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미>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렇게 알모도바르 같은 소설이 있지? 알려진 바대로 티에리 종케의 <독거미>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내가 사는 피부>의 원작 소설이다. 작가 설명을 보면 티에리 종케는 ‘프랑스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누아르 작가’라고 되어 있는데, <독거미>만 봐서는 감이 잘 안 온다. <독거미>는 너무 알모도바르‘스러워서’ 장르를 따지는 게 옳은가 싶을 정도다.
애석하게도 영화에 대한 기사들은 심각한 스포일러 덩어리이므로, 아직 <내가 사는 피부>와 <독거미>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읽지 말고 책을 펴시길. 나로 말하면 기억력이 꽝인 덕에 순결한 뇌세포를 굴려가며 <독거미>를 읽었는데, 안 그래도 열대야에 시달리는 여름밤에 악몽을 선사받았다. 그런데 그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더라는 말이다. 그건, 알모도바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만이 느끼는 잔뜩 뒤틀린 미적 황홀경이다.
한 남자가 있다. 리샤르 라파르그, 그는 중년의 성형외과 의사다. 그는 이브라는 여자와 함께 살고 있는데, 리샤르는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면서 이브를 다른 남자에게 팔곤 한다. 또 한 남자가 있다. 그는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그는 영문을 알지 못한 채 납치당하고 사육당한다. 그리고 마지막 남자가 있다. 알렉스 바르니라는 이 남자는 은행강도를 한 뒤 부상을 입고 도망다니는 신세다. 이 세 남자가 한방에서 만나기까지의 사연이 <독거미>의 줄거리인데, 여기에는 대화가 거의 없다. 묘사와 독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설명없는 심리 묘사를 통해 상황에 대한 이해보다는 등장인물이 느끼는 기분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데 중점을 둔다.
책을 다 읽은 뒤, 칸에서 영화를 본 이화정 기자에게 영화에 대해 물었다. 영화와 책이 달라지는 부분을 알고 나니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알모도바르에 대해 알겠다고 생각한 내가 한심하다. 영화는 책보다 한발 더 나아가고, 몇번 더 깊이 찌르고, 벌겋게 드러난 것들을 세상 밖으로 밀어낸다. 그렇게 <내가 사는 피부>는 <독거미>와는 비슷한 듯 보이면서도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된다. 복수극이면서도 사랑 이야기이고, 신경쇠약 직전의 누군가를 그리는 듯하면서도 한 인간이 자신을 향해 단호하게 귀향하는 이야기다. 각각의 제목이 상징하는 바를 생각하면 이 두 작품이 얼마나 서로에게서 멀리 있는지 알 수 있다(더 말하면 책읽는 재미를 망칠 것 같아서 입은 꾹 다물련다). 영화가 개봉하면 책과 영화를 모두 본 사람들과 얘기를 하고 싶다. 둘 사이의 틈에 대해, 좁아보이는 틈이지만 끝내 가닿을 수 없는 알모도바르가 마지막 장면들에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이유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