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영화읽기] 영화는 왜 존재하는가?
2011-07-07
글 : 김지미 (영화평론가)
1980년대 영화들을 연상시키는 <슈퍼 에이트>가 환기한 몇 가지 키워드

<슈퍼 에이트>는 대부분의 SF가 미래로 눈을 돌리는 것과 반대로 과거로 되돌아감으로써 참신함이나 충격보다 익숙함과 안정을 택한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에 관한 미 언론의 우호적인 평가는 영화의 배경인 1970년대적 정서가 환기하는 노스탤지어, 슈퍼 8mm 제작 방식에 대한 추억,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작자인 스필버그 스타일의 휴머니즘적 SF를 적절하게 부활시킨 데 집중되어 있다. 이 작품은 스필버그의 1980년대 영화들- <미지와의 조우> <E.T.>로 이어지는 외계생명체에 대한 동경과 <구니스>의 소년들의 모험담- 을 떠올리게 만든다. 설정뿐 아니라 미지의 생명체와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한부모가족의 소년이 성장해갈 뿐 아니라 그의 양육자까지 성장하도록 만든다는 주제도 동일하다. 하지만 단순한 재탕이라면 3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 환영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지금의 관객과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든 새로움은 무엇일까? 혹은 여전히 유효한 키워드들은 무엇일까?

1. 음모론의 원초적인 풍경

철강공업지역인 릴리안에서 열차 탈선 사고가 난 뒤 공군이 사고 지역을 봉쇄한다. 마을 곳곳에서는 자동차 부품이나 구리선 등이 대거 도난당하고 개들이 동시에 실종되는 등 불가사의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보안관마저 사라져버리자 주인공인 조 램의 아버지 잭슨 램 보안관보는 마을 회의를 소집한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우스꽝스럽지만 낯익은 풍경을 목격한다. 한 여성이 일어나 말한다. “지금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요. 이건 소련의 소행이 분명해요.” 이 말도 안되는 논리는 예상외로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는다.

분명 코미디지만 웃을 수만은 없다. 그것은 분명 냉전시대를 대표하는 논리였지만 지금 여기에서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지난 몇년간 과학적으로 증명 불가능한 부분이 있지만 북한 소행임은 틀림없다는, 일련의 사고에 관한 발표를 숱하게 듣지 않았는가? 그것은 논리의 차원이 아니라 믿음의 차원에서 작동한다. 그 부작용으로 우리는 이제 모든 가십 생산지마저도 의심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공인된 음모론을 조롱하면서 다른 종류의 음모가 진행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군인들은 모든 것을 감추기 위해, 또 동시에 자신들의 비밀을 알고 있는 이들을 색출하기 위해 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대피시킨다. 이 과정을 통해 이 영화는 가장 위험한 것은 군인들이 쫓고 있는 외계생명체가 아니라 자신들이 목적하는 바를 얻어내기 위해 삶의 터전을 함부로 훼손하고 모든 종류의 정보로부터 민간인을 차단하는 군인으로 대변되는 권력집단이라는 것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잭슨 램은 마을 회의를 통해 군인들의 소통 체계에 접근할 단서를 얻어낸다. 권력의 가장 음험한 얼굴은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을 공유하기를 거부하는 바로 그 순간에 드러난다.

2. 권위를 향한 초강력 펀치

이 영화에 등장하는 외계생명체는 가공할 만한 위력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 단지 그가 등장할 때의 미스터리한 분위기와 사운드 때문에 공포스러운 존재로 오인될 뿐이다. 하지만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할 때조차 그의 등장은 은근한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그가 앨리스를 납치하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늘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에게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공군들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한 잭슨 램은 자체적 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보안관은 이를 무시하고 공군의 지시를 따르라고 명령한다. 권위적인 태도로 잭슨 램의 건의를 묵살한 바로 그날 보안관은 괴생물체에게 납치당한다. 그의 실종은 갈등 해결 차원에서 보면 플러스적인 요소이다. 그가 사라짐으로써 잭슨은 협조적인 동료들과 함께 사건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에 접근하게 된다(잭슨은 괴생물체와 관련해서는 어떤 해결책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그의 서사적 기능은 외계생명체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공군/국가의 부조리한 폭력성을 폭로하는 데 있다). 보안관은 나중에 조에 의해 다시 구출되는데 자신의 깜냥을 알지 못하고 미로 탈출을 권위적으로 주도하려다가 결국 제거된다. 그에게 날리는 외계생명체의 펀치는 위협적이라기보다 통쾌하다. 흑인 사병들에게 목숨을 건 임무를 수행하도록 강요하는 공군 장교에게 날리는 펀치 역시 마찬가지다. 외계생명체는 군림하려고 하지 않는 이에게는 펀치를 날리지 않는다. 누군가가 그에게 얻어맞는다면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거나 적의를 가지고 있거나 둘 중 하나다.

