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뉴욕의 재팬 소사이어티는 사부 감독의 초기 코미디 다섯편을 상영한다. 1990년대 후반 베를린국제영화제는 이 일본 감독의 포복절도할 코미디영화들을 상영했고, 그 영화들을 보려고 들뜬 마음으로 기다렸던 것을 기억한다. 돌아보면 1990년대 후반은 베를린영화제의 황금기였다. 그때 베를린은 이와이 순지 감독의 초기영화들, 예를 들어 로맨스영화 <언두>와 로드무비 <피크닉>을 연이어 상영했었다. 또 곤 사토시 감독의 <퍼펙트 블루>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도 상영했었다.
베를린영화제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소개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영화제가 한국영화의 국제적 소개에 기여한 것은 그것만은 아니다. 한국영화의 국제적 비상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에너지에 넘친 한국영화를 소개한 베를린영화제에 빚진 바 있으며, 베를린영화제는 한국영화 발견의 장소로 여겨졌다. 그렇게 베를린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영화들이 여균동 감독의 <세상 밖으로>, 이민용 감독의 <개 같은 날의 오후>, 윤인호 감독의 <바리케이드>, 박철수 감독의 <산부인과>,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과 김기덕 감독의 <파란 대문> 등이다.
61회째를 맞는 베를린영화제는 올해의 영화제 상영작 목록을 얼마 전 공개했다. 경쟁부문에 아시아영화로는 단 한편인, 이윤기 감독이 연출하고 임수정과 현빈이 출연한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가 올랐다. 이외에도 한국영화들이 영화제의 파노라마 섹션과 포럼 섹션에 대거 포진해 있다. 한국영화는 파노라마 섹션에 오른 아시아영화의 절반을 차지한다. 김수현 감독의 <창피해>(이 영화는 부산영화제 상영 뒤 재편집된 판이 상영되었으면 한다), 전규환 감독의 <댄스 타운>과 류승완 감독의 사법부와 경찰의 타락을 다룬 <부당거래> 등이다. 이 세편의 한국영화 외에 아시아영화로는, 한국판 <백야행: 하얀 어둠 속을 걷다>와 같은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일본판 <백야행>과 두편의 인도영화가 있다. 또 이와이 순지 감독이 처음으로 만든 영어판 영화 <뱀파이어>가 선댄스영화제에서의 프리미어 상영에 이어 이번에 베를린에서 상영된다.
한국영화는 포럼 섹션에서 상영되는 아시아영화 중 4분의 1을 차지하며, 다큐멘터리영화 <청계천 메들리>, 김선 감독의 실험적인 영화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 김태용 감독이 연출하고 탕웨이와 현빈이 출연하는 다른 국적의 사람들 사이의 로맨스영화 <만추>가 그 영화들이다. 포럼 섹션에는 이외에도 일본, 타이, 인도, 필리핀 등에서 만들어진 아홉편의 아시아영화와 홍콩 스릴러영화인 <선인>이 특별상영된다. 젊은이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영화들을 상영하는 제너레이션 섹션에서는 필리핀영화 한편과 장이모 감독의 <산사나무 아래>가 상영된다.
제너레이션 섹션에 모욕스럽게 숨겨져 상영되는 장이모 감독의 영화는 이번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유일한 중국영화다. 중국의 뛰어난 최신 영화들, 예를 들어 리유 감독의 <관음산>, 장원 감독의 <양자탄비파>, 첸카이거 감독의 <희생>, 펑샤오강 감독의 <쉬즈 더 원2>는 모두 이번 영화제에서 제외되었다. 아시아영화 선정 측면에서 볼 때, 올해 베를린영화제 상영작 선정은 그나마 실망스러웠던 지난 10년 중 가장 실망스럽다. 한국영화 선정작들은 숫자 면에서는 비중이 크지만 이름있는 감독들의 그럴듯한 주제를 다룬 작품을 안전하게 골라 게으르고 나태한 느낌이다. 베를린영화제 상영작 선정을 한국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모르겠지만 100% 좋아할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아시아영화들이 외면당하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영화만 각광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