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의 작가 이우혁이 아동용 애니메이션의 시나리오를 쓴다. 이우혁은 1천만부 이상 팔린 <퇴마록> 시리즈와 <왜란종결자> <치우천왕기> <바이퍼케이션> 등으로 유명한 작가다. 성인 대상의 장르문학 대가가 <부루와 숲속 친구들>이라는 아동용 애니메이션의 시나리오를 쓴다는 건 뜻밖이다. <부루와 숲속 친구들>은 서울 근교의 작은 숲에 사는 부루라는 사슴벌레가 주인공인 26부작 곤충애니메이션으로, KBS2에서 5월16일부터 방영을 시작했다. 이우혁 작가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성우의 더빙 연출도 맡아서 진행했다. 더빙으로 바쁜 그를 만나 어떻게 아동용 애니메이션의 시나리오를 쓰게 됐는지 들었다.
-아동용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조금 먼 과거부터 얘기하자면 연극 연출하는 걸 좋아했다. 대학 다닐 때 아마추어지만 연극을 15편 이상 연출하고 대본도 썼다. <부루와 숲속 친구들> 제작사와는 처음에 다른 프로젝트로 만났다. 제작사에서 아동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게 돼서 프로젝트는 연기됐다. 그런데 <부루와 숲속 친구들> 진행이 잘 안됐던 모양이다. 뒤늦게 이 애니메이션 작업에 참여했다. 그때가 3월이었다. 5월16일이 첫 방영인데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캐릭터도 새로 설정하고 성격도 바꾸고 하면서 아는 사람을 다 동원했다.
-시나리오작가면서 성우 더빙 연출도 하게 된 건 어떤 이유인가.
=처음에는 캐릭터 성격을 설명해주려고 더빙 현장에 갔다. 더빙하는 걸 보니까 가녹음되어 있는 가이드와 시나리오가 나온 이후의 실제 더빙 사이의 문제가 보이더라. 그래서 결국 더빙 연출도 하게 됐다. 졸지에 일이 두배가 됐다. (웃음)
-원래 아동용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있었나. 의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지금까지 애니메이션 작업을 몇번 진행했는데 다 아동용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는 부분인데 <퇴마록>의 어두운 분위기나 <바이퍼케이션>의 심각한 느낌 때문에 내가 그쪽으로 특화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은 소설을 쓰면서 스스로 큰 세계를 만들고 있다. 그 세계에는 당연히 아이들도 있을 거고 웃음도 있을 거다. 그동안 접해보지 못한 부분을 접한다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에 무협적인 요소 등 장르소설의 흔적은 없나.
=<부루와 숲속 친구들>은 정말 아동용 애니메이션이다. 대결 구도가 있지만 곤충들이 무슨 무기를 들고 싸우는 건 아니다. 변신을 하기는 한다. 나에게 <부루와 숲속 친구들>은 하나의 실험이다. 그동안 만나보지 못한 어린이라는 독자와의 만남이라는 말이다. 시나리오를 쓰면 딸에게 보여준다. 딸이 초등학교 6학년인데 “이거 애들이나 보는 거 아니야”라고 하면서도 재미가 있는지 계속 보여달라고 한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어떤 부분이 힘들었나.
=악당 캐릭터를 만드는 게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소설 속의 악당은 한없이 악하게 묘사해도 되지만 아동용 애니메이션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 그래도 밉기는 해야 한다. 얄미운 정도가 되어야 한다. 정말 미묘하더라. 이 부분은 성인물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부루와 숲속 친구들>은 환경을 생각하는 요소도 있다.
=지지라는 지렁이가 나오는데 이 캐릭터는 딴소리 장단을 한다. 누가 물어보면 대답을 안 하고 있다가 뜬금없이 “쓰레기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해?” 같은 질문이 나오면 대답을 해준다. 유치원 교사들에게 자문을 구해보니까 아이들이 이런 장난 같은 걸 좋아한다고 하더라.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구호처럼 외치면 아이들도 지겨워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개인 홈페이지를 보니 애니메이션을 통한 심리치료도 준비했다.
=홈페이지에 심리치료 내지는 동화 대화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예를 들어 <부루와 숲속 친구들> 1화의 마지막에 “친구가 되고 싶었다”라는 대사가 있다. 애니메이션 샘플을 아이들에게 보여줬는데 반응이 제각각이었다. 어떤 아이는 덤덤한데 어떤 아이는 펑펑 울었다. 우는 아이는 뭔가 말 못할 상처가 있다는 거다. 프로파일러가 나오는 <바이퍼케이션>을 쓰면서 심리학을 10년 정도 공부했다. 그래서 이 캠페인을 시작하게 됐다. 부모와 자녀가 애니메이션을 통해 대화할 수 있게 만들려고 한다.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이외에 소설가로서의 계획이 궁금하다.
=계획은 많다. 소설에 관한 것만 얘기하자면 올해만 다섯권 정도 출간이 예정되어 있다. <퇴마록> 외전과 <바이퍼케이션> 2부가 여름시장에 나올 거다. 기대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