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talk]
[Cine talk] 자연스러운 노인분장 기대해도 좋아
2011-05-10
글 : 김성훈
사진 : 백종헌
‘밴쿠버 필름 스쿨’에서 특수분장 공부하고 돌아온 송종희 분장팀장

<접속>(1997)에서 전도연의 숏컷, 메이크업을 전혀 안 한 듯한 분장, 빨간 립스틱, <얼굴 없는 미녀>(2004)에서 김혜수의 사자머리, <인어공주>(2004)에서 1인2역을 한 전도연의 각기 다른 피부톤, <밀양>(2007)에서 평소 피부톤보다 한톤 더 밝은 송강호의 피부 등 캐릭터의 헤어와 메이크업은 이야기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이 섬세한 손길의 주인공은 송종희 분장팀장. 현장에서 배우들이 힘들 때마다 분장실을 먼저 찾고, 배우들이 출연 계약할 때 송종희와 함께해야 한다, 고 주장할 정도로 배우들은 송종희 분장팀장을 신뢰한다. 그런 그가 2년 전 떠난 캐나다 유학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경미 감독의 <미쓰 홍당무>(2008)에서 서우가 연기한 ‘종희’라는 이름의 주인공이라고.
=캐나다 밴쿠버에 유학갈 때 그 영화 DVD를 가져갔다. 처음에 가면 말이 안 통해 친구가 없지 않나. <미쓰 홍당무>를 혼자 보면서 정말 많이 웃었다.

-지난 4월9일부터 10일까지 뉴욕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메이크업 아티스트 트레이드쇼에서 수상했다.
=1년에 6개 나라에서 개최되는 메이크업 박람회다. 학생 신분으로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끝까지 누려보자 싶어서 참가했다.

-쇼의 주제가 신화 캐릭터를 표현하는 거였다.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며) 이거다. 처음부터 염두에 둔 건 아니지만 만들어놓고 보니 ‘한국 도깨비’가 됐다. 도깨비도 신화에서 나온 거잖나. 외국 모델을 섭외할 수 있었지만 뉴욕에서 영화를 공부하는 한국 학생에게 부탁해서 분장을 했다. 내가 참가한 부문은 특수분장 부문이었다. 무엇을 표현할지를 머릿속에 생각해서 가면 주최쪽에서 나눠주는, 특수분장에 사용되는 재료를 이용해 3시간 안에 완성해야 한다. 쇼가 끝난 뒤 작품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마음으로 도깨비 분장을 한 친구와 함께 뉴욕 소호거리를 활보했다. 도깨비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가게 문을 여는 등 재미있는 상황들을 촬영했다.

-<미쓰 홍당무>를 찍고 유학을 떠났다.
=15년 가까이 충무로에서 분장 일을 하면서 매너리즘 같은 게 찾아왔던 때다. 에너지가 바닥났고 이 직업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다. 좋은 감독과 배우들과 함께 작업을 해왔음에도 인생에 전환점이 필요했다. 밴쿠버로 가서 1년 정도 영어를 공부한 뒤 ‘밴쿠버 필름 스쿨’의 메이크업 전공에 입학해 분장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처음부터 배웠다.

-유학 가겠다고 하니 지인들의 반응은 어땠나.
=박찬욱 감독님께서는 좋은 결정이라고 격려해주셨고. 절친 (송)강호 선배와 전도연씨는 힘들 때마다 전화통화로 많은 용기와 힘을 주셨다. 강호 선배는 불안해하지 마라, 네 자리 있으니 언제든지 돌아와라, 는 말로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독학으로 분장을 배운 일화는 유명하다. 그곳에서 유학 생활은 어땠나.
=충무로에서 해온 것들을 검증받는 시간이었다. 좋은 커리큘럼과 선생님 덕분에 (공부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중 열중했던 게 특수분장이었다. 석고 작업으로 만든 (석고) 덩어리가 너무 아름다운 거다. 책, 음악, 영화 등 내 생활이 다 깨지고 3박4일 동안 잠도 거의 못 자고 석고 작업에만 빠진다. 그게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예전에 박찬욱 감독님께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보시면서 극중 인물의 노인 분장이 정말 자연스러운데 왜 우리나라는 저렇게 못하는 거야, 저렇게 만들 수만 있다면 시나리오를 더 잘 쓸 수 있을 텐데, 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그때는 내 일이 아니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이번에 특수분장을 공부하면서 노인 분장에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특수분장이 가능해졌다. 분장 시스템에 대한 구상이 따로 있을 것 같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작품이든지 최선을 다할 준비가 되었다. 한 작품에서 분장과 특수분장 모두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다. 다만 장기적으로 나 혼자 다 하고 싶진 않다. 모든 과정이 세분화되어 있는 할리우드 분장 시스템만큼은 아니지만 나 역시 능력있는 친구들을 발굴해 함께 팀을 꾸려서 일을 하고 싶다. (유학 떠나기 전인) 전반전에는 현장에서 배우와 스탭들과 함께 있었던 시간이 길었다면 (이제 곧 시작할) 후반전에는 혼자서 작업하는 시간을 좀더 많이 갖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차기작은 있는데 아직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웃음) 또 그동안 해왔던 분장 전반에 관한 책을 준비해서 내고 싶다. 영화 분장을 배우고 싶은 후배들에게 배우와 감독들과 어떻게 일했는지, 그간 쌓은 경험, 노하우를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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