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뒤 백수 시절엔 한동안 ‘비디오테크’(비디오로 영화를 상영했던 시네마테크의 맹아 단계였다)에 출입했다. 기획전을 본다거나 비디오를 대여한다는 게 명분이었지만 혼자 심심하게 지내던 터라 뒤풀이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기 위해서라는 게 사실상의 이유였다. 그냥 헐렁헐렁 찾아가서 대단하다는 영화를 보다 졸다 하다가 저녁때면 정신이 들어 술자리에 몸을 내맡기던 나날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뒤풀이 자리가 썰렁해지기 시작했다. 비디오테크에서 16mm영화 워크숍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기에 그치지 않고 직접 만들기를 열망하던 그곳 사람들 대다수가 여기에 몰두했다. 뭔가를 직접 만들어낸다는 건 생각도 해본 적도 없고 엄두도 내지 않았던 입장에선 해질녘이 다시 두려워졌다.
영화감독에 대한 꿈을 아예 꿔보지 않은 건 아니다. 특히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영화를 만들거나 단편영화 시절부터 눈여겨봤던 감독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서 ‘나라고 뭐…’라는 거만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곧바로 따라오는 생각은 ‘재능이 없잖아’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몹시 우울할 땐 이런 상상을 할 때가 있다. 그때 사람들을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워크숍에 참여했더라면? 그 워크숍에서 대단한 흥미를 발견했다면? 숨겨졌던 엄청난 재능을 찾아냈더라면? 그런데 가만.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군. 맞아, 워크숍 참가비가 없었잖아. 당시 헐벗은 백수 신분으로는 몇 십만원이었을 그 비용을 감당할 방도가 전무했으니까.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스마트폰영화 시대라 부를 수 있게 됐다. 값이 비싸긴 하지만 일단 스마트폰만 있으면 나만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디지털 비디오카메라가 등장했을 때 많은 이가 부르짖었던 ‘DIY영화 시대’가 정말 도래한 셈이다. 오죽하면 이번 특집기사를 준비하던 <씨네21>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며칠 만에 뚝딱 영화를 만들었겠나. 물론 그렇게 만든 영화는 극장에서 상영할 수준이 안될지 모른다. 하지만 재미로 시작했던 게 취미로 발전할 수 있고, 잘하면 영화 연출이란 분야에 본격적인 흥미를 갖게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어쩌면 자신도 몰랐던 굉장한 재능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때 만약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내가 영화감독이 됐을 수도 있고, 한국영화계에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겼을지도…. (아 네, 정신 차릴게요)
스마트폰영화를 특집기사로 다룬 건 박찬욱, 박찬경 감독의 <파란만장>이 베를린영화제 단편부문 황금곰상을 받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자신을 표현하기 두려워하지 않는 여러분에게 새로운 표현수단을 소개하고자 함이 더 컸다고 하겠다. <씨네21> 기자들이 그랬듯 여러분도 스마트폰을 통해 각자의 첫 영화를 만들어보시길 권한다.
아, 김성훈 기자, 아니 김성훈 감독의 스마트폰영화 데뷔작 <장기자의 미묘한 인터뷰>는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다. 따끔한 20자평과 별점 또는 폭탄을 달아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