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강예원] 코믹 유전자 탑재, 발사
2011-07-21
글 : 김용언
사진 : 백종헌
<퀵> 강예원

“예전에는 ‘전 어떻게 나왔어요? 제 연기 어땠어요?’라고 물었는데, <퀵>에 대해서는 그런 질문 한번도 안 했다. 대신 ‘우리 작품’ 어떻게 봤냐고 묻게 된다. 이런 새로운 도전에, 그만큼 다른 시각으로 봐주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데뷔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배우. 최근 2년 동안 <해운대> <하모니> <헬로우 고스트> 등 이른바 흥행작들을 골고루 섭렵하며 안정된 필모그래피를 이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예원은 여전히 목말라하고 근심하고 있었다. <해운대>에 이어 또다시 도전한 블록버스터 <퀵>의 개봉을 앞둔 그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설렌다.

생애 처음 가슴 아픈 사랑을 경험하는 엽기발랄 삼수생(<해운대>), 의붓아버지를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감옥에 들어온 음대생(<하모니>), 매일 죽어가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법’을 점점 망각하는 냉정한 호스피스(<헬로우 고스트>). 강예원은 신작 <퀵>에선 전대미문의 사건에 휘말리는 아이돌 가수 아롬(본명은 지춘심)으로 등장한다. 부산 여고생 시절, 춘심은 오토바이광이자 싸움짱 한기수(이민기)를 사랑했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그와 헤어진 뒤 독하게 마음먹은 그녀는 마침내 걸그룹 ‘오케이걸스’의 멤버로 성공을 거둔다. 그러다가 생방송 시간에 쫓겨 퀵서비스를 불렀고, BMW 오토바이를 모는 퀵서비스맨 기수와 재회하게 된다. 이제 춘심은, 아니 아롬은 서울 시내 곳곳에 폭탄 배달을 다니게 된 기수와 10m 이상 떨어지면 안되는 조건하에 악몽의 1박2일을 보내게 된다.

잊을 만하면 빵빵 터지는 폭탄, 시속 300km에 달하는 속도를 견뎌야 하는 끔찍한 상황에서 아롬은 소리지르고 울고 발버둥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아롬은 진상 떠는 캐릭터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이같은 액션 블록버스터에선 남자주인공이 단독 히어로이고, 그에게 매달리는 여주인공은 거추장스러운 짐짝이거나 빼곡한 액션 사이로 잠시 쉴 틈을 주는 섹시 다이너마이트 정도의 역할에 그칠 때가 많다. 아롬은 그 어느 쪽도 아니다. 폭탄에서 멀어지려 발버둥치면서도 자꾸만 되살아나는 기수를 향한 연심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춘심은 열혈 명랑만화에서 갓 튀어나온 것 같은 따끈따끈 캐릭터다. 그녀는 영화 내내 과감하게 웃음을 책임지고 후반부에는 꽤 절절한 로맨스까지 떠안는다.

“<퀵>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와 이걸 어떻게 찍지 싶었다. 글자로는 ‘폭탄이 쾅, 푸아악 터진다. 아아아아악 오빠아아아아 하며 뛴다’ 이런 식으로 되어 있는데…. (웃음) 캐릭터가 심하게 귀엽고 만화적으로 통통 튀더라. 이걸 어떻게 연기하지? 민기씨랑 만나기만 하면 머리 싸매고 고민했다. 결국 우리가 웃으면 절대로 안된다고 결론내렸다. 아무리 손발이 오그라들어도 그걸 망각한 채 진지하게 연기해야 관객이 웃을 수 있을 거라고.” 조범구 감독은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 주연의 <나잇 & 데이>를 ‘라이트한 감성이 좀 닮은 것 같다’며 추천했다고 한다. 동시에 “아롬이는 전무후무한 캐릭터니까 그냥 예원씨가 아롬이가 되어 놀아야 한다.”고도 했다.

강예원은 보충촬영까지 합해 8개월이라는 기나긴 촬영 기간 내내 춘심이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다그쳤다. 현장에 도착하면 우헤헤헤 웃으면서 누구에게라도 “언니이이이이”, “오빠아아아아” 하고 춘심이처럼 호들갑스럽게 인사했다. 그러면 스탭들도 “춘심아아아아아” 하고 화답하며 도와주었다. “개인적으로 무척 즐거웠다. 춘심이의 밝고 기분 좋은 상태를 24시간 내내 유지해도 지치질 않았다. 난 춘심이를 너무 사랑한다.” 실제로는 차분한 저음에 가까운 본인 목소리를 세 곱절 정도 끌어올린 하이톤을 내내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 특히나 성악을 전공했던 그녀에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지만 강예원은 스스로를 ‘업’시키는 것이 즐거웠다고 했다.

