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영화들이 있다. 하나의 장면, 하나의 캐릭터, 하나의 이미지를 스크린에 영사하기 위해 실패를 무릅쓰고, 아니 실패야말로 자신이 획득해야 할 최고의 전리품인 양 곳곳에 지뢰가 매설된 사지를 향해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영화들 말이다. 이를테면 <포화속으로>가 그렇다. 6·25전쟁 당시 학도병의 실화를 다룬 영화로 홍보되었지만 이 영화는 어느 순간부터 독특한 시각적 쾌락의 ‘오브제’를 전시하는 데 몰두한다. 그 오브제는 바로 북한 인민군 766돌격대를 이끄는 박무랑(차승원) 소좌다. 그가 폭파된 다리 위에서 “어이, 남조선 동무들, 빨리 상판대기 좀 보고 싶소”라고 혼자 읊조릴 때,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어떤’ 관객의 마음속에선 수십여개의 붉은 깃발이 일제히 펄럭이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영화가 매혹의 시선을 건네는 것은 소좌가 입은 군복이다. 군모의 배지, 어깨 위의 견장, 윗도리의 단추들은 온통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옷깃과 군모에 달린 붉은 선들이 이들을 호위한다. 견장에 매달린 가죽 끈은 가슴을 타고 내려가다 권총 지갑과 만나고, 허리를 감싼 굵은 허리띠에는 탄창꽂이가 부착되어 있다. 허벅지 부분이 펑퍼짐한 바지는 목이 긴 검정색 군화로 마무리된다. 회백색 군복은 이런 디테일들의 보조를 받아가면서 배우 차승원의 육체가 지닌 관능의 오라(aura)를 부각하고 각 잡힌 형태로 조형한다. 카메라는 이 과정을 지켜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박무랑 소좌의 기묘한 존재감이 더욱 증폭되는 것은 그가 지프차가 아닌 군용 모터사이클의 보조좌석에 몸을 실은 채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폐허가 된 도시 한복판에 입성할 때다. 이 장면에서 그는 잘못된 시공간에 도착한 고독한 시간 여행자처럼 보인다. 혹시 그의 본래 목적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대도시가 아니었을까? 그곳에서라면 그는 이름과 성 사이에 ‘폰’(von)이라는 귀족 호칭을 걸어둔 친위대 장교로, 트렌치코트의 옷깃을 여미며 연합군과의 시가전을 진두지휘하고 있을 것만 같다.
그렇다면 독일군을 ‘코스프레’하는 듯 보이는 이 북한군 장교는 어디에 연원을 둔 것일까? 영화의 막바지, 주인공들이 학교 옥상에서 이소룡의 쌍절곤 휘두르듯 서로에게 총질을 해대는 장면에서, ‘어떤’ 관객은 <말죽거리 잔혹사>의 마지막 결투를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혹시 그들이라면 이런 추론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영화는 <말죽거리 잔혹사>와 유사한 청년기를 통과한 세대가 어린 시절 ‘아카데미 프라모델’의 독일군 탱크와 군인 피겨를 가지고 놀면서 품었던 전쟁에 대한 ‘어떤’ 환상을 재조립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환상 속에서 박무랑 소좌는 분단의 역사와 반공 이데올로기가 감히 넘보지 못하는 시각적 쾌락의 오브제로 영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