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나우]
[김지석의 시네마나우] 곤 사토시의 못다 이룬 꿈
2011-06-10
글 :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장편애니 <드리밍 머신> 제작 중 타계, 남은 스탭들이 마무리 작업 중
<드리밍 머신>

지난해 8월24일 곤 사토시 감독이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46살. 당시 그는 새 장편애니메이션 <드리밍 머신>을 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달여가 지난 11월12일 제작사인 매드하우스는 <드리밍 머신>의 제작 재개를 발표했다. 매드하우스의 이러한 결정은 회사 차원의 결정이기도 하지만, 제작자 마루야마 마사오의 의지 때문이기도 하다. 곤 사토시와 마루야마 마사오의 인연은 1998년 <퍼펙트 블루>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마루야마 마사오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곤 사토시에게 <퍼펙트 블루>의 연출을 맡겼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곤 사토시는 <노인 Z>의 애니메이터, 오시이 마모루의 <기동경찰 패트레이버2: 더 무비>의 슈퍼바이저, 옴니버스 애니메이션영화 <메모리즈>의 시나리오작가 등의 경력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루야마 마사오는 곤 사토시의 재능을 믿었고, <퍼펙트 블루>는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완벽주의자인 곤 사토시는 제작비를 엄청나게 오버하였고, 결국 <퍼펙트 블루>는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계속해서 2003년 <도쿄대부>, 2006년 <파프리카>(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등을 함께 제작했고, 역시 평단의 지지를 받았지만 흥행에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해 두 사람은 다시 의기투합해 <드리밍 머신>의 제작을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소니사로부터 투자를 받아 안정적인 환경에서 제작을 할 수 있었다. 곤 사토시 입장에서는 자신 때문에 계속 적자를 보는 마루야마 마사오에게 보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다고 한다. <드리밍 머신>의 내용 자체가 이전 작품들과 달리 가족애니메이션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리코’라는 소녀로봇이 자신이 만든 로봇 ‘로빈’, 또 다른 로봇 ‘킹’과 함께 ‘전기의 나라’로 먼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의 이 작품은 곤 사토시가 공식 사이트를 통해 줄거리와 캐릭터를 미리 공개하는 등 대중에 친밀하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계속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바람은 예상치 못했던 병마 때문에 좌절되고 말았다. 지난해 5월 곤 사토시는 암선고를 받은 뒤 입원했지만, 집에서 임종을 맞고 싶다고 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을 찾아온 마루야마 마사오에게 “이렇게 끝을 맺게 되어 정말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마루야마 마사오는 곤 사토시의 손을 꼭 잡으며 <드리밍 머신>을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완성시키겠다고 약속하였다(이 모든 과정은 곤 사토시가 블로그에 남긴 유언에 담겨 있다). 곤 사토시도 죽기 직전까지 스탭들에게 작품에 관한 자신의 모든 생각들을 정리해 꼼꼼히 전달하였다. 결국 곤 사토시 감독은 타계하였고, 현재는 남은 스탭들이 곤 사토시의 뒤를 이어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연출은 캐릭터 디자이너인 이타즈 요시미(감독 대행)와 이노우에 도시유키(공동 작화감독)가 맡았고, 음악은 <천년여우>와 <파프리카>에서 곤 사토시와 호흡을 맞추었던 히라사와 스스무가 맡고 있다.

곤 사토시는 타계 직전 블로그에 남긴 글에서 마루야마 마사오에 대해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있다. 이처럼 곤 사토시와 마루야마 마사오는 동지이자 친구 그리고 가족과도 같은 관계였다. 그리고 곤 사토시의 마지막 꿈은 마루야마 마사오에 의해 완성되어가는 중이다. 아직 정확한 개봉일정은 잡히지 않았지만, <드리밍 머신>은 올해 안에 완성되어 개봉될 것이다. 그리고 죽음과 시간을 뛰어넘는 두 사람의 우정과 약속, 믿음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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