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레전드’와의 만남. 지난 5월16일부터 1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데뷔 50주년 기념 내한공연 <시네마 오케스트라>를 가진 엔니오 모리코네가 박찬욱 감독을 만났다. 최근 한국영화에 깊은 관심을 보여온 그가 방한하기 오래전부터 이러한 만남을 청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게다가 거기에는 박찬욱 감독의 절친이자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등의 영화음악을 함께한 조영욱 음악감독도 함께해 더 의미가 컸다. 이 만남은 박찬욱, 조영욱 감독이 자신들이 준비한 선물을 꺼내놓으면서 시작됐다. 박찬욱 감독은 <박쥐> 블루레이 타이틀과 <파란만장> DVD, 조영욱 음악감독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O.S.T를 준비해왔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 <석양의 갱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는 물론 <언터처블> <미션> <시네마천국> 등을 작업한 엔니오 모리코네는 현재 한국의 중견 감독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기도 하다. 박찬욱 감독은 “그의 영화음악은 그야말로 독창적이고 충격적이었다”고 말하며 조영욱 음악감독은 “그 특유의 작곡법은 후배 음악감독들에게 수수께끼와도 같은 것이었다”고 회고한다.
이처럼 먼 아시아 후배들과의 만남에 한껏 고무된 엔니오 모리코네는 사람 좋은 이탈리아 할아버지처럼 시종일관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대화에 임했다. 어느덧 팔순이 넘은 1928년생의 그가 종종 벌떡 일어나 이야기를 하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하지만 ‘영화와 영화음악의 관계’, 그리고 ‘엔니오 모리코네가 함께했던 이탈리아 감독들’ 등 다양한 화제로 진행되던 대화는 부족한 시간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쉬움을 가득 안고 모두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고 격려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됐다.
엔니오 모리코네_ 오, 너무 기쁘다. 이런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다니 우리 집까지 정말 소중하게 가져가겠다. 너무 고맙다. 사인을 해서 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웃음)
박찬욱_ 어제 첫날 공연은 어땠나?
엔니오 모리코네_ 어느 공연이건 아쉬움이 남는다. 지휘자라면 누구나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을 거다. 영화는 나중에 편집이 가능하지만 공연은 실수가 있으면 그걸로 끝이다. 그래서 리허설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박찬욱_ 그래서 나는 연극 연출을 하진 않을 생각이다. (웃음) 아무튼 첫 번째 질문은 좀 유치하기도 한데, 지금껏 함께 작업한 감독 중 누가 가장 마음에 들었나. 워낙 유명한 전설적인 감독들과 방대하게 작업해서 그 개인적인 느낌이 궁금하다.
엔니오 모리코네_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웃음) 딱 한명을 고르긴 너무 힘들고 아주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나와 한번 이상 함께한 사람들은 다 좋은 감독들이다. 함께 작업하면서 포기한 적도 있고 처음부터 안 맞는 경우도 꽤 되니까, 그런 경우는 뭔가 잘 통하기 때문에 두번 이상 하는 거다. 마찬가지로 감독이 먼저 나와 같이 못하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박찬욱_ 여기가 이탈리아나 유럽도 아니고 그냥 실명으로 얘기하셔도 괜찮을 것 같다. (웃음)
엔니오 모리코네_ 하하. 일단 나와 잘 맞았던 감독은 1961년에 나의 영화음악 데뷔작을 함께했던 루치아노 살치 감독인데 그 뒤로도 여러 편 함께했다. 그리고 역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영화음악 준비기간이 길기 때문에 그런 호흡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조영욱_ 워낙 작업 속도가 빠른데다 거의 들어오는 영화를 거절하는 법 없이 활동해왔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게 과연 어느 정도까지 사실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한창때는 1년에 20편 넘게 작업한 적도 있는데 같은 음악감독 입장에서 경이롭기까지 하다. (웃음)
엔니오 모리코네_ 지금 내가 생각해도 믿기 힘들 정도의 속도로 작업하던 때가 있었다. 나 역시 그때 어떻게 작업했는지 모르겠다. (웃음) 음악을 좋아하고 일을 사랑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일을 즉흥적으로 시작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함께 일하고 싶은 감독과는 보통 6개월 전부터 얘기를 한다. 나는 공부를 많이 하고 신중하게 작업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준비기간이 꽤 많이 필요하다. 물론 불현듯 영감을 받아서 써나갈 때도 있지만 보통 그렇게 치밀하게 준비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지금 작업하기로 얘기되고 있는 작품이 3편 정도 있는데 빨리 결정해야 한다. 그래야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
박찬욱_ 작업의 첫 단계가 궁금하다. 한편의 영화음악을 맡는 순간, 작업을 시작할 때 멜로디나 악기 편성 등 보통 어떤 지점에서 출발하게 되는지.
