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박철민] “모자라지만 친근하고 구성진…이 캐릭터를 완성시켜야지”
2011-07-28
글 : 김성훈
사진 : 오계옥
<마당을 나온 암탉>의 박철민

“안동은 베이스캠프고 서울은 별장 정도랄까. (웃음)” 현재 영화 <코리아> 촬영으로 서울과 안동을 오가고 있는 박철민에게 ‘현재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라는 수식어는 과장이 아니다. 그는 <코리아>와 함께 드라마 <무사 백동수>를 촬영하고 있고, 목소리 출연한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과 블록버스터 <7광구>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또, 얼마 전 영화 <투혼>과 <타워>의 촬영을 끝마쳤다. 이중 7월28일 극장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그는 마음씨 따뜻한 수달 ‘달수’ 역을 맡아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이야기에 재미와 감동을 불어넣는다. 생선뼈로 머리를 빗는 전라도 출신의 수달이라… 설정만으로 재미있지 않은가. 기대해도 되냐고? 물론이다!

-다리를 절고 있다. 다쳤나.
=요새 안동에서 1991년 치바 세계탁구선수권에 출전한 남북단일팀을 소재로 한 영화 <코리아>을 찍고 있다. 대표팀 코치 역을 맡았다. 어제 현정화(하지원)와 이분희(배두나)가 2:1에서 2:2로 만드는 결승전 장면 촬영에서 미친 듯이 열광하다가 무릎을 삐끗했다. 촬영이 끝난 뒤 감독, 스탭들과 치킨과 맥주내기 탁구 시합을 한 적 있는데, 그때 삐끗한 게 어제 부상에 영향을 준 것 같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원작을 읽은 아내와 딸의 추천으로 출연하게 됐다고 들었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을 비롯해 여러 편을 함께했고, 은이 형(명필름 이은 대표)과는 학교 선후배이기도 하고 이래저래 명필름과 가족 관계다. 은이 형이 ‘이번에 애니메이션을 하나 만들었는데 성우 좀 해주라’ 해서 신선하겠다 싶어 ‘그래요? 대본 좀 보내주세요’ 했다. 읽어보니 재미있었다. 이미 원작을 읽은 딸이 ‘끝이 너무 슬프다. 가슴이 아픈 게 기억에 남는다’며 추천해줘서 일사천리로 조건에 상관없이 출연하기로 했다.

-정작 딸은 <마당을 나온 암탉> VIP 시사회 대신 친구들과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2>를 보러 갔다고.
=시사회 당일 아침, 아내가 아이들을 설득했다. ‘오늘은 아빠가 무대인사를 하는 특별한 날이니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보는 게 어떠냐’고 했는데 딸이 ‘싫어요. <해리 포터> 볼 거야. <마당을 나온 암탉>도 극장가서 보면 되잖아’ 하면서 거절했다. 이 대화가 들리는 곳에 있었다. 가슴이 덜컥하면서 ‘이게 뭐야. 내가 잘못한 게 많구나’ 싶더라. 오늘 아침에 언니따라 <해리 포터>를 본 작은아이가 마지막에 울었다고 하기에 ‘네가 <해리 포터>를 두번 세번을 보더라도 거기서 흘린 눈물보다 더 많은 눈물을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보고 흘릴 거야’라고 말해줬다. 그 말을 들은 딸이 쿨하게 보겠다고 하더라.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친구들을 만나고 일을 하는 등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부모 곁을 떠나가잖아. 우리 딸들도 지금 그런 과정을 겪는 중이다. 그런 딸들을 보면 섭섭하고 서운하지만 딸들이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보고나면 내게 좀더 가까이 다가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다.

-극중 맡은 역할은 늪의 공인중개사인 ‘달수’라는 이름의 수달이다.
=감초다. 가끔 암탉인 ‘잎싹’(문소리)에게 무안을 주는 등 철없고 우스꽝스러운 행동도 많이 한다. 그래도 달수는 기본적으로 여리고 마음이 따뜻한 인물, 아니 동물이다. 잎싹의 유일한 친구이기도 하고. 달수는 <마당을 나온 암탉>뿐만 아니라 동네, 직장, 정치판 등 갈등이 있는 곳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친구다.

-처음에는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설정이 아니었다고 들었다.
=은이 형이 대본을 주면서 ‘철민이가 잘하는 고향 말을 하는 게 어떠냐, 그게 훨씬 더 구수하고 친근할 것 같다’고 하셨다.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정말 그렇더라. 은유와 비유, 애드리브 등 여러 아이디어를 지문과 대사 사이에 보태 달수 캐릭터를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갔다.

-어린 친구들이 전라도 사투리를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했을 것 같다.
=그간 드라마나 영화에서 등장한 전라도 사투리는 거칠고 센 느낌이 있잖나. 원래 전라도 말은 찰지고 구성지다. 듣다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벽을 무너뜨릴 수 있고, 멀리 있는 것들을 가까이 다가오게 하는 장점이 있다. 그걸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

-목소리 연기는 이번이 처음인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
=신1을 녹음하다가 순식간에 신7을 거쳐 신13을 다녀와야 하는 게 어려웠다. 그것도 상대 배우없이 혼자서 표정과 손짓과 발짓을 목소리에 담아내면서 말이다. 최근 네티즌에게 ‘너무 오버한다’고 혼나고 있는데 ‘좀더 오버해주세요’, ‘좀더 깔깔거려주세요’라는 감독님의 요구에 감을 잡기가 힘들었다. 다행히 선녹음에서 한번 맞춰봐서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7광구> 이야기도 좀 해보자. ‘도성구’라는 시추장비 매니저를 연기했다.
=엔지니어인데다 기름밥을 먹는 친구라 거친 남자다. 근육도 있고. 김지훈 감독이 ‘근육 만들라’고 해서 석달 동안 매일 강도 높은 트레이닝은 못하고 집에서 팔굽혀펴기만 했다. (웃음) 민소매를 입기 때문에 어깨 근육만 나온다. 배는 좀 나와도 된다. 암튼 늘 팔굽혀펴기만 해서 입체적인 근육을 만날 수 있을 거다.

