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심재명] 매번 선입견과 싸워왔다 앞으로도 그럴 테고
2011-08-05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마당을 나온 암탉> 제작한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

몇달 전 <씨네21>의 좌담 지면 ‘씨네산책’에 참여했던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영화 대기업들이 주도하는 현 상황에서 전문 제작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프로듀서 시스템에 기반한 기획력과 창작력이라는 사실에 공감했으며 또한 강조했다. 며칠 전, 그걸 입증하는 명필름의 결과물이 나왔다. 명필름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이다. 호평이 잇따르고 있고 관객의 반응도 상승세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마당을 나온 암탉>은 <해리 포터 죽음의 성물2> <고지전> <퀵> <퍼스트 어벤져> 등 쟁쟁하게 예고된 국내외 블록버스터들 사이에서도 예매율 2위를 달리고 있다(7월28일 기준). 물론 한편의 영화에 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해낸 그 창작력과 기획력을 주목하는 것이 특별히 필요할 때다. 그런 이유로 심재명 대표를 만났다. 인터뷰가 끝나기가 무섭게 예매율 확인을 하던 심재명 대표가 즐거운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어머, 이게 웬일이야.”

-영화 첫 시사 뒤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
=좋게 볼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심하게 좋게 볼 줄은 몰랐다. 울고불고 난리난 사람도 많고.

-프로듀서 시스템에 기반한 기획력과 창작력의 중요성을 입증한 명필름의 새로운 시도로 보인다. 전문 제작사의 역량을 보여줬다. 그 때문이겠지만 영화 한편을 두고 그 제작자에게 이렇게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도 흔치 않다.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처음이기는 하다. (웃음)

-그런 뜻에서 그간의 제작과정에 대한 제작자의 전반적인 소회부터 듣고 싶다.
=출발은 애니메이션이 필요하다는 생각 그 자체였다. 한국영화 발전 과정에서 애니메이션만 소외되고 도태됐다. 그런 것이 안타까웠다. 한편 개인적으로도 잘 만든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게다가 애니메이션은 글로벌한 콘텐츠다. 요즘 보면 디즈니나 픽사 말고도 소니, 폭스, UPI가 전부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않나. 어쨌든 명필름이 잘하는 게 남들이 잘 안 하는 걸 하는 건데, 그걸 해보고 싶었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이나 산업적 수치로만 보면 그다지 낙관적인 상황만은 아니었을 거다. 몇년 동안 한국 애니메이션은 거의 침체기에 가까웠다.
=그렇다. 나라별로 보면 한국은 애니메이션이 차지하는 비율이 0.3%밖에 안된다. 굉장히 낮은 수치다. 미국이나 일본은 20 내지 30%다. 극장 개봉영화를 목표로 만들어진 한국 애니메이션으로는 <천년여우 여우비> 이후 5년 만인 것으로 안다. 매해 실사영화가 100편 넘게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애니메이션은 생존 자체가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봤다. 이런 것 저런 것 따지기 전에 미국이나 일본도 만드는 데 우리도 그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겠나 싶었다. 이 영화가 일반적으로 할리우드에서 말하는 한줄 요약이 가능한 하이컨셉의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주제의식에서 대중성을 가질 수 있겠다고 봤다.

-원작을 읽었을 때의 첫인상이 어떠했나.
=2005년 1월이나 2월이었을 거다. MK픽쳐스 시절에 강제규 필름에서 일하던 이하나 PD와 내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수 있는 콘텐츠를 찾던 중이었다. 이하나 PD의 소개로 읽었는데, 초등학생 시절 이후에 동화책을 본 다음 울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동화책 한권이 이렇게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고 마음을 움직이다니 싶었다. 당시 내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러 다니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만날 보는 게 픽사, 지브리 아닌가. 내가 만든 자랑스러운 애니메이션을 보여주고 싶다는 제작자이자 엄마의 마음이 작동한 것 같다. 그 당시 어머니가 굉장히 아프시기도 했고. 그런저런 걸 떠나서 문학 작품 그 자체로 훌륭했다.