엔니오 모리코네_ 특별히 어떤 요소에서 출발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늘 종합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준비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조영욱_ 역시 유치한 질문인데(웃음), 요즘 음악감독들은 보통 미디나 컴퓨터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작업하는가.
엔니오 모리코네_ 오직 손으로만 한다. 컴퓨터는 전혀 쓰지 않는다. 한땀 한땀 악보에다가 연필로 직접 그린다. 그런 다음에 피아노 등 악기를 쓴다. 오래된 사람으로서 컴퓨터 같은 걸 이용하기 싫은 것도 있고 그런 작업을 내 작업처럼 여기지 못하는 고집도 있다. 컴퓨터보다 악보를 보고 노트에 그리면서 하는 게 좋다. 그러면서 영감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건 내가 음악감독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그래왔다. 한때 볼펜으로 한 적도 있지만 막 지워야 해서 연필로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웃음) 물론 지우개로 지우는 게 아니고 하얀 도자기 찰흙 가루 같은 걸로 지운다. 실수도 많이 하는데다 특히 화음을 맞춰야 하는 부분에서는 쉴새없이 지웠다 썼다 해야 하니까.
박찬욱_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클래식 음악작곡과를 졸업했는데 영화음악가로서 그런 훈련과 바탕이 필수라고 보는지 아니면 록밴드에서 기타를 치다가도 음악감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엔니오 모리코네_ 음악이 아닌 영화음악으로 특화해 얘기하자면 음악 역사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지식이 있어야 좋은 곡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자신이 어떻게 음악을 시작했느냐와 상관없이 영화음악가가 되고자 한다면 그에 맞는 연구와 공부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영화음악은 단순한 작곡 실력 이전에 영화가 담고 있는 시대배경에 대한 인지도 필요하고 음악 외적인 공부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테크닉만으로는 영화음악을 할 수 없다. 영화음악가가 역사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건 나의 오랜 지론이다. 게다가 영화에는 음악 외에도 춤 등 여러 요소들이 담기기 때문에 그 모든 걸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음악가가 되려면 정말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더군다나 영화음악은 혼자 하는 개별 작업이 아니라 감독의 의견을 반영하면서 자신의 개성도 드러내며, 그렇게 서로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그러면서 영화도 살고 음악도 살아야 한다.
조영욱_ 1960년대 초부터 영화음악가로 활동해왔는데, 1960년대의 유럽은 혁명도 있었고 사회적으로 다양하고 뜨거운 욕구가 분출되던 때였다. 당신은 그 중심에서 <알제리 전투>(1966)의 영화음악을 맡기도 했고 함께한 감독 중에는 베르톨루치, 파졸리니 같은 좌파 감독들이 많았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은데, 자신의 정치적 성향도 그러했는지 궁금하다.
엔니오 모리코네_ 음, 사실 정치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아마도 그들이 좌파 감독이어서 그렇다기보다 나에게는 다들 훌륭한 감독들이었다. 내 음악에 전혀 터치하는 것도 없었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만들어줬다. 나는 굳이 좌파쪽이었다기보다 중립적인 위치에서 작업했다.
박찬욱이 말하는 엔니오 모리코네
그 때문에 스파게티 웨스턴을 알게 됐지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을 처음 접한 것은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들을 통해서였다. 당시 극장에서 수도 없이 개봉했지만 정작 나는 극장에서 보진 못했다. 나중에 어떻게 알게 됐냐면 집에 LP 박스 세트로 해적판 <<영화음악 골든힛트>> 그런 전집이 있었다. (웃음) 들으면서도 별 감흥이 없었는데 그중에서 나에게 유일하게 흥미를 준 게 바로 모리코네의 음악이었다. 그렇게 모리코네의 음악을 먼저 접하면서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를 알게 됐고 나중에 TV를 통해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들을 보면서 하나로 완성할 수 있었다. 긴 세월이 흘러 영화로 보게 되니까 얼마나 반갑던지. 보통 그런 식으로 나중에 접하게 되면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실망은커녕 더 기가 막히게 좋았다. 그가 영화음악을 맡은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역시 <황야의 무법자>(1964)에서 휘파람 소리 가득한 <Titoli>다. 세련되고 그런 게 없는데도 너무나 독특하고 충격적이었다. 그와 함께한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들은 정말 다 좋은데 레오네 외의 감독들 중에서 고르라면 역시 엘리오 페트리의 <완전범죄>(Investigation of a Citizen Above Suspicion, 1970)다.
박찬욱_ 개인적으로 <완전범죄>(1970), <노동자 계급 천국에 가다>(1971) 등을 만든 엘리오 페트리 감독을 너무 좋아한다. 그 두편에서 영화음악을 맡았다. 그 역시 대표적인 좌파 감독이었는데 그와의 작업은 어땠나.
