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ILM이다. 픽사에 대항하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선 최신예 대항마는 조지 루카스가 창조한 빛과 마술의 기업 ILM이다. 스튜디오들이 계속해서 CG애니메이션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위험수당이 높아진 블록버스터 시장에서 가장 안전하게 수익을 거둬들일 수 있는 황금광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뒤늦게 시장에 뛰어든 ILM은 어떤 전략을 취할 것인가. <랭고>는 첫 번째 대답이다.
카멜레온 랭고는 좁은 유리장 속에서 스스로를 배우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일종의 망상증 환자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삿짐 뒤에 놓여 있던 랭고의 유리장이 자동차 사고로 거대한 모하비 사막 한가운데에 떨어진다. 흉포한 사막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 랭고는 현자 아르마딜로(앨프리드 몰리나)를 만나고, 그의 조언대로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기로 결심한다. 사막 한가운데서 촌티나는 여자 도마뱀 콩스(아일라 피셔)를 만나 개척마을에 도달한 랭고는 얼떨결에 무법자 매를 죽인 뒤 보안관으로 임명된다. 하지만 랭고는 이 마을이 거북이 시장(네드 비티)이 물을 담보로 마을 주민들을 지배하고 있는 독재사회라는 걸 알게 된다.
<랭고>에서 가장 중요한 이름은 고어 버빈스키와 조니 뎁이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를 함께 작업해온 두 사람의 후광은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매 순간 조증 걸린 여배우처럼 행동하는 랭고는 잭 스패로우의 카멜레온 버전이라고 할 법하다. 조니 뎁뿐만이 아니다. <랭고>에는 레이 윈스턴, 빌 나이, 애비게일 브레슬린, 앨프리드 몰리나 등 끝내주는 성격파 배우들이 잔뜩 포진하고 있다.
수많은 성격파 배우들을 굳이 캐스팅한 이유는 <랭고>가 CG애니메이션으로는 최초로 ‘이모션 캡처’(그렇다. <아바타>의 그 ‘이모션 캡처’ 말이다)를 도입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모든 CG애니메이션 현장에서 배우들은 굳이 서로를 만날 필요없이 따로 목소리만 녹음한 뒤 편집으로 이어붙인다. <랭고>는 다르다. 배우들은 24일 동안 협소한 녹음실이 아니라 넓은 스튜디오에서 직접 얼굴을 대면하고 목소리 연기를 녹음했다. 이같은 제작 방식은 캐릭터들이 주고받는 대사의 맛을 살리기에 안성맞춤이다.
기술적으로 <랭고>는 우리가 ILM으로부터 기대하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특히 랭고 일행과 박쥐를 탄 수천 마리의 두더지 악당들이 좁은 계곡에서 벌이는 마차 추격 장면은 우리가 CG애니메이션에서 기대하는 스펙터클의 최전선이다. 종종 어떤 장면들은 캐리커처화된 캐릭터만 제외하면 거의 실사 블록버스터의 한 장면처럼 보일 지경이다. 픽사와 드림웍스, 스카이 스튜디오가 셀애니메이션의 스타일을 CG의 세계에서 재현하려 노력한다면, ILM은 오히려 극단적인 하이퍼-리얼리즘을 CG애니메이션의 세계로 끌어들여 자기만의 개성을 찾으려는 듯하다.
그런데 하이퍼-리얼리즘에의 매혹은 어쩌면 <랭고>의 가장 큰 함정일 수도 있다. <랭고>는 기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서사에서도 종종 실사영화를 흉내내려 한다. 어쩌면 고어 버빈스키와 ILM은 일종의 안티-픽사/드림웍스 영화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버빈스키는 <셰인> <석양의 무법자> 등 고전 서부극 장르의 클리셰를 거의 그대로 이야기에 도입하고, 클라이맥스에서는 인간들이 살아가는 라스베이거스 골프장의 스프링클러를 비추며 실사와 애니메이션 세계의 경계마저 허문다. 이같은 영화광적 재주가 꽤 재미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CG애니메이션에는 실사와는 다른 고유의 이야기 구조가 있어야 한다(픽사가 이걸 가장 잘한다). 그걸 무시하고 실사 극영화처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탓에 <랭고>의 이야기는 종종 속도감을 잃고 말라붙은 카멜레온처럼 뻣뻣해질 때가 있다.
CG애니메이션다운 귀여운 캐릭터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뒤쥐, 들쥐, 바늘두더쥐, 타란툴라 같은 사막 동물들을 슬래셔영화에 등장하는 남부 레드넥 촌놈들처럼 캐리커처화한 조연 캐릭터들은 기이하게 현실적이다. <랭고>는 애들을 위한 CG애니메이션은 아니다. 혹은 ‘내면의 아이’를 불러내고자 CG애니메이션을 보는 순진한 관객을 위한 영화도 아니다. 고어 버빈스키와 ILM은 어른을 위한 CG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그건 장점인 동시에 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