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2일
픽사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거의 다 말려 올라갈 즈음이면 ‘프로덕션 베이비’라는 특이한 항목이 등장한다. 제니퍼, 피터, 이자벨, 제이콥… 보통 네댓줄에 달하는 성(姓) 없이 나열된 이름들은 영화가 제작되는 동안 태어난 픽사 직원 2세들의 명단이다. 한편의 영화는 제작에 관련된 개인들이 그 시간 동안 영위한 삶을 포함한다고 믿는 태도에는 마음 한구석을 간질이는 면이 없지 않다. 10년 내내 <해리 포터> 시리즈 전작을 제작한 헤이데이 필름의 프로듀서 데이비드 헤이만이 남긴 감회어린 고별사가 떠오른다. “그 세월 동안 아이를 낳은 스탭도 있고 타계한 멤버도 있다. 결혼한 사람도 이혼한 사람도 있었고 다툼도 로맨스도 있었다. 누군가는 그 사이에 첫 경험을 했고… 음, 아마 생애 마지막 섹스를 한 사람도 있겠지.” 헤이만씨. 대구법이 얼마나 유혹적인지 잘 알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든 예는 다소 울적하군요.
7월23일
요즘 주말 케이블 영화 채널은 교육방송 저리 가라로 복습에 열성이다. 속편 개봉을 맞아 <캐리비안의 해적> <트랜스포머>의 전작(前作)을 주파하더니 <해리 포터>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그리고 또 뭐가 남았지?- 가 10량짜리 기관차처럼 칙칙폭폭 이어 달린다. 내가 속한 직업군 입장으로 보면 더없이 유용한 서비스지만 얼마 뒤면 난 다시 각 시리즈의 ‘지난 줄거리’를 잊을 테고 2, 3년이 흐른 뒤 여름 어느 일요일 한나절을 이 영화들을 줄줄이 다시 보는 일에 바치고 있겠지. 게다가 프랜차이즈들은 더이상 ‘그리고’와 ‘그래서’로만 순순히 연결되지도 않는다. 훌쩍 ‘아버지 어렸을 적에’로 역주행하기도 하고 ‘실은 10년 전’이라는 뒤늦은 폭로가 튀어나오는가 하면 ‘한편’을 외치며 스핀오프로 펄쩍 건너뛰기도 한다. 속편과 프리퀄, 스핀오프가 어느 해보다 범람하는 올여름 스크린과 마주앉아 있으려니 이건 혹시 역사가 한 줄기 선을 그리며 앞쪽으로 흘러간다는 아이디어를 거의 폐기한 현대 관객의 의식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진심으로 궁금해하지도, 다음 시대에는 어떤 변화를 일으켜야겠다는 의지를 품지도 않게 된 건 아닐까. 혹시 역사도 얼마든지 편집할 수 있다는 환상이 우리의 시간감각에 스며들어온 건 아닐까.
7월25일
마블 코믹스의 고참 캐릭터 캡틴 아메리카의 탄생을 그린 조 존스턴 감독(<쥬만지>)의 <퍼스트 어벤져>는 <퍼스트 보이스카우트>라고 작명해도 무방했을 성싶다. 주인공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는 슈퍼히어로 클럽 명부를 통틀어 가장 평범한 회원이다. 영웅이 되기 전에는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평범한 소년이었고 어스카인 박사(스탠리 투치)를 통해 얻게 된 초능력도, 요약하면 근육이 불어나고 신진대사가 증폭된 정도이니 여타 슈퍼히어로들에 비하면 기본사양이다. 콤플렉스조차 심심하다. 약골이란 점 외에 외양의 ‘흉터’도 없으며 부모 죽인 불구대천지 원수도, 유서 깊은 변변한 트라우마도 없다. 그는 정의로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소년, 보이스카우트일 뿐이다. 아, 물론! 그에게는 성조기 색깔 문양의 무적방패가 있다. 그러나 100m 밖에서도 눈에 띄는 알록달록한 방패 뒤에 숨어 적진에 ‘잠입’하는 캡틴 아메리카를 보고 있자면 “왜 아예 쏘라고 과녁을 메고 다니지?”라고 놀리고 싶어진다. 오늘날 관객의 눈에 척 봐도 비효율적이고 거추장스러운 이 무기가 얼마나 유용한지 입증하려는 듯 캡틴 아메리카는 전투신마다 방패로 찍고 휘두르고 온갖 울트라 초특급 광선을 막아내고 부메랑처럼 던지는 다양한 기술을 선보이는데 이것이 <퍼스트 어벤져>의 ‘귀여운’ 점이다. 길거리에서 주워온 트럼펫이 쓸모없다고 식구들이 타박하자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마늘까지 트럼펫으로 빻던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신구 선생이 떠올랐다고는 말 못하겠다. 캡틴 아메리카의 천적인 슈미트(휴고 위빙)도 단순함으로는 지지 않는다. 뭐랄까, <해리 포터>의 볼드모트와 동일한 미용상의 핸디캡을 지닌 ‘빨간 해골’ 슈미트가 얼마나 악당이냐고 묻는다면 나치 사이에서도 왕따라는 설정으로 충분할 듯하다. 참고로 슈미트가 이끄는 조직 하이드라의 경례법은 ‘하일 히틀러’의 곱빼기 버전이다.
