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운명은 B무비의 팬들이 얼마나 지지하느냐에 달렸다. <프리스트>
2011-06-08
글 : 이용철 (영화평론가)

형민우의 호러 만화를 영화화한 <프리스트>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할리우드가 한국판 그래픽 노블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으나, 원작 팬들이 일찌감치 분노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렸다. 영화를 보면 그들의 원성이 턱없는 게 아님을 알게 된다. 원작의 복잡한 캐릭터 설정은 사라졌고 구원과 저주, 육체와 영혼 사이의 깊디깊은 고통은 좀체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묵시록적 세계에서 공동체와 혈육을 지키려는 영웅의 활약과 광활한 서부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액션을 주무기로 삼았다. 만듦새는 할리우드에서 중급 규모로 제작되는 블록버스터의 정형성을 따랐다. 이야기는 단순하고 인물은 장르의 기본 규칙 아래 움직이며 고만고만한 CG로 볼거리를 추구하는데, 이걸 두고 특징이라 말하기조차 민망하다. 오히려 관심을 끄는 건, 이종 장르를 교배함에 있어 웨스턴을 중심에 둔 판타지가 근래 꾸준히 출현했다는 사실이다. <프리스트>에서 경계를 형성하는 것도 선악의 존재가 아닌 도시와 서부의 대치상황이다. 영혼을 잃은 괴물은 서부에서 도시로 향하고, 서부로 뛰어든 영웅은 그들의 침입을 저지하려 애쓴다. 이와 비슷한 예로 각각 웨스턴과 무협, 웨스턴과 애니메이션을 결합시킨 <워리어스 웨이> <랭고>가 이미 선보였으며, 올여름 <카우보이 & 에일리언>이 공개되면 장르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전체적인 평가가 나오기 전이지만 전망이 그리 밝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은 <프리스트>의 속편을 극중에 예고해놓았다. 그들의 운명은 B무비의 팬들이 얼마나 지지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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