-도전적인 작품이기 때문에 난관도 많았을 것이다. 가장 큰 난관은 무엇이었나.
=나로서는 처음 시도하는 애니메이션이다보니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이 길고 지난했다. 관객층 설정도 어려웠다. 외부적으로는 파이낸싱이 어려웠다. 초기에는 MK픽쳐스와 명필름 자본으로 제작비를 마련했다. 애초부터 우리는 이 영화가 주류의 메이저 투자배급사가 배급을 맡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관객 수를 동원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일차적으로는 거절을 다 한번씩 당했다. 그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게 그동안 100만명 넘은 한국 애니메이션이 거의 없었고, 아무리 우리가 제작비를 적게 쓴다고 해도 손익분기점(BEP)이 150만명이니까. 다행히 경기도디지털콘텐츠진흥원,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공적 지원비 14억원이 큰 힘이 됐다.

-그럼 투자가 거의 결정된 시점은 언제인가.
=올 초. (웃음) 프로덕션의 노하우나 프로듀싱 능력도 중요하지만 아마 신생 영화사였으면 그동안 못 버텼을 거다. 올 초에 지금 버전의 70~80% 공정을 마친 뒤에 롯데엔터테인먼트에 보여줬을 때 대단하다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는지(웃음) P&A비용(극장 개봉을 위한 프린트 및 홍보, 마케팅, 유통에 들어가는 비용)을 맡아주기로 했다. 공동제공사로 나서준 거다. 그게 1월인가, 2월이다.

-예산은 늘어났나.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순제작비가 31억원, P&A 비용이 18억원, 총제작비 50억원 정도다. 원래는 지난해에 개봉했어야 하는 건데 시간과 공력을 들이다보니 1년 정도 제작기간이 늘어났다. 보통 실사를 만들 때는 우리 경험치 안에서 관리가 되는데 이번엔 그걸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26억∼27억원 정도 생각했다가 늘어났다.

-창작자와 다르게 제작자로서의 레퍼런스는 다를 수도 있다. 제작자는 상업적 효율을 염두에 두어야 할 테니까. 그런 점에서 선례를 삼을 만하다고 생각한 작품이 있었나.
=실사건 애니메이션건 그 점을 떠나서 가장 완벽한 시나리오 중 하나가 <니모를 찾아서>라고 생각한다. 그 영화처럼 대중적이고 상업적이면서도 간단치 않은 주제의식을 갖고 있는 영화를 꿈꿨다. 그래서 더 치열하게 시나리오에 매달렸다. <니모를 찾아서>의 스크립트를 다시 구해서 꼼꼼히 봤을 정도다.

-많이 받은 질문일 것 같다. 요즘 유행하는 3D 입체영화를 염두에 둔 적은 없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기획단계에서는 이미 2D를 선택했다. 당시는 컴퓨터 작업을 통한 3D의 맨질맨질한 느낌이 한국의 대자연이나 인물을 다루는 데 맞지 않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D 셀애니메이션을 선택한 거다. 제작 후반에 와서는 입체영화도 고민해봐야 하지 않나 해서 콘텐츠 5분 정도를 3D 업체에 주고 테스트도 해봤다. 하지만 단순한 컨버팅이어서 결과물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한편 최근에는 콘텐츠를 제공해주면 3D 입체영화로 만들겠다, 그걸 지금 영화와 같이 개봉하면 어떠냐, 하는 제안까지도 받았다. 역시 테스트 필름도 봤는데, 너무 짧은 시간 동안 만들면 완성도가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포기했다. 만약 3D 입체영화로 만든다면 이 영화에 들인 만큼의 시간과 공력이 새로 들어갈 거다. 흥행이 잘되면 그럴 가치는 생길 거다.

-중국에서도 개봉하지 않나.
=계약은 2009년인가 했다. 초기 단계에서 시나리오를 보고 ‘대지시대문화전파(베이징)유한공사’에서 하겠다고 나섰다. MK픽쳐스 시절 중국 극장 사업을 한 경험이 계기가 됐다. 일본은 자국 애니메이션이 워낙 강하고 다른 아시아에서는 한국 애니메이션이 낯서니까 처음부터 중국을 물색했다. 그쪽 대표가 중국에서도 가능성이 있다며 마음에 들어했다. 지금은 더빙 마무리 중이고 수입 심의가 최근 떨어졌다. 8월 말 개봉예정이다.