<퍼스트 어벤져>에는 건전한 장점이 여럿 있으나 죄다 기시감이 따라붙는다. 슈퍼히어로 판타지영화에 현대사의 리얼리티를 과감히 끌어들이는 시도는 <엑스맨>이 한참 전에 보여주었고, 소망어린 상상으로 세계대전의 대안적 결말을 쓰는 일은 최근 타란티노가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난장을 벌였다. 복고적 미래주의 프로덕션 디자인이라면 <월드 오브 투모로우>가 있었고 크리스 에반스의 몸을 왜소하게 바꾼 CG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시연된 바 있다. 캡틴으로 거듭난 스티브 로저스가 추격 와중에도 쇼윈도에 비친 변모한 본인의 몸을 발견하고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잘 연출됐지만 <스파이더맨>의 피터가 건물과 건물 사이를 도약하던 순간에는 비할 수 없다. 끝까지 남는 <퍼스트 어벤져>의 독창적 재미를 하나 꼽는다면 캡틴 아메리카는 정의로운 활약을 해서 대중의 스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전쟁국채를 파는 모델로 미디어 활동부터 한 연후에 전방 위문길에서 엉겁결에 군사행동을 시작한다는 점이다. 스판덱스 영웅의 역사를 돌아보는 이 자기 반영성은 <퍼스트 어벤져>가 처음 보여준 것이지만 일단 캡틴 아메리카가 전쟁 히어로가 된 다음부터는 다른 슈퍼히어로영화들과 별로 달라질 전망이 보이지 않는 점이 애석하다.
7월26일
미국 코믹스의 슈퍼히어로들을 할리우드의 중원에 안착시킨 <스파이더맨>이 나온 해가 2002년이었으니 이 하위 장르가 융성한 지 대략 10년이다. 장르의 용광로 안에서 주제와 캐릭터, 스타일이 활발히 충돌하며 정반합이 부글부글 이뤄지는 시기는 어느덧 지나고, 지난해부터 현저히 장르적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하긴 슈퍼히어로 판타지라고 별다를 것은 없다. 서부극도 갱스터도 뮤지컬도 정통 멜로드라마도 지속기간은 달랐지만 극장용 장편의 현재진행형 장르로서의 수명은 유한했으니.
7월28일
<사랑니>의 정지우 감독은 주인공 조인영(김정은)을 가리켜 일찍이 “과자 부스러기처럼 남자가 따르는”이라는 애정어린 수식어를 헌정한 바 있는데, 세상에는 과자 부스러기처럼 배우가 따르는 감독들이 있다. 개런티나 흥행수익은 보잘것없을 텐데도 그의 영화라면 배우들이 다른 스케줄을 묵살해가며 달려갈 용의를 표하는 감독 말이다. 브래드 피트, 하비에르 바르뎀, 숀 펜 같은 배우가 줄을 서고 조지 클루니 같은 스타도 출연분이 뭉텅 잘려나가는 테렌스 맬릭 감독이 대표적이고 코언 형제와 우디 앨런, 쿠엔틴 타란티노도 동류다. 크리스천 베일이 베르너 헤어초크의 신작에 열의를 표했다는 기사를 읽으며 자문해봤다. 내가 배우라면, 냉정하게, 왜 그런 선택을 할까? 기본적으론 예술도 사람들로 구성된 하나의 제도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가로 불리는 이들은 본인이 예술가라고 확신하는 사람의 주변에 머무름으로써 정체성을 확인한다. 둘째, 배우에겐 영화 한편의 성패와 무관한 호흡의 커리어가 있다. 작가의 서명이 확실한 감독과의 작업은 기획영화 못지않게 배우에게 확실한 보상을 약속한다. 예컨대 건전한 이미지의 스타는 퇴폐적 에너지를, 유쾌한 배우는 감춰진 지성과 무게감을, 대중이 미처 몰랐던 예각과 미지의 영역을 보유하고 있음을 ‘암시’할 수 있다. 이는 다음에 제안받는 시나리오의 스펙트럼에 영향을 줄 것이다. 셋째, 배우에게는 때로 두 시간짜리 작품 못지않게 관객의 머릿속에 영원히 리플레이되는 하나의 독백과 액션이, 즉 기념비적 신이 중요하다. 그것들을 선사할 수 있는 감독은 소중한 존재다. 못 믿겠다면 <토요일밤의 열기>와 <펄프 픽션>의 존 트래볼타에게 문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