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회 인권영화제가 5월19일부터 22일까지 4일 동안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다. 먼저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인권영화제는 올해도 상영관을 잡지 못하고 거리 상영을 한다. 인권영화제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추천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2007년부터 상영관을 대관하지 못하고 있다. 영화제쪽은 “비영리 영화라도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행정기관의 추천을 받거나 등급분류를 받아야 한다. 등급분류와 달리 추천은 표현의 자유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사전검열로 작동할 수 있다”고 말한다. 거리 상영은 표현의 자유를 항변하기 위한 영화제쪽의 노력이다. 이번 인권영화제는 6월에 개봉하는 개막작 <종로의 기적>을 시작으로 31편의 상영작이 ‘차별_저항_거리’, ‘자본_노동_거리’, ‘핵_평화_거리’, ‘민주_주의_거리’ 섹션으로 나뉘어 소개된다.
올해 인권영화제의 상영작은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성소수자들의 차별문제, 거대 자본에 저항하는 사람들, 군부독재와 전쟁의 피해자들, 그리고 핵과 원자력에 관련된 문제들까지 상영작들이 품고 있는 주제의 범위가 넓다. 개막작 <종로의 기적>은 성소수자들의 차별 반대를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폐막작으로 선정된 리드테아드 오 돔네일 감독의 <파이프>는 세계 최대 석유기업인 쉘(Shell)에 맞서는 아일랜드 시골마을 주민의 투쟁을 포착했다.
<버마 군인>과 <소년 미르-아프가니스탄의 10년>은 전쟁과 관련된 문제를 다룬 영화다. <버마 군인>의 주인공 묘 미인트는 가난 때문에 군에 입대했다가 버마 소속 민족 반군과의 내전에서 한쪽 팔과 다리를 잃는다. 군에서 빠져나온 묘는 자신이 군부독재 세력의 하수인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버마 민주운동의 투사가 된다. 1988년의 민주화 시위로 15년을 감옥에서 보낸 묘는 타이 국경지역에서 살다가 동생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망명한다. 그는 그곳에서 버마 민주화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소년 미르-아프가니스탄의 10년>은 미국과 탈레반이 전쟁을 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이 배경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미르라는 소년이 주인공이다. 소년의 성장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보게 되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마냥 해맑았던 미르가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목도하게 되면서 점점 웃음을 잃게 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가난하고 막막한 현실에서도 미르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 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서울환경영화제에서도 핵과 원자력에 대한 문제를 중심으로 다룬다. 인권영화제에는 ‘핵_평화_거리’라는 주제의 섹션을 마련했다. 박일헌 감독의 <아들의 이름으로>는 한국인 원폭피해자 2세인 김형률씨의 이야기다. 김형률씨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 히로시마에서 피폭을 당했다. 한여름에도 봄 점퍼를 입어야 하는 깡마른 김형률씨는 아픈 몸을 이끌고 여러 사회단체를 찾아다니며 원폭피해자의 인권운동을 시작한 인물이다. 2003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원폭피해자 2세에 대한 조사를 해줄 것을 요구해서 이와 관련된 실태 조사가 최초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2005년 5월 김형률씨가 생을 마감하자 아들의 운동은 아버지 김봉대씨의 몫이 되었다.
그 밖에도 인권영화제에서 챙겨볼 만한 영화로는, 전설적인 흑인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을 새롭게 조명하며 인종차별의 역사를 돌아보는 노랜드 왈커, 올란드 바그웰 감독의 <시민 마틴 루터 킹>, 비정규직 보호법으로 인해 오히려 임금 삭감과 불안정한 노동환경에 놓이게 된 환경미화원들의 투쟁을 담은 박배일 감독의 <잔인한 계절>, 기후 변화로 자신의 터전을 잃고 도시로 이주해야 하는 히말라야 유목민의 삶을 관찰한 안드레 랭겔, 마르코스 네그라오 감독의 <부서진 달> 등이 있다.
5월17일 오후 7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리는 영화제 개막식에는 <종로의 기적>에 출연한 게이 합창단인 지보이스(G_Voice)의 공연도 마련됐다. 모든 상영작은 무료로 볼 수 있다. 후원은 인권영화제 홈페이지(http://www.sarangbang.or.kr/hrfilm/)에서 신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