엔니오 모리코네_ 호흡이 잘 맞는 감독 중 하나였다. 1980년대 50대 초반의 나이로 세상을 뜬 게 너무 안타깝고 속상하다. 호흡도 호흡이지만 작품세계나 작업방식 등 아주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다. 엘리오 페트리 감독이 이미 5, 6편의 작품을 만든 뒤 나에게 연락이 왔었다. 지금 하고 있는 작품의 영화음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작곡자들을 계속 바꾸었다며 내게 직접 편지를 썼었다. ‘당신이 이 영화로 내가 마지막 연락하는 음악감독이 됐으면 좋겠고, 이후 당신과 함께하게 될 여러 작품들의 첫 번째 작품이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 영화는 이후 바뀌지 않고 내가 쭉 했다. (웃음) 사실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걸 부탁해서 좀 피곤하고 힘들기도 했다. 한 영화 안에서 여러 장르의 음악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굉장히 힘든데 그런 경우였다.
박찬욱_ 역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의 작업이 궁금하다. 그와는 처음 어떻게 만나 작업하게 됐나? 그리고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당신의 얘기를 통해 듣고 싶다.
엔니오 모리코네_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다. 유치원과 초등학교도 같이 다닌 오랜 친구다. 그런데 나중에 성인이 되어 만났을 때, 나는 그를 한눈에 알아봤는데 그는 나를 몰라보더라. 이탈리아는 흔한 성씨라는 게 없기 때문에 레오네, 모리코네, 그렇게 이름만 딱 들어도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내가 “야, 너 이 자식, 나 기억 안 나?” 하고 따져 물었다. (웃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는 작업하기 어려운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게 확실한 대신 일단 의견 교환과 일치가 이뤄지면 내 작업에 대해 특별히 반대하는 것 없이 쭉 갔다. 늘 원하는 대로 써보라고 할 정도로 항상 나에게 우선권을 줬다. 바꿔 말해 그는 빨리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못 됐다. ‘이거 어때? 저건 어때?’ 하고 늘 주변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다가도 결국은 남의 조언을 다 듣고 좋은 것만 쏙쏙 뽑아서 꼭 자기가 처음 원한 대로 갔다. (웃음) 그리고 또 기억나는 독특한 일화는 <석양의 갱들>(1971) 때였는데 극장에 스크린과 관객이 있다면, 그는 그 사이에 앉아서 스크린을 보는 게 아니라 스크린을 등지고 관객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화가 아니라 관객의 호응을 보는 거다. 관객이 너무 좋아하니까 그도 무척 기뻐했다.
박찬욱_ 세르지오 레오네의 웨스턴영화들과 당신의 음악은 정서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 정도로 깊은 교감을 나눈 사이지만 분명 갈등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가.
엔니오 모리코네_ <석양의 갱들>부터 그런 조짐이 좀 있었는데 결정적으로 <무숙자>(1973)를 하면서 도중에 갈등이 있었다. 나도 세르지오 레오네도 그 작품에 완전히 크레딧이 올라간 건 아닌데, 그가 그 작품을 통해서는 코믹한 쪽으로 가고 싶어 했다. 그런데 난 이전 그의 서부극들과 너무 정서가 달라서 좀 불편했고 그 역시 그런 불화를 불편해했다. 그래서 도중에 빠지게 됐고 둘 사이가 틀어졌거나 한 건 아니다. 그 다음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를 함께했으니까.
조영욱_ 당신의 영화음악은 ‘조’가 잘 바뀌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사실 영화음악은 다른 작곡에 비해 조를 자주 바꿔서 가는 게 일반적인 방식이다. 당신의 과거 인터뷰를 읽어본 적 있는데 영화음악도 ‘화성’을 간단하게 가는 게 좋다고 한 걸 본 적 있다. 이에 대한 지금 생각은 어떤가.
엔니오 모리코네_ 내 스타일이 그렇다기보다 영화에 맞게끔 변화를 준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어떨 땐 단순하게 가지만 또 어떨 땐 복잡하게 한다. 이렇게 가보고 싶다는 내 고집이 있을 때는 감독을 설득해서라도 함께 나가게끔 한다. 그 대신 처음부터 그런 얘기를 꺼내진 않는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시도도 못 하게끔 바꾸자고 할까봐. 어려워도 다 쓰고 난 다음 들려주고 다시 얘기한다. 이런 방식이 좀더 창조적이고 자기만족이 큰 것 같다. 안 그러면 지루하고 따분해서 영화음악 일을 계속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이 나이에 생계 걱정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언제든 일을 그만둬도 상관없지만 영화음악가로서 내 만족감이 중요하다. 계속 흡족하게 일하고 싶고 또한 계속 곡을 쓰고 싶다.
