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로마] 한국영화 맛에 빠지다
2011-06-08
글 : 김은정 (로마 통신원)
이창동의 <시>와 임상수의 <하녀>, 이탈리아서 뜨거운 반응

한국영화 두편이 이탈리아에서 동시에 개봉했다. 이창동 감독의 <시>와 임상수 감독의 <하녀>이다. 가뭄에 콩나듯 하던 한국영화가 두편이나 연달아 개봉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작품 모두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부문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시>는 우디네영화제가 새로 만든 터커필름(Tucker Film)에서 배급을 맡았고 <하녀>는 판당고(Fandango)에서 배급한다. 오랜만에 개봉하는 아시아영화를 보느라 이탈리아인들의 발걸음은 때를 놓치기 아깝다는 듯 바쁘기만 하다. 실로 칸영화제가 가져다주는 성과인 듯하다.

그렇다면 일반 관객의 반응은 어떨까. 영화 전문 사이트 ‘마이무비’의 독자 루카 테리노니는 <시>를 보고 이렇게 썼다.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무게감이 느껴지고 어떤 부분은 용기백배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전부 자연스럽거나 이해가 쉬운 것은 아니다.” 그는 “<시>가 바탕에 깔고 있는 시적인 요소들이 아주 동양적이기 때문에 내가 이 영화에 동화되는 것인가? 아니면 시에 대한 감수성을 동화시켜서 그런 것인가?”라며 드물게 접한 아시아영화에 완전히 동화한 자신을 이해할 수 없는 듯 되묻는다.

개봉한 지 한달이 된 <시>에 대한 이탈리아 평단의 반응은 열광 그 자체로, 각 매체의 별점 평가에서도 별 넷과 다섯이 쏟아지고 있다. 반면 5월 말에 개봉한 <하녀>는 평단조차 반응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별 다섯 혹은 별 한개. 아주 좋거나 정말 싫거나. 그래도 이탈리아 일간지 <레푸블리카>의 영화 전문기자 로베르토 네포티는 “한국의 누벨바그 감독을 세명 뽑으라고 한다면 박찬욱, 임상수, 김기덕을 뽑을 것”이라며 <하녀>에 큰 관심을 보였다. 4월 초 개봉한 <시>에 대한 이탈리아 영화 평단의 반응을 모았다.

“영화를 다시 사랑하게 하는 영화”

이탈리아 평단의 <시>에 대한 호평

“<시>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대작이다. 영화를 다시 사랑하기에 걸맞은 영화이고, 장의 통증처럼 본능적이고 열정이 느껴진다. 안에 무언가 뭉클거리는 게 남는 영화고, 영화를 보고 나서도 그런 뭉클거림이 소용돌이치는 것이 느껴진다. <시>는 작은 미소를 띠게 만들고 혼란을 일으키고 감동을 주고 손이 떨리게 하는 영화다. 화면으로부터 정신과 삶이 시처럼 투명하게 다가오는, 마치 잔인한 삶이 자신의 모습을 아는 것과 같은 영화다.” -주간지 <파노라마>

“드물다. 아주 드물다. 한국영화를 보며 집중하는 것은 더욱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미자가 있었다. 2시간20분은 참 길다. 이창동은 이 긴 시간 동안 우리에게 인상주의 화가의 한 작품을 선사한 것인지도 모른다. 미자를 연기한 윤정희는 한국 최고의 여배우다.” -주간지 <레푸블리카>

“시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시를 이야기한다. 윤곽은 드러나지 않지만 구체적인 물결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현실적이고 투명하고 결코 답을 알 수 없고 달콤하면서 잔인하고 은유적인 영화 <시>는 값비싼 물건이 특별한 관심을 요구하는 데 반드시 비싼 물건값을 치러야 하는 것처럼 대가가 따르는 영화다.”
-일간지 <라 스탐파>

이창동 감독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네오리얼리즘의 색채가 강한 전작들에 비해 이번 영화로 그는 더 높은 사고의 힘을 보여준다. <시>라는 제목을 단 이유는 받아들일 수 없는 세상- 한국의 현실과도 비슷한- 어두운 세상 속을 항해하기 위해서는 나침반 같은 도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시인 카타예프는 “시는 이름이 없는 것들에 이름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우리는 반문해보자. 어떤 한 사람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름이 있는 것들로부터 이름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일간지 <우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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