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매주 파리에 있는 어느 대형 영화관에서 진행된다. 영화관은 남녀 고등학생들로 가득 차고, 여기저기선 속닥거리는 소리, 키득거리는 소리, 작업을 거는 귀여운 장면도 간간이 보이는 것이 마치 <트와일라잇> 시사회에 참석한 느낌이다. 조명이 수그러들고 하얀 와이셔츠에 매혹적인 미소를 머금은 핸섬보이 올리비에 프리욜이 등장하자 다들 부랴부랴 먹다 남은 초콜릿을 가방에 챙겨넣고 필기도구를 꺼낸다. 이제 철학 수업 시작이다.
올리비에 프리욜이 철학을 얘기하며 영화관에 관객을 불러모은 지 벌써 6년째다.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그는 이미 단편영화를 여러 편 만들었고 현재 첫 장편영화를 제작 중이다. 문과지원 학생들이 철학 과목에서 좋지 않은 점수를 얻었을 경우 그들의 장래까지도 위험해질 수 있는지라 프랑스 대입자격 시험 바칼로레아 예비 수험생들에게 철학은 공포의 과목이다. 프리욜은 영화에서 발췌한 장면들을 토대로 학생들이 복잡한 이론에 좀더 쉽고 간단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프리욜은 먼저 <매트릭스>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대형 스크린에서 네오와 건축가로 나오는 인물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두 세계가 서로 맞서는 장면이다. 철학 선생이 말을 잇는다. 그 장면은 신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개념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신이란 있을 수 있는 세계 중에서 가장 좋은 세계를 선택하기 전 모든 가능성을 가늠해보는 철저히 계산적인 신이다. 이런 신이 이 영화에서 건축가로 대표된다. 반대로 데카르트에 의하면 신은 그런 계산없이 오로지 자신의 의지만으로 세계를 창조한다. 이 생각을 작품에서 표현하는 인물이 네오다.
철학 수업은 계속된다. 이번엔 오성(悟性)과 의지라는 두 개념의 차이에 대해 언급할 모양인데, 선생은 이것을 <포레스트 검프>를 통해 설명한다. 검프는 제한된 오성을 지닌 존재지만 그의 의지는 미국 전역을 활보할 수 있기 때문에 무한한 것이라고 학생들에게 말한다. 영화관 근처 작은 카페에서 그는 내게 그의 교수법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저는 <아바타>가 철학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제임스 카메론이 21세기의 칸트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영화 장면들을 교육적 수단으로 사용할 뿐입니다. 이건 교수가 어떤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칠판에 가끔 원을 그려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프리욜은 수업에서 인용할 장면을 청소년이 잘 알고 있는 <타이타닉>이나 <아이스 에이지> 같은 작품에서 뽑는 것이다. 프리욜은 그렇다고 논술시험에서 <하이랜더>를 언급해서는 안된다고 분명히 주의를 준다. 비록 주제가 ‘시간’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한때 교사였던 프리욜은 교직을 그만둔 뒤 학생들에게 좀더 자유로운 철학과의 관계를 만들어주기 위해 지금은 영화관에서만 강의하고 있다면서, “철학자 에밀 오귀스트 샤르티에(일명 알랭)는 가르치는 일과 처벌하는 일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영화관철학’을 통해 교육과 평가를 분리시킬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교수법에 대한 호의적 반응 또한 흥미로운 일이다. 철학 문제를 떠나서 그의 발상 자체가 한 도시 안에서 영화관이 하는 역할을 다시 규명해주기 때문이다.
요즘 프리욜이 강의를 하는 대형 영화관 가운데는 발레나 오페라의 라이브 공연은 물론 스포츠 경기를 재방송해주는 곳도 있다. 프리욜 역시 이같은 영화관의 새로운 용도에 제법 놀라는 눈치였는데, “영화관에서 그리스 시대의 아고라(광장)를 발견한 느낌”이라며 즐거워했다. 수업은 끝나고 관객은 서서히 영화관을 떠났다. 프리욜 아고라의 관람석 좌석 밑으로는 빈 팝콘 통들이 버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