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영화읽기] 야심을 버리니 힘이 실렸네
2011-08-05
글 : 이후경 (영화평론가)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2>가 보여주는 공간미가 말하는 것은

판타지나 SF영화들을 보는 낙 중 하나는 새로운 상상의 공간을 구경하는 일이다. 그곳은 지구에서 한참 떨어진 다른 별일 수도 있고, 현대도시의 디스토피아적 버전일 수도 있고, 동화 속 같은 가상세계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이 아닌 다른 공간을 들여다보는 일은 항상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해리 포터> 시리즈도 지난 10년간 그런 구경거리를 제공해주었다. 9와 4분의 3 플랫폼이 있는 기차역부터 계단이 움직이고 벽에 걸린 그림 속 인물들이 살아 돌아다니는 마법학교 호그와트,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 앞에만 나타나는 필요의 방에 이르기까지 사물의 질서가 뒤집힌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즐거움은 이 시리즈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시리즈의 최종편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2>(이하 <죽음의 성물2>)에서 새로운 상상의 공간, 가상의 건축물들을 구경하는 재미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이는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1>(이하 <죽음의 성물1>)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2편은 공간을 새롭게 확장시키기보다는 지난 10년간의 퍼즐을 완성하는 임무를 다할 따름이다. 덕분에 말 그대로 정든 학교를 떠날 때의 향수 어린 감정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새로운 공간을 디자인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은 이 마지막 편에서는 이전에 없던 색다른 공간미가 돋보인다. 특히 두 장면이 눈에 띄는데, 하나는 무너지는 호그와트의 잔해 더미를 세 주인공이 가로지르는 장면이다. 여기서는 10년의 시간이 빚어낸 공간감이 빛을 발한다. 다른 하나는 해리 포터의 사후 세계 혹은 무의식을 가공한 장면이다. 이제까지 보여준 미술과 기술의 화려한 합성미를 억제하고 화면을 비우는 역발상이 설득력있는 부분이다. 이 두 장면을 통해 이 영화가 상상의 공간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방식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세월의 힘을 활용한 공간 묘사

시리즈의 분위기를 여실히 책임져온 호그와트는 사실 텅 빈 공간에 덩그러니 세워놓은 거대한 세트에 불과하다. 마지막 결투 시퀀스를 촬영한 과정을 찾아보면 알 수 있듯이 주변 경관도 세트 사이사이에 크로마키를 세워 나중에 합성한 것이다. 심지어 필요의 방은 ‘방’도 아니다. 그저 수많은 가구들을 쌓아올려놓고 크로마키를 둘러 촬영한 뒤 벽은 나중에 그래픽으로 그려넣은 공간이다. 이렇듯 산속 깊은 곳에 호수를 끼고 서 있는 호그와트는 말 그대로 여러 가지 그림을 조합해 만든 가상의 공간이다. 그래도 영화는 이 가상의 공간에 현실의 운동감을 불어넣을 수 있어야 한다.

<죽음의 성물1>은 공간적 현실감을 세트의 조형미가 아닌 자연적 랜드스케이프에서 찾으려 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의 나열은 떠도는 인물들의 정서와 정체된 갈등의 분위기를 담아냈을 뿐 사실감있는 공간을 구축하진 못했다. 특히 론이 다쳐 순간이동을 하지 못하고 걸어서 이동하는 시퀀스에서의 시도가 인상적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폐허가 된 대형 트레일러 파크, 기괴할 정도의 풍모로 버티고 서 있는 다리, 기묘한 형태로 깎인 절벽의 이미지들은 청년기에 접어든 인물들의 복잡한 심경과 점점 스산해지는 공기를 단번에 전달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풍경들 사이의 거리를 뛰어넘는 논리가 희박한 것이 문제였다. 순간이동술을 쓰지 않는데도 인물들은 마치 순간이동을 하듯 이 풍경에서 저 풍경으로 뛰어넘었다. 그러다보니 <죽음의 성물1>은 인물들의 동선이 지워진 사진앨범 같은 인상을 풍긴다.

