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평양>은 양영희 감독의 전작 <디어 평양>과 마찬가지로 감독 자신의 가족사를 담고 있다. 조총련계 간부였던 양영희의 아버지는 양영희의 세 오빠를 1970년에 북한에 보냈다. 양영희의 오빠들은 북한 사람으로 살면서 가정을 꾸렸고 유일하게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자기 삶을 살았던 양영희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어 자신의 가족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들은 자주 만날 수 없다. 양영희의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싸서 보내주는 온갖 생활필수품과 돈이 북에 사는 양영희 오빠 가족들의 생명선이다. 여기까지는 <디어 평양>에서 상세하게 다뤄진 부분이다. <디어 평양>에서 양영희는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자식들에게 전수한 아버지와 대립했지만 결국에는 화해한다. 아버지의 사상을 존중하고 자신의 입장도 지키는 가운데 그들은 화해한다.
<디어 평양>은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리게 되는 감동적인 영화였다. 흔해 빠진 가족의 화해 같은 상투어로 수식될 수 없는 감동의 정체는, 우리는 서로 각자의 길을 가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고 그것이 굴곡 많은 상처의 흔적들로 가득 채워진다 해도 그 상처조차 삶의 귀중한 자산이라는 걸 이 영화는 보여줬다. 그런데 끝내 잘 알 수 없었던 것은 평양에 사는 남은 가족들의 마음이었다. 영화 속에 오가는, 오랜만에 해후한 양영희의 부모와 오빠 가족들 사이에는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만, 그것도 간결한 대화만 오간다. 그들이 만나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것은 그들의 표정과 몸짓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그들이 일상적인 표정을 짓고 소소한 기쁨의 순간을 나누는 가운데 끝내 말하지 못하는 어떤 회한 같은 것이 <디어 평양>에서는 화면 바깥에서 메아리친다. 이를테면 일본에서 자랄 때 커피와 클래식 음악을 옆에 끼고 살았던 양영희의 큰오빠는 평양에 가서 한동안 서양 음악이 금지된 시절을 보냈다. 서양 음악 중에 클래식만 허용된 뒤에 그의 큰아들은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이 되어 그를 기쁘게 한다. 영화 속 한 장면에는 능숙하게 가족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아들이자 손자 앞에서 흐뭇해하는 양영희의 아버지 양공순과 큰오빠의 모습이 나온다. 양공순은 ‘세계 최고’라고 기뻐하지만 큰오빠는 희미한 미소만 띠고 있을 뿐이다.
감독 자신을 닮은 조카 선화를 중심으로
<굿바이, 평양>에서 카메라의 주된 대상은 양영희의 부모와 오빠들에서 다른 인물, 양영희의 둘째 오빠의 막내딸 선화로 바뀐다. <디어 평양> 개봉 이후 북한 입국이 금지된 양영희가 평양을 마지막으로 방문한 게 2005년이니 <굿바이, 평양>에 담긴 선화의 이미지들은 <디어 평양>을 구상하며 담았던 것들 가운데 빠졌던 것들을 새로 구성한 것이다. <디어 평양>에서 양영희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일상을 충실하게 따라가며 평양 방문기를 구성한 것에 비하면 <굿바이, 평양>의 주인공은 선화가 성장하는 모습과 그녀의 주변 가족들의 모습이 훨씬 중심에 있다. 이 영화에서도 그들의 마음을 카메라와 관객인 우리가 읽어낼 도리는 없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 평양 대극장 앞에 놀러간 양영희와 선화는 연극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데 선화가 대극장에 몇번 놀러왔지만 연극 보는 것은 별로라고 말하자 양영희는 이유를 묻는다. 선화는 카메라를 끄면 말하겠다고 하고 화면은 암전된다. 양영희가 좋아하는 서구의 연극 레퍼토리를 말하자 선화는 자기가 잘 몰라도 계속 얘기해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는 자막이 화면에 흐른다.
