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설계사 요시노(미쓰시마 히카리)가 국도에 버려진 시체로 발견된다. 범인은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서 알게 된 유이치(쓰마부키 사토시)다. 이발사 요시오(에모토 아키라)는 딸 요시노의 죽음의 이유를 애써 믿으려 하지 않는다. 요시노가 유이치에게 살해당하는 원인을 제공했던 대학생 마스오(오카다 마사키)는 그 죽음이 자신과 무슨 상관이냐고 되묻는다. 유이치는 데이트 사이트에서 만난 고독한 여인 미츠요(후카쓰 에리)와 충동적으로 도망치고, 유이치의 할머니 후사에(기키 기린)는 손자의 죄 때문에 세상에 머리를 수그리며 온갖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지난 한해 일본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두편의 영화, 이상일의 <악인>과 나카시마 데쓰야의 <고백>은 모두 예기치 않은 살인사건을 둘러싼 인간의 악의를 폭로한 비극이자 유명한 원작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겼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화려한 이벤트 무비의 유행 속에서, “일본이라는 나라의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날것 같은 감각”(이상일)을 묵직하게 응시했다는 점에서 큰 평가를 받았다. 또한 다소 산만하고 때때로 감상으로만 일관하는 원작 소설의 약점을 깔끔하게 정리한 각색에 성공했다는 점 역시 높이 살 수 있다.
<악인>은 선명한 제목과 달리 ‘악인의 정의’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소설 속 문구를 빌려오자면 “모두가 피해자이길 원하는” 세상에서, 악의의 연쇄고리를 재배치한다면 사건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읽힐 수 있다. 여기선 분노와 좌절감을 이기지 못한 채 충동적인 살인을 저지른 유이치가 그 연쇄고리의 가장 밑바닥에 놓인다. 오히려 타인에 대한 배려나 감정이입이 부족했던 피해자 요시노 혹은 요시노를 죽음으로 떠민 매정한 부잣집 도련님 마스오야말로 결국 더한 가해자가 된다. 통상적으로 ‘젊은 여인이 살해당했다’라는 사건에서 예상되는 전제들과는 특이한 차원으로 재배치한 것이다.
<악인>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유이치와 미츠요의 절실한 러브 스토리다. 결말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더한층 상대방을 소진시켜버리는 감정의 폭발. “당신을 만나기 전, 사람을 죽였어”, “왜 조금 더 빨리 당신을 만나지 못했을까”, “당신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같은 지극히 통속적인 대사로도 그 빛은 바래지 않는다. 요시노 살인사건을 둘러싼 부분에선 규슈 지방의 차갑고 눅눅한 공기, 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소도시의 나른한 기운, 서로의 비밀을 모두 공유할 수밖에 없는 좁은 지역사회의 갑갑증 등이 중요한 배경으로 작동한다. 반면 유이치와 미츠요의 러브 스토리에 이르면 둘이 숨어들어가는 황폐한 등대라는 극적인 배경은 사실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쓰마부키 사토시와 후카쓰 에리의 조심스런 말투와 표정과 머뭇거리는 제스처만으로도 카메라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필요가 없다. 스스로의 심장이 이끄는 대로 ‘이 사람’을 알아보는 외로운 연인 유이치와 미츠요의 사랑을 납득시키는 건 전적으로 쓰마부키 사토시와 후카쓰 에리의 힘이다.
하지만 역으로 이 멜로드라마의 감정이 지나치게 강렬하게 고조되기 때문에 살인사건 파트와 잘 융합되지는 못한다. 다시 말해 원작에서도 그랬지만 영화 역시 마치 두개의 이야기가 별도로 진행되는 것 같다는 이질감을 완전히 떨쳐버리진 못했다. 그 두개의 이야기를 통해 <악인>은 세상 사람들이 ‘악인’이라고 부르는 존재가 실은 가장 연약하고 고독한 이들이며, ‘희생자’는 ‘그렇게 살면 안되는 존재’였다고 뒤집어버린다. 이건 또 다른 이분법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불균질함이 영화의 매력을 더하는 힘으로 작동하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