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균 감독, 아니 윤제균 대표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난 8월4일, 개봉을 오전에서 오후로 반나절 연기하는 초유의 사례를 낳았던 <7광구>가 개봉 5일 만에(8월9일 현재) 150만 관객을 돌파하며 주간 흥행 1위를 기록했지만 동시에 인터넷상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반면 앞서 개봉한 <퀵>은 부지런한 뒷심을 발휘하며 250만 관객을 돌파했다. 모두가 2011년이 윤제균 대표와 JK필름이 <해운대>를 떨치고 일어서는 원년이 되리라 예상했다. 아직 그 목표와 성과에 대해 서둘러 얘기할 단계는 아니지만 지난 몇달 사이 부쩍 초췌해 보이는 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자신의 3년 만의 연출작 <템플스테이> 준비차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 JK필름에서 그를 만났다.
-무척 피곤해 보인다.
=너무 마녀사냥식으로 악플들에 시달려서 이거 원. (웃음) 제대로 된 얘기를 해주시는 기자나 기사도 있지만 영화를 안 본 게 분명한 사람들이 감정 섞인 비난을 하는 건 좀. 영화 속 괴물은 막판에 한번 정도 변신을 하는데 어떤 네티즌은 ‘괴물이 계속 변신을 해서 나타나는데 CG가 허접하다’는 식으로 얘기도 하고, 분명 일반 시사가 없었는데 마치 본 것처럼 악의적으로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런 일을 안 겪어본 것도 아니지만 이번에는 좀 세게 다가온다.
-그럼 가장 맺힌 얘기부터 시작하자. (웃음)
=개인적으로 CG 기술에 대한 비판은 좀 받아들일 수 없다. 관련된 할리우드 회사들에서도 만족을 표했고, 아이맥스 본사에서도 <7광구>의 테크놀로지에 대해 검증했기 때문에 국내 최초로 아이맥스에서 인증받아 3D 상영을 할 수 있었다. 모팩을 중심으로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든 괴물의 퀄리티도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괴물까지 허접하다고 맹폭을 당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 얘기를 많이 하는데 <괴물> 마지막 장면에서 불타는 괴물의 모습은 지금 보면 어색하다. 그에 비하면 모팩이 만든 <7광구>의 괴물은 월등히 나아졌다. 물론 기술 그 자체만 보고 하는 얘기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모팩의 노고를 생각하면 억울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아무리 영화 자체와 분리되기 힘든 것이라 해도 향후 3, 4년간 3D영화가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JK필름으로서도 열심히 손익계산서를 작성하고 있다. 아무래도 그런 시도에 대해 앞으로 투자가 힘들다면 우리가 제작한 작품 중 <하모니>나 <내 깡패 같은 애인> 같은 쉬운 길로만 갈 가능성도 있다.
-<7광구> 개봉을 오전에서 오후로 연기한 건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기자시사 때 너무 어둡다는 얘기가 많았다. 밝기를 조정하고 3D도 눈을 편안하게 하는 쪽으로 밸런스를 맞추느라 부득이하게 그런 결정을 내렸다. 3D로 수정 작업하는 게 상상 이상으로 너무 복잡하고 힘들더라. 2D는 해당 컷에서 CG 수정만 하면 되는데 3D의 경우 앞뒤의 입체값 밸런스를 다 바꾸고 해야 하다보니 소요시간이 어마어마하게 걸렸다. 제임스 카메론이 <아바타>를 최종 완성하는 데 10년 걸렸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 것 같다.
-극장 개봉 버전을 보니 하지원의 비키니 일광욕 장면 등 영상 퀄리티와 별개로 덜어낸 장면들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마지막에 일본과의 영토분쟁을 의식한 것 같은 자막이 삽입되기도 했다.