-김지훈 감독과는 <목포는 항구다> <화려한 휴가>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감독이다. 김지훈 감독이 입봉하기 전 수많은 연극을 함께 보고 술자리를 하면서 ‘언젠가 입봉하겠지’, ‘데뷔하면 이렇게 하자’, ‘형 역할이 참 많아’ 등 많은 대화를 나눴다. 너무 친한 게 문제다. <7광구> 때 ‘대체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야!’ ‘형, 왜 이렇게 똥 연기를 해’ 등 직접적인 표현을 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그만큼 편하다.

-이참에 결별을 하는 건….
=어, 그래서 <7광구>하고 나서 김지훈 감독이 ‘형, 우리 잠시 휴식기를 가지자’고 하더라. 이번에 준비하고 있는 블록버스터 <타워>에 나를 캐스팅 안 했다. 물론 같은 회사에서 들어가는 <코리아>에 합류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데 <타워>의 한 역할이 펑크나서 갑작스럽게 그 역할에 합류해 6회차 정도 찍었다. 사실 배우 입장에서 헤어지려고 하니 안타깝더라. (김)지훈이도 그랬나봐. ‘형, 작은 역할이라도 찾아봐야겠어. 카메오라도.’ 그러고 나는 나대로 ‘하루, 이틀이라도 우리 같이 해야겠다’ 그러고. 빈틈이 없는 스케줄이었는데 신기하게 시간이 나더라. 그걸 보면 우리는 하늘이 준 인연이다.

-대부분의 장면을 그린 스크린에서 연기한 <7광구>와 목소리 연기한 <마당을 나온 암탉> 모두 상대배우가 있다고 치고 연기한 작품이다.
=상상하면서 연기한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같은 맥락에 있다. <7광구>의 괴물을 앞에서 볼 때와 옆에서 볼 때 그 반응이 제각각 달라야 하잖아. 괴물의 촉수가 다가올 때 또 달라야 하고. 저마다 다르게 반응한다고 했는데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고, 비슷하게 보일까봐 걱정도 되고. 그동안 이야기에서 쉬어가거나 웃음을 주는 역할을 주로 연기했다. 연기 폭이 넓고 깊지 못해서 고민을 많이 한다. 대중이 나의 연기를 식상하게 여기는 건 아닌지 지겨워하는 건 아닌지 하면서 말이다. 다른 걸 찾아서 준비해보기도 하는데 어떤 시도를 하더라도 ‘박철민’의 흔적이 남아 있더라. 아, 쉽지 않구나, 이게. 여기서 스톱할까, 돌아갈까, 박수칠 때 멈출까, 모아둔 돈이 있으니 다른 직업에 도전해볼까 등 이런저런 생각들로 많이 하고 자학도 많이 하고 술로 풀기도 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그러다가 2~3일 지나면 장마가 멈추고 햇빛이 나는 것처럼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자위하면서 명랑해진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처럼 막 나서지 않지만 감초 같은 역할도 있고 <위험한 상견례>처럼 건달처럼 나가다가도 <스카우트>처럼 한 여자를 바라보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고민에 대한 답은 내려지던가.
=여태껏 해본 일이 이 직업밖에 없는데 어떡해. 확 바꿀 수도 없고. 그렇다면 앞으로 갈 길은 이 길뿐이다. 모자라지만 친근하고 구성진 이 캐릭터라도 완벽하게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배우인 것도 운명이고, 이 캐릭터를 확 깨지 못하는 것도 운명이다. 그렇다면 색다른 도전은 즐기되 설령 그게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너무 아파하지 말자. 나를 사랑하자. 이런 생각도 들고.

-필모그래피를 보니 최근 출연작이 많은 감이 있다. 안 피곤하나.
=출연작이 없을 때 한두달을 놀이터에서 애를 돌보면서 섭외 전화를 기다린 적이 있다. 너무 배고픈 시절을 보낸 까닭에 섭외 전화가 들어오면 행복하다. 가장 짜릿한 게 ‘이런 작품이 있는데 시나리오를 보내드리겠습니다’는 제작자나 감독의 말을 듣는 거다. 다양한 장르에 골고루 출연하면서 자기 관리를 하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나는 제때 한끼 먹지 않고 굶었다가 세끼 먹고, 그러다가 배탈나는 슬기롭지 못한 배우인 것 같다. (웃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간 연기한 캐릭터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늘 성장하고 있는 주인공 옆에서 따뜻하게 안아주는 형이나 삼촌 역할이다.
=후배나 자식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형인데 형 같지 않은 사람, 아빠인데 아빠 같지 않은 사람, 삼촌인데, 삼촌 같지 않은 사람 있잖아. <코리아>에서 함께 출연하고 있는 (하)지원이나 (배)두나에게도 편하게 대하라고 했다. 권위가 있으면 사람이 마음을 잘 열지 않는다. 그래서 늘 권위가 없는 편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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