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결국 단 한번도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지 못했다. 단 한편의 영화로 영화사에 지워지지 않을 족적을 남기며 거장의 반열에 드는 이도 있지만, 적어도 시드니 루멧은 아니다. 33살에 <12명의 성난 사람들>(1957)로 화려하게 데뷔한 이래 25편에 이르는 작품을 남겼지만 100대 영화에 뽑힌 것은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선정한 <네트워크>(1976) 정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드니 루멧만큼 거장이란 칭호가 어울리는 감독도 드물 것이다. 무려 4차례나 감독상 후보에 올랐지만 번번이 고배를 안겨준 아카데미가 2005년 그에게 선사한 평생공로상이 진정 빛났던 까닭은 그것이 단지 81살의 영화계 원로에게 형식적으로 바치는 빛바랜 영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2년 뒤 루멧은 무시무시한 완성도로 미국의 비극을 포착해낸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2007)를 선보인다. 데뷔부터 마지막 작품이 된 이 영화까지 무려 50년의 세월을 격하여, 녹슬지 않은 날카로운 감각과 사그라지지 않을 열정을 과시하던 ‘평생 현역’ 시드니 루멧이 지난 4월9일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림프종으로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나이 향년 여든여섯. 늘 현재진행형이었던 그의 영화인생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세월도 시대도 아닌 오직 죽음뿐이었다.
변하지 않는 ‘시대의 양심’
1924년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성장한 루멧은 유대인 연극배우였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4살 때부터 뉴욕의 아다시 극장 소속의 아역배우로 연기 경험을 쌓는다. 더불어 어린 시절 막 보급되기 시작한 텔레비전의 생방송을 보고 자란 그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1950년 <CBS>에 채용되어 무려 500편 이상의 TV드라마를 연출한다. 연극으로 다져진 연기 경험과 방송 현장에서 체득한 저널리즘 특유의 현장성은 이후 그의 영화 작업의 기반이 된다. 1957년 배우 헨리 폰다의 강력한 요청으로 데뷔한 <12명의 성난 사람들>이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르며 일약 주목받는 감독이 된 루멧은 이후로도 꾸준히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지적이면서도 왕성한 활동을 자랑하는 감독으로 주목받는다. 그는 드라마, 코미디, 로맨스, 스릴러, 뮤지컬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을 소화한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의 장기는 사회성 짙은 영화들에서 주로 발휘된다. 데뷔작을 시작으로 <뜨거운 오후>(1975), <네트워크> , <심판>(1983) 등 4편의 작품이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르지만 민감한 정치적 문제를 늘 과감하게 다루는 사회비판적 성향 때문인지 번번이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이유로 인해 변하지 않는 ‘시대의 양심’으로서 할리우드에서 가장 존경받는 감독 중 한명이기도 하다.
거장으로 불리는 감독들은 대개 오랜 시간 영화 작업을 하더라도 가장 빛나는, 혹은 시대를 대표하는 시기가 있게 마련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 영광의 시기에 갇힌다고 볼 수도 있다. 반면 루멧의 가장 놀라운 점은 5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을 꾸준히 생산해내며 늘 청년의 활기를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의 작품은 때로는 주목받지 못하고, 더러 완성도에 편차가 있을지언정 적어도 재미없는 영화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영화의 기본에 충실한 그의 힘은 이야기로부터 비롯된다. 흔히 루멧의 영화를 <에쿠우스>(1977), <다리에서 본 전망>(1961)과 같이 희곡을 영화화한 연극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작품, <뜨거운 오후>(1975, 동성애 문제), <허공에의 질주>(1988, 급진주의자의 삶)와 같이 가족과 개인의 정체성 문제에 집중한 작품, 그리고 <형사 서피코>(1973, 부패한 경찰), <네트워크>(매스미디어 문제), <전당포>(1965, 홀로코스트)처럼 사회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작품으로 구분하곤 하는데 본질적으로 이 세 경향은 이야기와 캐릭터라는 큰 틀로 포섭된다. 그가 유난히 영화감독들에게 사랑받는 감독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루멧만큼 영화의 보편적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충실히 활용하고 또렷한 목소리를 내는 감독은 드물다. 할리우드 역사상 이야기를 가장 잘 다루는 감독으로 알려진 루멧의 핵심은 연기 경험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에 대한 깊은 이해,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저며낼 줄 아는 비판의식과 그것을 과감히 발하는 행동의 용기, 그리고 그것을 극적으로 녹여내는 이야기의 구성력에 있다.
전시와 공감의 화법
특정 스타일에 집착하기보단 이야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에 집중한 루멧은 그의 유명한 저서 <영화 만들기>에서 ‘좋은 스타일이란 눈에 띄지 않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오래도록 고민하고 준비하여 현장에서 신속하게 촬영함으로써 현장에서도 연극처럼 배우의 감정선을 살려주며 함께 호흡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의 스타일은 수많은 스타일들을 ‘영화’라는 대명제 속으로 통합시킨다. 그는 형식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할리우드식의 환상이나 장르의 쾌감을 전시하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되 문제의식이 녹아 있는 이야기를 자연스레 ‘느낄 수’ 있게 함으로써 특정 시기에 붙잡히지 않고 늘 시대와 호흡하는 영화적 활력을 유지해나가는 것이다. 때문에 그의 영화가 포착하고 재현하는 비극적 감수성은 늘 동시대와 치열하게 호흡하는 시대정신의 발현으로 읽힌다. 그렇게 루멧은 끊임없이 관객에게 말을 건다.
장르를 유용한 이야기 도구로 활용할 줄 아는 이 능수능란한 거장의 손길은 멜로드라마든 범죄물이든 법정드라마든 개의치 않는다. 그는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영화언어를 활용하여 사회를 얇게 저며 미국사회의 병폐와 그 속의 개인을 드러낸다. 때론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처럼 비극과 절망으로, 때론 <12명의 성난 사람들>처럼 황폐화된 민주주의에 대한 은유와 회복에의 희망으로. 그 와중에도 변함없는 것은 루멧이 관객에게 말을 거는 태도이다. 설득과 훈계가 아닌 전시와 공감의 화법. 여전히 관객의 지성을 믿는 이 거장의 따뜻하고도 서늘한 화법은 늘 현재와 호흡한다. 영화에 의한 사회의 변화를 믿지 않으면서도 부조리와 사회의 병폐를 이야기하는 데 게으르지 않았고, 인생을 사는 가장 훌륭한 방법으로 영화를 선택한 ‘행동하는’ 거장은 스스로 ‘영화라는 사건의 목격자’가 되어 우리 곁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