박찬욱_ 당신의 얘기대로 음악은 완성해서 들려주기 전까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게다가 완성된 영화를 보고 작곡을 하는 게 아니라 그 정서나 느낌을 불완전하게 끌어안은 채로 작곡을 해야 한다. 말하자면 감독과 ‘이런 음악이면 좋겠다’고 대화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불분명한 작업인데, 당신 같은 위대한 영화음악가들은 감독과 과연 어떻게 소통하는지 궁금하다.
엔니오 모리코네_ 한 일화를 들려주는 게 알맞을 것 같다. 한번은 이탈리아에서 10명의 이름있는 작곡가들을 불러 미팅을 하면서 영상만 있는 한 영화를 보여주고 이에 맞는 영화음악을 똑같이 작곡해보라고 한 적 있다. 모두가 동등하게 감독과 각자 얘기할 시간도 주어졌고 서로 커닝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내용도 알고 단 한명의 감독과 대화를 나눈 것임에도 그 10명의 음악은 하나같이 다 달랐다. 결과적으로 10명의 작품 모두 좋았다. 취향은 달라도 정말 다 멋있었다. 그들 중에서 누구의 음악이 가장 좋았다고 말하기 힘든 정도였다. 어쩌면 그런 게 바로 영화음악이 어렵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당신이 말한 그런 불확실성 속에 놓인 영화음악가의 운명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박찬욱_ 영화음악 작업을 하다 보면 어디서 시작해서 어떻게 끝내야 하나, 하는 것도 여전히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영화 전체의 인상이 달라지기도 하니까. 당신은 그런 고민을 어떻게 해결하나.
엔니오 모리코네_ 나 역시 어려운 문제다. 그런데 바꿔 말하면 어디서 시작하고 끝내야 할지 결정하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그보다 더한 어려운 문제들이 많다는 걸 알아야 한다. 가령 작곡가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 감독의 요구와 나의 방향 사이에서 만족스런 합일점을 찾는 것 등 내가 볼 때는 그보다 더한 어려운 문제들이 많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하다. (웃음)
박찬욱_ 그러면서 가장 허탈할 때는 음악감독과 마음이 잘 맞아서 아주 멋지게 시작과 끝도 맞추고 특정한 곡 역시 좋게 잘 작업했는데, 나중에 영화 전체적으로는 그걸 빼고 보니까 영화가 더 좋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는 사실이다. (웃음)
엔니오 모리코네_ 하하. 아까 얘기한 대로 물론 나 역시 어디서 시작하고 끝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게 늘 어려웠고, 당신이 얘기한 그런 고충을 느낄 때도 많았다. 충분히 이해한다. 나와 세르지오 레오네도 그러했지만 당신들 두 사람처럼 친구이기 때문에 좋은 점도 그런 것들이다. 감독과 영화음악가가 단순한 업무 관계 이상으로 그런 문제를 포함해서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 관계라는 것, 그것만큼 큰 힘이 되고 좋은 것도 없다. 두 사람이 앞으로도 멋진 영화를 계속 더 만들었으면 한다. (웃음)
조영욱이 말하는 엔니오 모리코네
<석양의 무법자> 음악, 실험성이 가득해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업한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역시 <석양의 무법자>(1966)다. 사이키델릭 록을 떠올리게도 하는 사운드트랙인데 모리코네의 기타 사운드는 록음악에서 온 게 분명하다. 심지어 나중에는 역으로 여러 다른 록 뮤지션들에게도 영향을 끼친 것 같다. 그의 영화음악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간결함과 단순함이다. 그의 60년대 후반과 70년대, 그리고 80년대는 굉장히 많이 다르다. 60년대는 오히려 록음악에 가까울 정도로 실험성이 굉장히 강했는데 조성(調性)을 부정하는 현대음악의 무조주의적 성격도 많이 드러난다. 그러다 80년대 이후에는 그런 게 싹 사라졌다. 인터뷰에서 화성에 대해 물어봤던 건, 그가 과거 인터뷰에서 화성의 간결함이 주는 임팩트가 있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조 바꿈을 잘 안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디 마이너에서 시작하면 거기서 끝냈을 정도로 실제로 당시 그의 음악이 그랬다. 덧붙여 그의 정치관에 대해 물었던 이유도, 당시에는 사회적 분위기도 그렇고 함께 작업한 좌파 감독들의 면면이 그러하니 과연 그런 정치, 세계관에 깊이 발을 담그지 않고서 그런 오랜 기간의 작업은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묻고 싶었던 거다. 그렇게 실험성 가득했던 모리코네의 60년대가 너무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