=그 일광욕 장면뿐만이 아니라 <사랑이 저만치 가네>가 흘러나오는 치순(박영수)의 초반 코미디 장면 등 몇 장면을 더 편집했다. 시사 이후 어떻게 더 만져야 할까, 안간힘이라고 해야 할 만큼 너무 많은 고민을 했다. 편집 순서가 바뀐 건 없고 여러모로 총체적으로 점검했다고 보면 된다.
-개봉 이후 평들을 보면 3D 효과에 대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관객의 지적도 많다.
=3D 효과에 대한 평들을 들으면서 이게 참 많이 어려운 작업이구나, 하는 걸 느꼈고 한편으로는 힘들고 어려운 일에 도전한 것에 대해 먼저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 외롭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건 각자의 판단이니 그 감상에 대해 내가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괜찮은 초반 흥행성적을 보여준 것을 보면, 분명 영화를 즐기고 도전에 박수를 쳐주는 분들도 많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상으로 맹폭을 당하고 있는 입장에서 너무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개봉한 지 얼마 안됐으니 아직 갈 길이 멀고 결과는 더 지켜봐야 한다.
-물론 제작자의 위치이긴 하지만, <퀵>과 비교하자면 분명히 <7광구>의 시나리오에도 관여했는데 박철민과 송새벽 등 코미디에 관한 한 폭발력있는 배우들을 잘 다루지 못한 느낌이다. 제작자가 어디까지 관여하는지 외부에서 판단할 바는 아니지만, <퀵>의 코미디에서는 당신의 색깔이 많이 묻어났다면 <7광구>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가령 박철민이 “박스 치워!”를 “박수쳐”로 알아듣는 건 당신의 아이디어 같은데, 송새벽이 이전 모습 그대로 식상하게 등장하는 것을 당신이 가만히 놔뒀을 것 같진 않고, 아무튼 <퀵>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두 작품 모두 시나리오 단계에서 참여한 건 맞다. 말 그대로 시추선의 밀폐된 공간, 한정된 인물 등 코믹한 요소를 넣으려면 한도 끝도 없이 넣을 수 있다. 그런 점에 대해서는 시나리오의 여러 버전들을 제대로 잘 조화시키지 못한 측면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애초 김휘 작가의 버전은 스릴러 중심이었고 나는 재미 중심이었다. 또 김지훈 감독은 휴먼드라마쪽이었고. 그럼에도 메시지와 감동을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을 다들 했다. 그러면서 재미보다는 다른 장르적 요소에 더 포커스를 맞췄다. 아마도 당신이 얘기한 그런 점들은 윤제균 감독이 제작하면 일단 코미디로서 재미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들을 많이 해서 그런 게 아닐까. 인터넷을 보니 윤제균의 코미디도 이제 약발이 다 됐네, 하는 얘기도 있다. <7광구> 감독을 나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되는 거다.(웃음)
-<퀵>으로 넘어가보자. 조범구 감독이 당신에게 전적으로 기댄 부분이 많다고 스스로 말하고 다녔을 정도다. 감독과 제작자의 경계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퀵> 또한 시나리오 단계부터 참여했고 조범구 감독은 그냥 동생처럼 계속 손을 벌렸다. 상업영화감독으로서 가져야 할 현명함이 있다고나 할까.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면서 정말 제작자나 감독의 관계가 아니라 뭐든 나한테서 빼먹을 건 다 빼먹으려고 했다. (웃음) 그러면서도 고집부릴 건 끝까지 부리고. 코미디적인 부분에서는 거의 전적으로 내 입김이 작용한 게 맞다.
-<색즉시공>부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한 코미디를 즐겼다.