-중국을 넘어 다른 아시아권을 주목하는 건 어떤가.
=그렇긴 한데, 칸 마켓에 갔을 때 다소 의기소침했다. (웃음) 공격적으로 마케팅했음에도 불구하고 중동 지역 두 군데를 제외하면 큰 성과가 없었다. 여전히 낯설다고 하더라. 그래서 국내 흥행을 일단 좀 봐야겠다는 생각이다. 국내 박스오피스 성적이 일단 중요한 것 같다.

-국내 흥행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관객의 기대가 높은 작품이지만 곧장 점유율로 이어지기에는 물리적으로 경쟁작들이 너무 많다. 그 사이에서 자리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매번 선입견하고 싸워온 것 같다. 이 문제도 마찬가지다. 오늘 255개관에서 개봉했는데, 오후 5시 이후에는 극장에 시간표가 없다. 극장 프로그래밍하는 분들이 저녁에는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는다는 선입견을 갖고 계신 것 같다. 결국에는 지금 상황에서 점유율을 높여가며 그 선입견을 깨야 할 것 같다. 결과를 갖고 설득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이 영화가 5시 이전에만 해야 할 영화가 아니라고 말이다.

-무식하게 묻고 싶다. 어느 정도까지 되면 좋겠나. 상징적인 숫자가 될 수도 있다.
=박철민씨하고 농담 반 진담 반 400만명이 넘으면 프라하에 가자고 했다. 애니메이션으로서는 꿈의 스코어다. <쿵푸팬더>나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 외에는 본 적이 없는. 근데 왜 400만명이었지? (웃음). 일단은 100만명을 넘고, 손익분기점인 150만명을 넘는 게 목표다. 그 다음에는 한국 애니메이션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수치에 이르고 싶다.

-지난번 ‘씨네산책’ 대담 자리에서 명필름 10년의 계획을 잠깐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3년이나 5년 내의 계획은 어떤 건가.
=<마당을 나온 암탉>이 30번째 영화다. 3년 내에 다섯편 정도 더 만드는 거다. 그 다섯편이 각자 색깔이 분명하고 이전에 작업했던 것과도 다른 무엇이 되기를 바란다. 명필름이라는 영화사의 정체성에 부응하는 새로운 작품들을 준비하고 계획하고 있다. 당장에는 ‘건축으로 최초 조망하는 멜로드라마’(웃음)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이용주 감독의 <건축학개론>이 있고, 정지우 감독이 지금 준비하는 <은교>가 끝나면 그 다음 영화를 같이 하려고 한다.

-지난주 <씨네21> ‘편집장의 글’ 봤나.
=봤다.

-1세대 프로듀서들에 관한 후배 프로듀서들의 일각의 평가가 있는 것 같다. 요약하자면 1세대 프로듀서들은 좋은 시절 보냈다, 좋은 창작력도 보였다, 하지만 후배들이 발돋움할 수 있을 만한 시스템에의 기여는 없었다인 것 같다.
=읽고 나서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몇 천억원을 갖고 들어온 대기업과 경쟁이 되겠나. 거기서 실패한 것이지 1세대 프로듀서들의 잘못으로 영화계가 개판이 된 게 아니다. 노력했으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던 거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반성도 하고 아쉬움도 있지만 대기업이라는 공룡의 등장으로 영화산업이 바뀐 것인데 그 책임을 전적으로 1세대 프로듀서에게 묻는 건 안타깝다.

-정작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비판이 아니라 응원이었다. 선배 프로듀서로서 좋은 선례를 또 한번 남겼다는 그런 뜻으로서.
=알고 있다. (웃음) 공명심이나 소명의식까진 아니어도 선배 프로듀서로서 위험한 것에 도전하고 좋은 쪽에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명필름이 애니메이션에 도전한 것도 그런 점에서 소중하고 중요하다. 내가 1세대 프로듀서 중 한 사람이라면 거기에 걸맞은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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