춘심화(化)되는 것까진 괜찮았다. 문제는 코미디 연기의 디테일이었다. 물론 경찰 김인권과 고창석 콤비가 있지만 기수의 상황을 가장 곤란하게 만드는 춘심의 웃음 코드는 영화상으로 매우 중요했다. 강예원은 어떻게 보면 <하모니> <헬로우 고스트>의 무거운 감정 연기보다도 <퀵>의 코미디 연기가 더 힘들었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해운대>에서부터 호흡을 맞췄던 설경구, 김인권, 고창석 등의 선배 배우들은 하나같이 “희극 연기를 잘할 수 있으면 다른 모든 걸 다 잘할 수 있다”라고 그녀에게 충고했다. “선배들이 원래 웃긴 사람이라 코미디 연기를 잘하는 게 아니다. 다들 진지한 분들인데, 그 안에서 관객을 편안하게 웃게 만들 수 있다는 건 정말 존경스럽다. 선배님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춘심이도 없었을 거다.”

헬멧 쓰고 12시간 춤춘 건 예삿일

1994년 이후 처음 있는 폭염이라고 다들 혀를 내둘렀던 2010년의 한여름 8월부터 ‘이번 여름에 버금가는 혹독한 겨울’이라고 또다시 혀를 내둘렀던 12월까지 <퀵>의 촬영을 진행했다. 10cm 높이의 힐을 신고 바람 한 줄기 안 통하는 ‘레자’ 의상을 입은 채 달리고 굴러야 했다. 물론 무거운 헬멧을 내내 쓴 채. <퀵>의 언론 시사회가 끝난 뒤 인구에 회자되던 ‘헬멧 샤워신’에서 흘린 눈물은 진짜였다. “사실 전신 노출이 될 줄은 몰랐다. 상체 정도 나올 줄 알았는데, 촬영 당일 ‘춘심의 설움이 표현되려면 뒷모습이 다 나와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떡하겠나, 찍어야지. 헬멧을 쓴 채 샤워물을 틀고 거기 서 있는데 뭐랄까, 좀 억울했다. 그래서 눈물이 막 펑펑 나왔다. 그게 춘심이 상황과 너무 잘 맞아떨어진 거지. (웃음) 잘나가는 가수가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에 처하니까 그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하루종일 억누르고 있다가 샤워하면서 ‘내 팔자야’ 하고 울음이 빵 터진 거다. 그런데 시사회 때 그 장면이 나오는 순간 모두 웃음을 터뜨리는 걸 보고 감독님 말씀이 옳았다는 걸 알았다. 심지어 나도 웃어버렸다. (웃음)”

추억은 많다. 두달 동안 (헬멧 없이) 열심히 춤을 연습했지만(“내가 봐도 진짜 가수들한테 뒤지지 않는데” 하고 흐뭇해다가) 막상 카메라 앞에서 헬멧을 쓰는 순간 어떻게 해도 모두가 웃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는 “그냥 최대한 열심히, 해맑게” 12시간 동안 카메라 앞에서 춤을 췄다. 힐이 부러지는 걸 감수하면서 이를 악물고 네 시간 동안 하이힐을 신은 채 모래사장을 뛰어다녔다. ‘폭탄재중’씨가 보낸 폭탄이 연쇄적으로 터지는 장면에서 실제로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아버린 것도 이제 와서는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추억이다. “그 장면 잘 보면, 두 다리가 동시에 꺾인다. 넘어지는 연기를 한 게 아니라 실제로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아버린 거다. 민기씨가 잽싸게 끌어올려주지 않았으면 큰일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그 넘어지는 장면이 리얼하게 나와서 한번에 오케이되었다.”

어쩌면 <해운대>의 형식(이민기), 희미(강예원), 동춘(김인권)이 몇년 뒤 서울에 왔다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퀵>의 기수(이민기), 아롬(강예원), 명식(김인권)으로부터 그런 닮은꼴 찾기의 유혹을 이기기는 쉽지 않다. 막상 강예원 본인은 정색을 하면서 “다른 인물로 봐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극중에서 인권 오빠는 억지로 사투리를 없애려는 말투, 민기씨는 서울 올라온 지 4년 된 부산 사투리 말투 설정이다. 옆에서 그런 미세한 설정을 만드는 노력까지 다 봤기 때문에 ‘<해운대> 이후’라고 보는 시선에 대해선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퀵> 자체의 일거수일투족에 주석을 달고 해명하고 변호하려는 간절한 태도는 인터뷰 내내 이어졌다. “일 끝나면 바이바이 하면서 각자의 길로 뿔뿔이 흩어지는 것보다 일하면서도 일 같지 않은 이런 훈훈함이 너무 좋다”며 한국영화 ‘최초’의 시도가 유난히 많았던 <퀵>의 모든 배우와 스탭에게 감사를 거듭 표하던 그녀는 “이 마음이 안 변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난 고생을 많이 해서 변할 이유가 없다. 변하면 스스로 창피할 것 같다”라고 다잡았다. <1번가의 기적> <해운대> <하모니> <퀵>에 이르기까지 ‘JK필름이 사랑하는 배우’라고 불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데, 본인은 그런 말을 들어도 별로 실감하지 못하는 눈치다. “하지원 언니랑 같은 소속사인데, 대표님이 늘 그러신다. 지원 언니 보면서 열심히 배우라고, 정말 잘해야지 살아남을 수 있다고. 그 마음을 잃지 않으려 한다. 좀더 신중하게 작품을 선택하고, 노력한 모습이 매번 관객에게 잘 보였으면 좋겠고, 오랫동안 신뢰를 주며 롱런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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