=‘박스 치워’를 ‘박수쳐’로 알아듣는 건 실제 있었던 일이었고(웃음) <퀵>에서도 헬멧을 벗으면 안되니까 헬멧 쓴 채로 울면서 샤워하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코드들이다. <퀵>의 마지막 공항철도 장면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총을 끌어오기 위해 발가락에 칫솔을 끼워서 당겨오는 장면이 있는데, 그건 좀 오버한다고 해서 촬영까지 했다가 뺐다. 그런 것이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꽤 되는 개그들이다. ‘윤제균식 코미디’라는 얘기도 많이 해주시는데, 그게 뭘까 나름 생각해보니 보통의 코미디는 관객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수준 안에서만 움직이는데 나는 진폭이 커서 그렇지 않을 때도 꽤 된다는 거다. 그럴 땐 나 스스로 미친 듯이 웃기는 장면이라고 생각해도 속으로 누르는 게 있다. 사람들 마음은 다 똑같다. 욕 안 먹고 싶다는 거. 코드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되게 싫어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분명 위축되는 게 있다.
-<해운대> 이후 제작자 윤제균으로 긴 시간을 보냈다. 감독과 제작자의 위치를 오가며 느끼게 된 점이 있다면.
=감독들끼리 모이면 늘 하는 얘기란 게 뻔하다. 작품성과 상업성에 대한 고민인데 솔직히 나는 상업성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 굳이 코미디를 떠나서 관객을 불러모으는 재미난 영화를 언제든 만들 수 있다는 감을 믿고 산다. 그런 거라도 없으면 어떡하나. (웃음) 반면 그런 인정을 받으면서도 작품성에 대한 콤플렉스도 동시에 있다. 그래서 그 두 가지가 늘 조화를 이루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실제로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을 (민)규동이와 함께하면서 그 두 가지가 믹스되는 행복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지금 준비하고 있는 <미스터 K>가 상당히 기대된다. 이명세 감독님이 그동안 너무 흥행에 목마르셔서 그런 점에 관해 굉장히 적극적이고 열려 있다. 나 또한 그런 점에서 큰 도움을 드리고 싶고. 8월이 끝나기 전에 시나리오 완고가 나올 예정이다.
-조범구 감독은 제작자로서의 당신의 영업비결을 ‘비굴함’이라고 하더라. (웃음) 그런 자세로 JK필름의 현재와 미래를 담담히 돌아보면 어떤가.
=맞다. 무조건 그렇다. (웃음) 나 스스로도 젠체하는 스타일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젠체할 것도 없고. 아무리 후배감독의 영화를 제작하더라도 제작자는 그 영화의 스탭이라고 생각한다. 난 또 원래 시나리오작가 출신이라 그 영화의 작가이자 어시스턴트라고 생각한다. 또한 영화 바깥에 대해서는 방패막이라고 생각하고. 그러다보니 감독의 요구를 어지간하면 다 들어주는 편이다. 그러면서 ‘JK필름의 영화는 재미있다’는 신뢰를 관객과 투자자 모두에게 지속적으로 주고 싶다. 내가 오래 가고 회사가 오래 가려면 그런 신뢰가 굳건하게 서 있어야 한다. 그리고 JK필름은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 자신이 상업적인 마인드가 투철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굳이 여기로 올 필요는 없고, 좀 떨어지는 분들과 행복한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딘가 나와 비슷한 사람과는 오래 갈 자신이 없고 좀 다른 분들과 작업하는 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다. 아무튼 JK필름 로고의 기차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할 때다.
-직접 연출하는 <템플스테이>는 어느 정도까지 진행됐나.
=헤이그먼 형제와 마지막 시나리오 회의를 하기 위해 내일 미국으로 떠난다. <템플스테이> 역시 영어 영화라는 점에서 새롭게 도전하는 영역이고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할 거다. 세계시장과 정면으로 맞부딪히는 작품이라 결과가 어떨지 무척 궁금하다. CJ와 할리우드의 1492픽처스 등과 공동제작 형식이고 나는 말 그대로 콘텐츠를 맡아 정말 신인감독 같은 기분이다. 하반기에 캐스팅까지 끝내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갈 것 같다. 내가 얼마나 할리우드 키드였는지 영화를 보면 알게 될 거다. 세계 그 어디서도 보지 못한 가족 어드벤처 무비를 만드는 게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