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화야? 비디오게임이야?
2011-04-12
글 : 안현진 (LA 통신원)
LA에서 만난 <써커펀치>의 잭 스나이더 감독과 제작자, 배우들

잭 스나이더 감독의 신작 <써커펀치>는 스나이더 영화 최초로 오리지널 스크립트로 만들어진 영화다. 배경은 1950년대, 사악한 계부의 계락으로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정신병원에 갇힌 베이비돌(에밀리 브라우닝)은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처할 때마다 다른 차원의 정신세계로 탈출한다. 정신병원이라는 현실에서 탈출한 베이비돌의 2차 현실은 강압적인 사장이 운영하는 고급 클럽. 현실에서는 정신병원에 수감된 소녀들이 클럽에서도 자유를 박탈당한 채 낮에는 청소하고 밤에는 무대 위에서 춤을 춘다. 약물치료와 상담, 구속복에서 탈출한 두 번째 현실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베이비돌은 춤을 추라는 강압에 한번 더 현실에서 탈출하는데, 세 번째 현실에서 만난 현자에게서 지도, 불, 칼, 열쇠, 그리고 미지의 한 가지 아이템을 찾으면 자유를 얻게 된다는 귀띔을 받는다. 이때부터 베이비돌은 스위트피(애비 코니시), 로켓(제나 말론), 앰버(제이미 정), 블론디(바네사 허진스)와 함께 탈출을 궁리하고, 각각의 아이템을 얻는 과정은 베이비돌의 대체현실 속에서 비디오게임의 전투장면처럼 변형되어 펼쳐진다.

<USA투데이>에 따르면 <써커펀치>는 “코믹북처럼 쓰여지고, 비디오게임처럼 촬영된” 영화다. 지도, 불, 칼, 열쇠를 얻어야 탈출할 수 있는 미션-클리어 방식으로 짜인 점, 스팀 로봇, 드래곤, 안드로이드 등 소녀들이 맞서야 하는 대상, 그리고 <300> <왓치맨>에 이어 블루 스크린과 CG를 적극 활용한 덕분에 전체적으로 명도와 채도가 낮아진 화면이 이같은 촌평에 힘을 싣는다. 무엇보다 액션장면 하나하나가 게임 화면에서 튀어나온 듯 스타일리시하다. 하지만 <슬랜트 매거진>은 “소프트코어 선전영화와 걸파워 페미니즘 사이의 줄타기”라는 이죽거림에 가까운 비평을 남겼고, <EW>는 평점 D와 함께 “특수효과마저 정신병원에 가둔 영화”라고 혹평해 300건에 가까운 네티즌의 코멘트를 초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커펀치>의 가장 큰 두 가지 성취를 꼽자면 블루 스크린 액션만큼은 잭 스나이더에 견줄 이가 없다는 확증일 것이고, <Sweet Dream> <Army of Me> <Where Is My Mind?> 등이 흐르는, 너무 노골적이어서 오히려 흥미로운 O.S.T일 것이다. <써커펀치>의 미국 개봉을 한주 앞둔 지난 3월21일, 출연진과 잭 스나이더 감독, 그리고 감독의 부인이자 제작자인 데보라 스나이더를 만났다. 1시간 동안 9명을 만나서 나눈 초고속 인터뷰의 일부를 짧은 문답으로 정리해 지면으로 전한다.



감독 잭 스나이더와 제작자 데보라 스나이더 인터뷰

“죽음보다 두려운 건 아이덴티티의 상실”

데보라 스나이더, 잭 스나이더(왼쪽부터)

-<써커펀치>는 당신의 첫 오리지널 스크립트다. 어떻게 시작된 이야기인가.
잭 스나이더_<써커펀치>는 오래전에 생각해둔 짧은 스크립트에서 출발했다. 한 소녀가 춤을 추라고 강요받는 시퀀스가 있었는데, 그 상황을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다른 차원의 판타지로 도망친다는 이야기였다. 그 짧은 이야기가 <써커펀치>의 시작이 됐다.

