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 보일의 영화는 음악도 감각적이다. 주로 스코어와 삽입곡의 대비를 통해 메시지를 강조하는데 <127시간>도 그랬다. 아론 랠스턴(제임스 프랑코)은 오른팔이 바위에 끼어 꼼짝 못한 채 127시간을 보낸다. 그 시간이 영화의 전부다.
인상적인 건 그의 심리 변화다. 처음엔 어이없어하다가 시간이 지나자 겁에 질린다. 그러다 침착하게 상황을 개선시키려 애쓴다. 하지만 가능한 시도가 죄다 실패하자, 좌절하고 포기한다. 이게 다 꿈이라면, 뭐 그런 쓸데없는 기대도 품는다. 삶의 모든 난관들, 가령 기말시험이나 화가 난 애인이나 대출금 상환일 혹은 원고마감 같은 고난에 대한 우리 마음과 똑같다. 천재지변에 바위가 스윽 밀리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천만에, 팔이라도 자르지 않고선 도대체 여기서 벗어날 길이 없다.
스릴 넘치면서도 몽환적인 스코어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A. R. 라흐만이 맡았다. 현실에는 스코어, 환상에는 사운드트랙으로 대비된 구성이 강렬하다. 영화의 주제는 ‘포기하지 말 것’ 그리고 ‘만일에 대비할 것’이다. 요컨대 시험공부를, 애인의 기분을, 적금을, 또 원고를 미리 준비할 것. 혹시 모르니 ‘대안’도 찾아둘 것. 그러니까 역시, 자격증을 딸걸 그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