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포스터에 얼굴 나올 때까지, <화산고>의 권상우
2002-01-02
글 : 위정훈
사진 : 정진환

“현장에선 송학림처럼 행동해라.” 감독님이 던진 한마디에 권상우는 앉을 때면 손을 무릎 위에 단정히 얹었고, 앉으나 서나 어깨를 펴고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얼굴도 송학림처럼 단아한 인상을 유지했다. 모든 행동은 고결하고 고귀하게. 학원무협영화 <화산고>에서 교장선생님을 주화입마에 빠뜨린 범인으로 누명을 쓰는 학원무림 제일인자 송학림은 그렇게 단련되었다. 어떻게 얻은 배역이던가. 권상우는 송학림이 되기 위해 사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습을 했고, ‘삼고초려’ 끝에 마침내 따냈다. 처음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 김태균 감독의 ‘무협풍’ 한마디. “내일 이 시간까지 다시 해와라.” 연기 일일 과외를 받으며 밤을 새워서 연습을 하고 이튿날 다시 만난 감독님. “어제보다 좋아졌구나. 다시 와라.” 1시간 낮잠 뒤 다시 밤새 연습에 매달렸다. 사흘째 되는 날, “앞으로 잘해보자” 한마디가 얼마나 고맙던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잊혀지는 것이고, 잊혀진다는 걸 생각하면 우울해져요.” 그래서 권상우는 배우를 꿈꾸었다. 배우는, 영화는 오래 남으니까. 고등학교 때 막연했던 꿈을 대학 다니면서 행동으로 옮겼다. 미대를 갔지만 결국 휴학을 하고 모델일을 시작했다. 교육자 집안이라 반대가 심했고, 모델일을 위해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왔을 때 집에서 돈도 부쳐주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래도 극장에 가면 더이상 볼 영화가 없어서 그냥 돌아올 정도로 서울시내 개봉작은 다 챙겨보았다. 이상하게 영화 보는 돈은 아깝지 않았다. 패션쇼에 출연하고 카탈로그도 찍다가 <화산고>를 만났다. TV드라마 <맛있는 청혼>과 <신화> 등은 <화산고> 촬영하면서 만난 드라마들이니 권상우를 발굴한 건 <화산고>의 공이다.

“송학림요? 폼 나잖아요.” 한마디로 캐릭터를 명쾌하게 규정하는 권상우에게 <화산고>는 인내를 배운 영화로도 남아 있다. 와이어액션이 많아 촬영하면서 와이어에 얼굴을 긁히고 어깨도 다쳤지만, 그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촬영중에 15번쯤 NG는 기본. 24시간 대기했다가 그냥 온 적도 있고, 촬영하러 지방에 내려갔다 3일 동안 내내 기다렸다가 올라왔던 적도 있다. 하루종일 와이어에 매달려 있다가 밥 먹을 때만 내려주던 일은 가장 힘들었던 기억. “와이어 영화는 이젠 싫어요”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비트>를 극장에서 3번, 비디오로도 수없이 봤을 정도로 정우성의 팬이고, 그처럼 청춘의 아이콘이 되고 싶단다. 현재는 “극장 포스터에 내 얼굴 나오는 게 꿈이에요. 그렇게 된다면 하루종일 극장 앞을 왔다갔다할 것 같아요” 하면서 웃는데, 청년의 패기가 절반, 소년의 수줍음이 절반씩 묻어나온다. 사람들은 점잖고 눈에 힘주는 역할이 어울린다고 하는데 <화산고>가 준 교훈 가운데 하나. “눈에 힘만 준다고 연기가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욕심 같아서는 신인상도 받고 싶고, 청춘배우 하면 권상우를 꼽을 수 있도록 올해는 정말 정신없이 뛰고 싶어요.” 지금 촬영중인 <일단 뛰어!>는 거액을 둘러싸고 벌이는 세 악동과 한 형사가 벌이는 스피디한 액션. 권상우가 맡은 역은 여자를 너무 좋아해 호스트 아르바이트를 하는 고등학생 우섭. 그리고 포스터에 얼굴 나올 ‘주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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