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 킹덤> Animal Kingdom (블루레이 / 2010)
감독 데이비드 미쇼
상영시간 113분
화면포맷 2.35:1 아나모픽 / 음성포맷 DTS HD 5.1 영어
자막 영어 / 출시사 소니픽쳐스홈엔터테인먼트(미국)
화질 ★★★★ / 음질 ★★★★ / 부록 ★★★★
4년여 간격으로 등장한 세편의 호주영화, <란타나> <프로포지션> <애니멀 킹덤>에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제에 선보이는 대개의 영화들이 예술영화의 외피를 두르는 것과 달리 이들 세 작품은 과감하게 장르영화를 선택해 호주 안팎의 영화제를 휩쓰는 성공을 거두었다. 장르에 장난을 걸거나 변형을 가하는 대신 본질에 착실하게 접근한 점도 높이 평가할 부분이다.
특히 2010년 선댄스영화제의 월드시네마 드라마부문 심사위원대상 수상작인 <애니멀 킹덤>은 ‘데이비드 미쇼’라는 신성을 세계 영화계에 소개했다. 데이비드 미쇼가 영화의 초벌 각본을 쓴 뒤 영화를 완성하기까지는 10년이 걸렸다 한다. 당시 영화학교를 갓 졸업한 그에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꾸준히 각본과 단편영화 작업에 매진하면서 준비에 준비를 거듭한 결과다.
1980년대의 멜버른. 17살 소년 조쉬가 죽은 엄마의 곁에 앉아 TV를 보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 아들과 단둘이 살던 엄마는 결국 마약 과다복용으로 죽은 터였다. 장례 절차가 힘에 겨운 소년은 오랜만에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고, 그녀는 기꺼이 찾아와 손자를 자신의 집으로 받아들인다. 조쉬는 할머니의 집에 가서야 왜 엄마가 가족을 무서워했는지 알게 된다. 할머니와 세명의 삼촌은 추악한 범죄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었다. 옆의 차와 승강이를 벌이다 조카에게 총을 주며 위협하라고 가르치고, 가족이 둘러앉은 테이블에서 마약을 들이켜다 함께 취하자며 유혹한다. 어느 날 동료 범죄자가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 사건이 벌어진다. 큰삼촌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복수극에 가담하게 된 소년은 가족과 법 사이에서 갈등한다.
‘에어 서플라이’가 출연해 <올 아웃 오브 러브>를 부르는 모습이 TV에 나오는 중이었다. TV 옆 소파에선 조쉬와 여자친구가 곤히 잠들어 있는데, 맞은편에 앉은 삼촌은 불길한 눈으로 소녀를 바라본다. 미쇼는 그 장면 하나로 1980년대 호주의 도시 풍경을 전한다. ‘리틀 리버 밴드’와 ‘에어 서플라이’가 멋진 문화 수출품이던 시절, 바깥사람들의 눈에 호주는 사랑스럽고 멜로디 넘치는 노래만큼 아름답고 건전한 나라로 비쳤다. 그러나 미쇼가 기억하는 1980년대의 멜버른은 범죄의 중심에 위치한다. <애니멀 킹덤>은 그즈음 벌어진 경찰 살해사건과 악명 높았던 가족범죄단에 바탕을 둔 작품이다.
<애니멀 킹덤>은 과묵한 소년의 눈으로 선과 악을 바라보는 방식을 취한다. 기괴한 괴물을 대하듯 가족을 주시하는 소년의 눈에 악의 핵심은, 세 범죄자 아들을 키우고 조종하는 할머니다. 벽에 걸린 싸구려 액자를 배경으로 영화의 타이틀이 나오는데, 거기엔 무리를 거느린 수사자의 모습이 박혀 있다. 묘하게 뒤틀린 표정으로 가족을 이끄는 할머니는 바로 그 수사자에 다름 아니다. 그녀는 갱스터영화의 고전 <화이트 히트>(1949)에서 아들을 악당의 우두머리로 키우는 어머니에 견줄 만하다. <화이트 히트>의 악당 코디(우연치곤 신기한 것이, <애니멀 킹덤>은 코디를 성으로 둔 가족 이야기다)가 어머니의 그늘에 가려 소년의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처럼 조쉬는 세 삼촌이 두려움에 떨며 몸부림치고 있음을 목격한다.
그런 점에서 영화의 결말을 여러 관점- 복수의 완성, 남성 우두머리의 복권, 악의 종말- 으로 읽을 수 있도록 열어놓은 게 신선하다.
장르의 걸작으로 치켜세우기엔 부족하지만, 이 정도 진지한 자세라면 감독의 미래를 기대해도 되겠다. 미국에서 발매한 블루레이는 감독의 음성해설, 메이킹필름(72분), LA필름페스티벌에서 관객과 나눈 대화(34분)를 부록으로 수록했다. 방대한 양에 비해 단조로운 내용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