이런 것들이 평양에 사는 양영희의 조카 선화를 비롯한 오빠 가족들의 억압적인 현실을 드러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거꾸로 선화는 너무 잘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감추지 않는 형태로 드러난다. 선화뿐만 아니라 선화의 오빠나 사촌 오빠들도 반듯하게 자란다. 똑똑하고 예의가 바른데도 그 나이 또래의 생기를 꾸밈없이 발산한다. 나는 이것이 신기했다. 선화의 아빠인 양영희의 둘째 오빠가 선화의 손을 꼭 잡고 학교에 데려다주는 장면을 양영희의 카메라가 길게 따라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들의 모습은 행복해 보인다. 낙엽에 쌓인 거리를 부녀가 함께 걷는 모습이 너무 좋다고 카메라를 든 양영희가 말해줘도 둘째 오빠는 늘 그렇듯이 별다른 말이 없다. 그런데도 어린 선화의 씩씩한 발걸음과 둘째 오빠의 느릿한 걸음걸이가 조화를 이루며 그들 사이에 오가는 따뜻한 친밀감이 생생하게 전해온다. 선화의 학교에 도착해 학교로 들어가는 선화의 뒷모습을 줌렌즈로 당겨 잡으며 양영희가 자신은 이곳에서 여전히 이방인이라는 것을 자각했다고 내레이션을 통해 고백할 때 우리는 이 영화의 목적이 자신의 분신 같은 선화에게 투사하는 양영희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양영희와 그녀의 조카 선화는 비슷한 운명을 겪고 있다. 그들은 아버지의 이념에 따라 다른 선택이 없는 삶을 부여받았다. 전세계에서 유례없이 고립된 공산독재국가체제를 추종한 아버지 세대의 삶을 따라 그들은 똑같은 삶을 살 것을 요구받았으나 양영희의 자의식은 그걸 거부했고 선화는 어떤 마음인지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적어도 화면에서 선화는 늘 행복해 보인다. 가장된 행복이 아니라 진실로 행복해 보인다. 양영희는 자신의 체험을 따라, 그리고 아버지와 오빠들이 끝내 발설하지 못했던 불행의 상처를 보듬으며 선화를 보려 하지만 선화는 그런 주변인들의 시선을 튕겨낸다. 자신의 삶의 선택지가 여럿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아예 차단된 사회에서 선화는 체제의 궁핍과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불행을 강인하게 내면화했는지도 모른다. 영화 말미에 북한 입국이 금지된 양영희에게 이제 대학생이 된 선화가 영문으로 쓴 편지를 보낸 것을 화면이 비출 때 세살 때 양영희의 카메라에 비친 여자아이가 반듯하게 장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아이의 마음속에는 어떤 것들이 응축돼 있을까.
이념으로 괄호치지 않은 존재의 생생함
감독 양영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을 했다. 전작인 <디어 평양>에서 그는 끊임없이 아버지에게 말을 건넴으로써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아버지의 마음을 슬쩍 짐작할 수 있는 몇 마디 말을 받아낸다. 국적 변경은 절대 안된다고 하던 그가 양영희의 한국 국적 취득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거나 아들들을 북한에 보내지 않았다면 좋았을걸, 이라고 토로하는 장면이 그렇다. 당연히 양영희와 선화와의 관계에서 그런 내밀한 토로는 허락되지 않는다. 양영희는 그저 북한에 있는 선화와 선화의 가족 친지들의 외양만을 찍는다. <굿바이, 평양>의 한 장면에서 평양을 방문한 양영희의 아버지와 큰오빠는 산책을 나선다. 이것은 <디어 평양>에서도 나왔던 장면이다. 산책장면의 도입부만을 보여주면서 양영희는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산책이 될 것인 줄 그때는 알지 못했다고 내레이션한다. <디어 평양>의 마지막 부분에서 위독했던 아버지는 사망했고 큰오빠도 우울증으로 세상을 등졌다. 자신의 삶을 설계할 자유를 갖지 못한 채 아버지의 이념을 따라 북에 건너왔던 큰오빠는 평생 그것에 대한 어떤 말도 남기지 않은 가운데 저세상으로 갔다. <디어 평양>에는 그렇게 말하지 못했던, 이념으로 묶여 상처를 주었던 가족들 내부에 흐르던 감정의 접착이 끈질기게 흐르고 있다.
<굿바이, 평양>은 가족들 사이의 굴곡들보다는 어른들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던 어린아이 후손이 반듯하게 자라는 모습만을 담는다. 이 다큐멘터리의 애초 제목이 ‘선화, 또 하나의 나’였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양영희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이 조카에게 뭔가 투사하려고 했지만 자신이 건져낼 수 있는 것만을 건져낸 것이 <굿바이, 평양>이다.
좀 감상적인 얘기지만 전작 <디어 평양>과 마찬가지로 정치색으로 필터링하지 않는 인간 존재의 생생함이 이 영화의 정서적 활력을 가능하게 해준다. 여하튼 우리는 살아 있고 살아갈 것이고 그걸 대자적으로 의식하는 이 상태가 주는 활력이 이 영화에는 충만하다. 카메라로 함께한다는 것은, 곁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만큼이나 흥분되는 경험이라는 걸 <굿바이, 평양>은 알려준다. 대단한 미학을 내세우는 것도 아니지만 <굿바이, 평양>은 그 생생한 활력, 카메라와 함께하는 존재의 겹침과 공존이라는 열망을 이념으로 괄호치지 않고 그려냈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다큐멘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