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은 철폐되어야 한다. 누구든 부정하게 구속받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원칙은 종종 무시된다. 성별이나 피부색에 따라 정치적 견해나 세계관에 따라 사람들은 차별받고 억압받는다. 그런데 이게 오직 인간에게만 주어진 권리일까.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되묻는다. 게다가 영리하게도 이런 발칙함을 ‘자유를 위한 투쟁’이란 보편성 뒤에 감춘다. 이때 유인원 시저는 ‘좋은 대우를 받는 노예’의 이미지로 재구성되며 인류 역사의 ‘혁명의 순간(들)’을 환기시킨다.
따라서 이제까지 주로 시대극을 맡아온 패트릭 도일이 영화음악을 맡은 건 자연스럽다. <헨리 5세>나 <토르: 천둥의 신>에서처럼 주변부를 배회하던 관현악이 타악기를 좇아 중심부로 모여들다가 순식간에 폭발한다. 이런 구성 속에서 진지한 주제는 더욱 부각된다.
그런데 영화에서 가장 인간다운 건 시저다. 보편적 자유를 위한 투쟁, 자유의지에의 발현, 심지어 포용적인 리더십과 합리적 판단 등 모든 면에서 그렇다. 연관해 <Caesar’s Home>이 흐르며 ‘인류 종말의 과정’을 보여주는 엔딩은 충격적이면서도 카타르시스를 전한다. 그러니까 지구적 관점에서, 인류 따위는 차라리 멸종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뭐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