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공공의 적> 냉철한 살인마 이성재
2002-01-11
글 :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사진 : 이종근 (한겨레 기자)

오락 활극은 악역이 돋보일수록 영화가 산다. <다이하드 3>에서 이지적인 노신사 제레미 아이언스가 국제 테러범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 영화의 긴장감은 한껏 고조된다. 오는 25일 개봉하는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에서 제목 그대로 `공공의 적`인 악한은 학력과 재력, 안정된 가정을 고루 갖춘 펀드매니저이다. 일단 여기까지는, <미술관 옆 동물원> <하루> 등의 멜로물에서는 물론이고 <신라의 달밤>처럼 조직폭력배의 두목역을 맡아도 모범적이고 단정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성재(32)씨의 이미지가 들어맞는다.그러나 헬스클럽에서 이 악물고 몸을 단련하며 자기 근육에 도취되고, 소수자나 패배자를 인간 쓰레기 취급하면서 성질이 뒤틀리면 사소한 다툼을 갖고도 살인을 서슴지 않는 싸이코로 돌변할 때는 어떨까. 나아가 이 인물은 돈 문제로 자신의 부모를 살해한다. 이씨의 순해 보이던 눈이 광기어린 잔혹함과 확신범의 카리스마, 지능범의 교만함을 화면 가득 뿜어낸다. 이씨는 친부모까지 죽이는 한국영화 사상 가장 악한 역할을 맡아, 영화의 극적 긴장감을 살려냄과 아울러 정형화돼 가는 것 같던 자신의 이미지에도 탄력을 불어넣었다.“그런 류의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가진 사람들이, 자신과 자기 가족만 소중하게 여기고 자기보다 못한 이들은 벌레 취급하고…. 전에는 장르영화를 하면서 장르의 특성에서 벗어나는 역할, 예를 들어 <주유소 습격사건>이나 <신라의 달밤>처럼 코미디인데 코믹하지 않고 진지한 역할을 하게 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악역을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 악역 중에서도 정말로 나쁜 인간. 이미지의 변신을 꾀한다기보다 평소에 내 안에 사악함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생각 속에서이고 그걸 표출하지는 않지만.” 이씨는 약간의 아쉬움도 있는 듯했다. “캐릭터를 좀 더 드러내는 디테일들이 있는데, (설경구씨가 연기한) 경찰 강철중을 중심으로 영화를 끌고가면서 많이 생략됐다. 이 인간이 왜 이렇게 됐는지 설명이 안 되는 부분 같은 게 조금 아쉽다.”“악역이 캐릭터가 분명해서 연기하기는 쉬웠다”는 이씨는 이 역할 때문에 곤욕을 한번 치렀다. 시사회장에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함께 봤는데, 어머니가 “앞으로 이런 역할 하지 마라”고 성을 냈다. “순하고 감동적인 영화를 좋아하시는데, 부모까지 죽이는 역할이다보니 그럴 만했지만 속으로 섭섭했다. 나중에 집에서 얘기가 잘 됐다.”이씨는 방송국 공채 탤런트를 거쳐 98년 <미술관 옆 동물원>으로 영화에 데뷔한 뒤 3년반 동안 7편에 출연하는 바쁜 생활을 보냈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까지가 내 연기의 1기가 아닐까 싶다. 어찌보면 조금 가볍고 대중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말초적인 면도 있는 영화가 많았는데, 앞으로는 조금 더 인간냄새가 나는 영화들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계획을 짜고 그렇게 한다기보다 내안에 이는 욕구가 그렇다.”실제로 만나본 이씨는 배우라기보다 영화촬영장이라는 직장에 다니는 회사원으로 느껴질 만큼 차분했다. 자신을 연출해 보이려는 태도는 털끝 만큼도 찾기 힘든, 안정된 모습이 신뢰감을 주는 스타일이었다. “사춘기 때도 조용한 모범생이었다. 집안도 보수적이고. 남녀공학에 다녔는데 공부에 방해될 것 같아 연애는 물론 방송반 활동까지 자제했다. 조금 후회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도 단조롭게 산다. 영화 쉴 때는 운동하고 세차하고. 세차할 때 마음이 편하다. 술은 찾아서 마시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운동 끝나고 통닭에 맥주 마실 때는 참 좋다. 행복하다. 이렇게 얘기하면 배우로서 신비감이 없어져서 안 좋다고 주변에서 말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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