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 스톤의 이지 Easy A (2010)
감독 윌 글럭
상영시간 92분
화면포맷 1.85:1 아나모픽 / 음성포맷 DD 5.1
자막 영어,한글 / 출시사 (주)유이케이스
화질 ★★★☆ / 음질 ★★★★ / 부록 ★★☆
<엠마 스톤의 이지>(이하 <이지>)의 엔딩은 하이틴로맨스를 상징하는 위대한 장면에 오마주를 바친다. 80년대식 로맨스를 사랑하는 팬이라면 ‘소녀의 방 창문 너머로 남자친구가 스피커를 양손에 들고 있는’ 장면을 보고 곧바로 카메론 크로의 <금지된 사랑>을 떠올릴 거다. 그런데 <이지>의 감독 윌 글럭은 <금지된 사랑>에 나온 피터 가브리엘의 <네 눈 속에> 대신 심플 마인즈의 <나를 잊으려 하지 마>를 사용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심플 마인즈를 불러내 1980년대 하이틴로맨스의 전설 존 휴스와 그의 친구들을 기억하려는 속셈이다. 글럭은 영화 곳곳에서 그 시절의 영화를 인용하며, 주인공 소녀 올리브의 입을 빌려 수십년 전 하이틴로맨스를 찬양하게 만들고, 심지어 <아직은 사랑을 몰라요> <조찬 클럽> <페리스의 해방> 등의 클립을 극중에 삽입해놓았다.
소녀는 “기사도는 어디로 간 걸까. 80년대 영화에만 존재하는 걸까. 한번만이라도 내 인생이 80년대 영화 같았으면 좋겠다. 내 인생을 감독한 건 존 휴스가 아냐”라고 푸념하는데, 말인즉 옳다. ‘80년대라 해서 남자들이 어디 기사도를 발휘했겠냐만 동시대 영화에서 그런 낭만적인 꿈을 꿀 수라도 있었다는 말이다.’ 90년대를 지나면서 주류 영화감독 가운데 하이틴로맨스나 로맨틱코미디에 주력하는 사람은 사라졌다. 신인부터 노장까지 로맨틱코미디를 한편씩 연출하지 못하면 뭔가 허전했던 80년대의 패션은 더이상 재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글럭이 단지 몰락하는 하이틴로맨스를 애도하고자 <이지>를 만든 건 아니다. 그는 선배영화를 향해 ‘페이스북과 스마트폰과 웹캠 시대의 하이틴로맨스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려는 듯하다. <이지>는 호평과 함께 엄청난 흥행을 했고, 주연을 맡은 에마 스톤은 올해 ‘골든글로브’의 코미디부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소도시 오하이. 오하이노스고등학교에 다니는 올리브가 웹캠을 보며 지난 몇주 동안 벌어진 일에 대해 고백한다. 올리브는 눈에 안 띄는 지극히 평범한 여고생이었다. 주말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여자친구의 집요한 추궁에 넌더리가 난 올리브는 오빠 친구와 관계를 가졌다고 말해버린다. 이왕 거짓말을 하는 김에 없는 사실을 좀더 부풀리기도 했다. 화근이라면 교내 보수주의의 맹렬 수호자인 마리안이 화장실 안에서 모든 걸 엿듣고 있었다는 것. 사명감에 불타는 마리안에 의해 소문은 번지고, 올리브는 순식간에 전교 최고의 ‘헤픈 아이’로 낙인찍힌다. 급기야 돈을 들고 와 한심한 사정을 늘어놓는 남자아이들마저 나타나자, 올리브는 보란 듯이 ‘같잖은 악명’에 맞대응하기로 결심한다. 등교하며 입고 나온 그녀의 야한 재킷 위에는 ‘A’자가 선명하게 붙어 있었다.
<엠마>가 <클루리스>로, <위험한 관계>가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으로 탈바꿈한 것처럼, <이지>는 <주홍글씨>의 무대를 하이틴 세계로 느슨하게 옮긴 작품이다. 미국 고등학교의 성도덕이 평소 생각과 좀 다르다고 생각되지만 한국산 아저씨인 필자가 그 진실을 알 방법은 없다. 게다가 <이지>가 미국의 청교도적 윤리나 작금의 정신적 상황을 비판하려고 만들어진 것 같지도 않다. <이지>는 <주홍글씨>의 헤스터 프린의 현재형으로서 올리브를 제시하는 데 의미를 둔다. 침묵하고 희생하는 헤스터와 반대로, 올리브는 얼굴을 곧추 들고 입을 열어 악행에 정면으로 저항한다. <이지>는 똑똑하고 엉뚱하며 재미있는 하이틴영화다. 에마 스톤을 둘러싼 유명배우들의 감칠맛 나는 조연도 영화의 완성도에 일조한다. <이지>의 DVD는 감독과 배우의 음성해설, 개그릴(5분), 오디션 영상(1분)을 부록으로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