3. 매장된 소통의 부활

외계생명체가 두렵지 않은 궁극적인 이유는 그가 소통 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를 감금한 열차를 향해 돌진했던 과학 선생님의 회고 영상에 의하면 그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와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전달하거나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소통’이다. 영화는 모든 가능한 소통이 단절된 상태에서 시작된다. 아이들은 어른들 몰래 자신들의 영화 제작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렇지만 어른들은 마을에 사건이 터지기 전에도, 후에도 아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통 관심이 없다. 잭슨은 아내를 잃은 충격과 양육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아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앨리스의 아빠인 루이스가 자신의 아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믿으며 그를 적대시한다. 그래서 앨리스와 조가 가까워지는 것도 금지한다. 루이스의 죄책감은 자신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잭슨으로 인해 램 부자(父子)에 대한 분노로 전이되어 있는 상태이다.

어떻게 보면 릴리안 마을에 닥친 괴사건은 불통하고 있는 이들을 다시 소통하게 만들어준 돌파구라고 할 수 있다. 잭슨은 조에게 말한다. 너희 엄마는 루이스에게 기회를 한번 더 주자고 말했지만 그는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무책임한 인간이라고. 외계생명체가 조의 엄마가 묻혀 있는 공동묘지에 자신의 아지트를 꾸민 것은 상징적이다. 조의 엄마는 누군가의 흠결을 비난하고 낙인찍는 것보다 스스로 해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하는 소통지향적인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죽음으로써 모든 소통의 기회는 단절되었다. 조에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던 앨리스는 조의 엄마를 대신해 소통의 통로를 다시 열어주는 매개가 된다. 조는 그녀를 구함으로써 잭슨과 루이스를 화해하도록, 아버지가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다. 잭슨은 모든 혼란이 끝난 뒤 돌아온 조를 안으며 ‘I got you’라고 말했을 때, 이 문장은 ‘이제 너를 잡았다’(내 품에 와서 안심이다)와 ‘나는 이제 너를 이해한다’(I understand you)는 의미를 동시에 내포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가 외계생물체가 지구를 떠날 수 있도록 한 결정적 대사인 “우린 너를 이해해. 살다보면 나쁜 일이 생겨. 하지만 계속 살아갈 수 있어”는 엄마를 잃어버리고 상심한 자신과 아버지에게, 그리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루이스에게 그리고 납치되었던 앨리스에게 그리고 릴리안 마을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는 대사라고 할 수 있다. 진심이 아무 오해 없이 전달될 수 있는 외계생명체와 조의 대화는 소통의 이데아다.

4. 영화의, 영화에 의한, 영화를 위한

<슈퍼 에이트>는 한 소년의 성장담이며, 치유와 소통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영화에 관한 영화이다. 이 작품에서 재미의 대부분을 창출하는 요소는 소년들의 영화 만들기에 관한 에피소드들이다. 블록버스터의 외피 속에 담긴 조지 로메오의 B급영화와 그 제작 방식에 대한 애정도 훈훈하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강한 신뢰와 애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소년 소녀들이 아무도 모르는 진실에 다가설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영화를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화를 찍음으로써 현장을 목격한 선택된 이들이 되었고, 그들의 카메라는 사장될 수 있었던 진실의 목격자가 되었다. 그들은 결정적 순간에 카메라를 들고 그 자리에 있었으며, 그들의 선생은 필름을 통해 지식을 전수했고, 조의 어머니는 필름 속에 남아 그의 영혼을 치유하고 앨리스의 마음을 열어 사랑이 시작되도록 해주었다. 이 작품에서 영화가 하고 있는 일들이야말로 이 세계에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의 축약판이 아닐까? 진실을 기록하고, 지식을 전달하고, 정서를 함양하고, 사랑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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