-이야기에 어울리는 비주얼이 떠오른 것은 언제인가.
잭 스나이더_나는 비주얼과 이야기가 거의 동시에 떠오르는 편이다. <써커펀치>는 내가 좋아하고, 나를 흥분시키는 거의 모든 것에서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주인공이 여자라는 점에서, 남성성을 강조했던 당신의 전작들과 사뭇 다르다.
잭 스나이더_어떤 짧은 이야기를 떠올렸는데 주인공이 소녀였던 것처럼, 액션영화를 만들었는데 중심인물이 여자일 뿐이다. 그 다음에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상상해보았다. 내가 이 소녀라면 가장 피하고 싶은 두려움이 무엇일까? 그때 떠오른 것이 <혹성탈출>(1968)에서 외계인에게 두뇌를 빼앗기는 장면이었다. 내 생각에 죽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이 나의 아이덴티티를 상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잃어버리는 두려움을 기저에 두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데보라 스나이더_질문에 보충 설명을 하자면 잭과 이 영화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300> 이후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영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왔다. 영화에서 소녀들은 강인하지만 동시에 연약하기 때문에 눈물도 흘리고, 서로에게 기댄다. 영화는 우정과 희생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나는 영화 속 여자들이 무기를 들고 싸우지만 섹시하다는 사실, 섹슈얼리티가 가장 기본적인 무기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잭에게 이런 점은 꼭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3D로 상영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
데보라 스나이더_처음에는 3D로 상영할 계획이었고, 그것이 영화와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처음부터 3D로 계획해서 만든 애니메이션 <가디언의 전설>과 다르게 자료를 조사하면서 실사 3D가 전달할 수 있는 경험에 한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오히려 기술이 이야기의 전달에 방해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들어서 3D로 만들려는 계획을 접었다. <써커펀치>는 3D가 아니어도 비주얼의 장점이 많은 영화기 때문에 굳이 불완전한 3D로 나쁜 극장 경험을 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세 배우 에밀리 브라우닝, 제나 말론, 바네사 허진스 인터뷰

“소녀들의 적은 남자! 재밌지 않아?”


-소문에 의하면 많은 여배우가 이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 했다. 오디션은 어떻게 진행됐나.
에밀리 브라우닝_정말인가? 오디션을 여러 명 봤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웃음) 영화의 시작에 나오는 스위트피가 독백하는 것으로 오디션에 임했다. 베이비돌, 앰버, 로켓, 블론디, 스위트피의 대사 모두를 읽었고, 두 번째 오디션에서 베이비돌의 대사를 다시 읽어보라고 했다. 그 다음에 잭이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다(에밀리 브라우닝은 O.S.T에 삽입된 두곡을 직접 불렀다.-편집자). 이전까지 한번도 나서서 노래를 부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부분이 나에게는 가장 힘들었다. 50번인가 녹음을 해서 파일을 보냈는데, 그 뒤에 내가 베이비돌 역할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4개월 동안 액션, 춤, 사격 등을 연습했다고 들었다.
바네사 허진스_함께 출연하는 여배우들과 처음 만난 장소가 체육관이었다. 땀에 젖은 바지에 땀에 젖은 얼굴로 매일 같이 구르고 뛰고 춤춰서 정말 친해졌다. 환경이 그렇다 보니 친해지는 것 말고는 따로 할 것도 없었다. (웃음)
에밀리 브라우닝_내 무기는 기관총이나 소총이 아닌 검이라서, 사격은 45구경 권총으로 연습했다. 초반에 계부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을 위한 연습이었는데, 연습을 많이 한 탓인지 숙달된 경찰처럼 총을 겨누는 바람에 잭이 좀 어설프게 해보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웃음)

-터프한 여전사 역할을 위해 참고한 캐릭터가 있나.
에밀리 브라우닝_<킬 빌>에 나오는 ‘고고 유바리’를 생각하면서 연기했다.
제나 말론_<포카혼타스> <인어공주> <알라딘>의 여성 캐릭터들을 생각했다. <킬 빌> <툼레이더> <니키타> 같은 여전사들보다 내게는 더 멋진 여자 영웅이 바로 이들이다.

-영화에서 남자들은 모두 악당으로 등장한다.
제나 말론_여성은 오랫동안 영화 속에서 다양하게 대상화되어왔다. <써커펀치>에서 (현자를 제외한) 모든 남자들이 괴물처럼 끔찍하게 묘사되는 것은 그동안 영화들이 여성들을 대상화해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소녀들이 전투에서 싸우는 상대가 모두 남자인 것도 그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 전투에서 엄마 드래곤만 빼면 소녀들의 적은 모두 남자다.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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