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무 좋았어요. 너무 많이 울었답니다.” 지난주까지 사무실에서 ‘전문분야실무수습’을 받았던 사법연수생이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본 직후 보내준 메시지 내용이다. 영화가 가져다준 흥분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약간은 호들갑스런 반응을 보면서 마음이 놓였다. 그동안 부진했던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이 어떤 성과를 거둔 듯했기 때문. 동료 기자들이나 영화계 인사들의 호평은 들어왔지만, ‘일반인’이라 할 수 있는 관객 또한 좋게 봤다니 이 치열한 여름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 대한 들뜬 반응이 반가운 또 다른 이유는 명필름 심재명 대표의 저력을 다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서 이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건 상당히 오래전이다. 그때 심 대표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통념을 깨고 싶다. 한국에서 잘 안된다는 영화들, 그러니까 스포츠영화나 가족영화를 만들어 성공시키겠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스포츠영화의 전범을 세웠기에 그의 장담은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문제는 가족영화인데, <마당을 나온 암탉>까지 흥행한다면 당시 목표했던 바를 다 이루게 된다.
가족영화에 대한 그의 의지는 오기가 아니었다. 멀티플렉스가 주거밀집지역으로 파고들어 가족 단위 영화 관람 문화가 정착됐고 부모들이 아이들의 정서에 좋은 콘텐츠를 절실하게 찾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상품 기획’ 차원이었다. 그러니까 변화하는 환경과 수요에 대한 전망 속에서 이 영화를 만들었단 얘기다. 올해는 심 대표뿐 아니라 이른바 ‘기획영화 1세대 프로듀서’들을 계속 접하게 될지도 모른다. 영화사 봄의 오정완 이사가 만드는 <카운트다운>이 9월에 개봉하고, KT와의 옵션계약에서 풀려난 차승재 대표 또한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하지만 1세대 프로듀서에 대한 세간의 평은 그리 좋지만은 않다. 현재 충무로의 판세를 주도하고 있는 투자·배급사는 물론이고 후배 영화인들 또한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진다. 후배들의 비판은 대략 이렇게 정리된다. ‘좋은 시대 만나 원없이 영화 만들다가 각자 잇속을 챙기고 끝내 영화계를 ‘아사리판’으로 만든 장본인.’ 이러한 비판에는 어느 정도 진실이 담긴 게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사회가 그렇듯 신구의 적절한 조화는 건강성의 중요한 척도다. 오랜 경험을 갖고 있는 선배들이 이끌고 후배들이 본연의 힘을 발휘한다면 지나치게 약화된 프로듀서 진영이 살아날 수 있고, 결국 한국영화산업의 균형도 다시 잡히게 되지 않을까.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선배들이 선배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후배들이 선뜻 시도할 수 없는 프로젝트를 관록과 뚝심으로 뚫어줘야 한다는 말이다. 해외 진출의 새로운 모델 개발, 새로운 장르 개척, 대안적인 사업모델 제시 등등. 그런 점에서 가족영화의 새 틀을 짠 <마당을 나온 암탉>은 1세대 프로듀서의 역할에 대한 정답이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