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터뷰]
[주성철의 가상인터뷰] 내비도 필요없는 옌볜의 택시운전사
2010-12-29
글 : 주성철
<황해>의 구남

-안녕하세요. 아니 근데 얼굴이 왜 이리 수척하세요? 며칠 굶은 사람 같아요.
=뭐 먹을 거 좀 없습네까? 너무 춥고 배도 고픈 게 컵라면하고 소시지나 너무 먹고 싶다요.

-어쩌다 이 지경이 되셨는지, 암튼 수배 중에 이렇게 시간을 내주셨으니 인터뷰는 빨리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한국에 온 이유가 뭡니까?
=전 원래 옌볜에서 택시 운전하고 다니며 지도 만드는 일을 했습네다. 택시 운전을 하면서 하니까 속도가 끝내줬지요. 그러다 남조선 내비게이션 회사에 스카우트되어 새로 GPS 만드는 일을 했어요. 그거 하느라고 장갑도 없이 손 후후 불어가면서 한겨울에 전국 방방곡곡을 돌았죠. 전 지도 한장만 있으면 못 찾아가는 데가 없어요. 저한테 한달만 시간을 주시면 대동여지도도 만들 수 있어요.

-돈도 많이 버셨겠어요.
=내 말 좀 들어보기요. 힘들게 다 만들고 자료 다 넘겼는데 주기로 한 50만원을 안 주는 거 아이요. 참말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회사로 찾아갔더니 책상이고 의자고 다 없지 뭐요. 완전 속은 거지. 사장님 나빠요.

-그럼 그동안 무슨 돈으로 생활하셨어요?
=남조선에서도 택시 운전을 했죠. 남조선 기사들은 중앙선도 안 넘어가고 정말 얌전하더라고요. 그러니 돈 많이 벌지 않았소. 중국하고 똑같이 운전석도 왼쪽이니 적응하기도 편했지요. 그러다 살인 누명을 쓰고 쫓겨다닌 거 아이요.

-그리고 소식이 끊긴 아내를 찾는다는 목적도 있었잖아요. 이제 찾으셨나요?
=이노무 여편네. 한국에 도착했으면 도착했다고 안부전화 한통만 해주면 되는데 왜 연락을 아이 하는 것인지 말이요. 아무튼 더 나이 들기 전에 남조선 가서 꼭 아이돌 가수가 되겠다고 떠나고는 통 소식이 없네요. TV 보니 그런 가수들 영 못마땅하더니만…. 한다는데 어쩌겠소.

-어지간한 실력이 아니고서야 한국에서 아이돌 가수를 하긴 힘들 텐데, 뭐 다른 일을 하고 계시지나 않을지.
=진짜 가수가 됐는지 아니면 뭐 딴 일을 하고 있는지 알 길도 없고 답답해 죽겄어요. 아무리 TV를 봐도 안 나오는 걸 보니 가수가 된 건 아닌 거 같고. 한번은 감자탕 집에서 일하는 종업원이 아내랑 너무 닮았기에 막 쫓아갔는데, 웬 이상한 놈이 뼈다귀로 내 머리를 내리쳐서 기절한 적도 있다 아이요. 남한은 너무 무서운 나라요. 사람들 표정도 전부 개병(광견병)난 사람처럼 험악하고, 다시는 여기 올 일 없을 거요. 그냥 빨리 옌볜으로 돌아가서 엄마랑 딸하고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 생각뿐이오.

-정말 안 좋은 기억만 안고 돌아가시는군요. 새해에는 꼭 아내에게 연락이 오길 빌겠습니다. 그럼 잡히지 말고 무사히 옌볜으로 돌아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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