을 3인칭화하는 거다. 친형을 그 형이라 표현하고, 자신의 출연작을 꼭 남의 영화처럼 말한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4살배기 아들 칭찬도 웬만해선 하지 않는, 객관적인 사람이다. 배 아파 낳은 건 아니지만 수개월 고생하며 찍은 영화를 냉정히 평가하는 모습은 마치 배우가 아닌 연출가 같다. 길게 늘어지는 에피소드가 편집에서 잘리자 “난 잘릴 줄 알았다”고 말하고, 초반에 힘이 달리는 코미디에 대해서는 “관객이 초반 10분 정도 적응하기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길게 적응 못하는 것 같다”고 말해 영화 관계자들을 긴장시키고, 차기작 <챔프>에 대해선 “전형적인 상업영화”라 말하길 서슴지 않는다. 차태현은 의외로 주관이 뚜렷하지만 감정은 에둘러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엽기적인 그녀> 이후 차태현은 조금씩 제 영역을 확보해갔다. 흥행에선 계속해서 쓴맛을 봤지만 1년에서 1년 반마다 꾸준히 작품에 출연했다. 시나리오도 넉넉히 들어왔다. <헬로우 고스트>의 시나리오는 <과속스캔들>의 음악감독을 통해 받았다. “그 사람이 시나리오 주고 그런 양반이 아닌데 읽어보라니까 읽었거든. 읽으면서 ‘왜 읽어보라는 거지? 귀신들 소원 들어주고 끝나나?’ 했는데 끝에 한방 제대로 먹고는 엉엉 울었다.” 차태현이 연기하는 상만은 따뜻한 밥 한끼 함께할 가족도 없고, 살아갈 이유도 재미도 없어서 죽을 결심을 하는 남자다. 여관방에서 약 한 뭉텅이를 입 안에 털어넣지만 죽진 못하고 애먼 귀신들만 만난다. 골초귀신, 변태귀신, 울보귀신, 먹보귀신이 들락날락거리는 캐릭터라 차태현은 혼자서 5인분을 해치워야 했다. “대본 리딩 때 내 대본 안 보고 다른 사람 얼굴 본 건 처음이다.” 기본적으로 상만이 “어두운 캐릭터”였다는 점과 “밝은 오버 연기”를 해야 한다는 점, 양면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데 차태현은 끌렸다.
*촬영 초반에는 밸런스를 맞추는 게 힘들었던 모양이다. “김영탁 감독은 계속 (코믹한 표현들을) 눌러달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솔직히 누른 게 맞는지, 원래대로 하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 결국 “철저히 계산된 연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상만이 무면허 운전으로 경찰서에 붙잡혔을 때 골초귀신(고창석)이 상만의 몸에 빙의됐다가 풀리는 장면은 배우 차태현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시나리오 보면서 너무 복잡해서 이 부분은 정말 연기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 혼자 생쇼하며 찍겠구나 했다.” 차태현의 쇼는 영화 후반부에서 더 빛을 발한다. 서서히 울먹이다 펑펑 눈물을 쏟는 차태현의 얼굴이 클로즈업될 때 초반의 지루함을 상쇄하는 큰 감동이 밀려온다. 차태현은 자신이 존경하는 선배로 종종 언급하는 송강호나 설경구처럼 개성있는 배우는 아니다. 대신 개별적인 것을 공감의 폭을 넓히는 쪽으로 일반화하는 데 대단한 재능을 지녔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장면에서도 특유의 자연스러움으로 어색함을 무마한다. <연애소설> <바보>에서 그가 소중한 것을 잃고 하염없이 울었을 때 이상하게 따라 울컥했던 건 그래서다. 정작 차태현은 “슬픈 생각해봐야 잘되지도 않고 삶에 우환도 없어서 눈물 연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차태현은 2004년 즈음부터 3년 정도 공황장애를 겪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심장이 빨리 뛰고 숨이 막혀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는 극단적인 불안 증세를 겪었다. 공황장애 증세가 정점을 찍은 때는 <바보> 촬영을 끝낸 뒤였다. “1년 동안 개봉도 못하고, 작품 외적인 부분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렇다고 시나리오가 안 들어오거나 돈을 못 번 것도 아니다. <과속스캔들>의 흥행으로 마음의 병이 나았느냐, 그것도 아니다. 지금은 정신적인 문제를 어느 정도 컨트롤 할 수 있게 된 상태라고 한다.
*현재 촬영 중인 <챔프>에서 차태현은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고 어린 딸과 함께 남겨진, 한때 잘나가던 경마 기수로 나온다. “<챔프>는 힘들다는 3대 요소를 다 갖췄다. 스포츠영화에 동물영화에 아기가 나오는 영화다. 앞으로 이렇게 힘든 영화는 내 평생에 없을 거다.” 고생담도 늘어놓는다. “시간 날 때마다 계속 말을 탄다.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까지 하려고 하는데 위험한 장면이 많다. 도로에서 말 타고 추격하는 것도 있다. 나보고 직접 하래서 승강이를 벌이고 있다. ‘왜 안 하냐’, ‘난 못한다’, ‘할 수 있다’ 하면서. (웃음)” 우리를 웃기고 울리기 위해 차태현은 다시금 총알 장전 중이다. 아마 다음엔 눈물도 모자라 콧물까지 쏟게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