호그와트로 돌아오는 <죽음의 성물2>는 새로운 공간 묘사에 대한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시리즈가 내장하고 있는 세월의 힘을 활용한다. 그 힘은 세 주연배우들의 몸으로부터 나온다. 같은 10년이라도 소설이 버텨내는 시간과 영화가 버텨내는 시간의 무게가 다름을 실감케 하는 것도 배우들의 몸이다. 그들은 10년이라는 시간의 누적을 성숙한 육체, 굵어진 목소리, 천진난만함을 잃은 눈빛으로 증명한다. 이 시간의 결이 있어 <죽음의 성물1>에서 해리와 헤르미온느가 아름다운 춤사위로 서로를 쓰다듬는 장면이 더욱 빛날 수 있었다. 자신의 욕망을 직시하게 된 론의 섬뜩하고도 귀여운 상상력 또한 발육 중인 소년의 육체적 감각과 맞닿아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볼드모트의 흔적을 좇던 꼬맹이들이 이제는 필연적인 고독과 복잡한 욕망과 온갖 걱정거리를 짊어진 어른으로 자랐음을 새삼 느끼게 하는 장면들이었다. 이 소년, 소녀들의 몸이 있기에 <죽음의 성물2>에서 10년 묵은 호그와트 세트가 무너지는 장면에도 사실감이 실린다. 화면에는 미니어처 세트가 폭파 중이고 스티로폼 잔해가 날아다니는 중이다. 심지어는 그래픽 괴물이 그래픽 무기를 휘두르고 있다. 여기서 진짜는 배우들의 몸밖에 없다. 배우들의 몸이 허구의 레이어들을 가로지른다. 물론 실제 촬영 때 배우들은 세트 위에서 주어진 동선에 따라 달렸을 뿐이다. 하지만 여러 겹의 촬영분이 겹친 화면에는 감정이 담겨 있다. 떨어지는 잔해를 피해 달아나면서도 멈칫거리며 그 현장을 목도하는 배우들의 몸짓이 호그와트가 무너지는 장면을 가슴 찡하게 만든다. 세트가 무너지는 장면은 10년의 세월이 묻어나는 영화에 안녕을 고하는 장면으로 승격된다. 세트와 컴퓨터그래픽으로 세워진 가상공간과 배우들의 몸에 새겨진 시간이 만나 공간적 볼륨감을 입체적으로 살려낸 결과다.

다른 한 장면은 정반대의 전략을 펼친다. 해리 포터의 무의식 혹은 사후세계를 장면화한 부분인데 장식미를 극도로 억제하고 평면적인 공간감을 살렸다(이 글은 2D 버전을 보고 쓴 것이다. 이 장면이 3D 버전에서는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판타지영화의 야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장면이다.

최근 꿈이나 무의식의 세계를 그려낸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것은 아마 <인셉션>일 것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꿈속 공간은 세트를 말아올리고 그래픽으로 건물과 풍경을 그려 넣음으로써 완성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현란한 방법으로 완성된 공간이 과연 꿈이나 무의식의 뉘앙스를 제대로 전달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꿈이나 무의식을 장면화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은 그것이 의식의 논리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무의식을 장면화하려는 순간 그 이미지는 의식적 구조를 갖게 된다. 영화 이미지는 다분히 의식적인 작업의 산물이다. 어디에 무엇을 배치하고, 인물은 어디쯤 세우고, 각 요소들이 어떤 리듬으로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게 할 것인가를 치밀하게 계산한 결과로 나오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 무의식적 차원이 포함되긴 하겠지만 무의식 자체를 재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재현하려 드는 순간 그 이미지는 의식의 층위에서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인셉션>이 빠진 함정이며, <러블리 본즈>보다 <히어애프터>가 훨씬 훌륭해 보이는 이유다. 의식 너머에 있는 사후세계의 공간을 창조해내려는 상상력은 과하면 과할수록 우스꽝스러워 보이게 마련이다.

무의식을 설득력있게 담아내다

해리 포터의 사후세계 혹은 무의식 장면에서 이 영화는 지혜롭게도 치장을 걷어내고 해리와 덤블도어의 대화에만 집중한다. 두 인물 외에 나머지는 빛바랜 흐릿한 배경으로만 남겨둔 이 장면에서는 공간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무의식의 주인인 해리조차 그곳이 킹스크로스역과 비슷해 보인다고 겨우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덤블도어는 그것이 해리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그 말이 맞다. 이 장면에 부여된 최소한의 과제는 덤블도어와의 재회를 선택한 해리 포터의 무의식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이다. 무의식을 굳이 장면화할 수밖에 없다면 최선은 무의식의 선택을 언급하는 정도인 것 같다. 그 선택을 이미지화하기 위해 무의식의 공간을 진짜 킹스크로스역처럼 그려내고 합성하는 일은 별로 쓸모없는 노력이다. 오히려 묘사하지 않는 방법만이 무의식을 가능한 충실하게 묘사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이 장면은 판타지영화 특유의 야심을 버림으로써 호화로운 상상력을 뽐내는 최근의 어떤 영화보다도 무의식의 공간을 설득력있게 담아낸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원작 소설을 충실하게 영화로 옮기는 수준에 머물렀다는 것이 이제까지의 일반적인 평이다. 하지만 이 최종편에서는 영화가 원작에는 없는 창조적 역량을 얼마나 발휘했는지와 무관하게 지난 10년을 버텨온 영화의 구력을 맛볼 수 있다. 배우의 몸으로 허구적 공간을 돌파하는 힘,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묘사를 생략하는 결단력은 그중 일부다. 그것이 원작이 넘볼 수 없는 영화의 영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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