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 <오직 그대만>은 전직 복서와 시각장애인 여성의 사랑이야기다. 캐릭터와 내용을 볼 것도 없이, 제목만으로도 통속과 상투 등의 단어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오직 그대만>을 연출한 이는 <마법사들> <거미숲> <깃> 등을 통해 아예 실험적이거나, 상업영화 안에서 자기만의 기묘한 세계를 담아왔던 송일곤 감독이다. 개막작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은 그에게 주로 ‘의외의 선택’에 대한 질문들을 던졌다.
-영화의 전당 야외상영관에서 공식 상영되는 첫 영화다.
=어제 스텝들과 함께 사운드 테스트를 하면서 봤는데 매우 놀랐다. 이 공간이 한국영화의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장소가 될 것 같다. 이런 곳에서 우리 영화가 처음 상영된다는 게 기분이 묘하더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고 영광이었다.
-<오직 그대만>은 전작들과 비교할 때, 상당히 성격이 다른 작품이다.
=일단 도시를 배경으로 한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친한 장현성이라는 배우가 조그만 주차박스에서 한 남자가 주차 관리원을 하고 한 여자가 드라마를 보기 위해 매일매일 주차박스를 찾는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그 이야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 아이템이 좋았던 게 주차박스라는 공간이었다. 많은 사람이 얽히고설키며 살아가는데 주차박스에서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시작된다는 것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또 하나의 출발은 찰리 채플린의 <시티라이트>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다. <오직 그대만>도 2011년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위해 사랑을 바치고,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진심으로 기다리는 이야기가 됐으면 했다.
-이야기는 통속적이지만, 진부한 통속성을 벗어나려한 연출이 눈에 띄었다. 시나리오를 쓸 때, 그리고 연출을 하는 과정에서 주안점을 둔 건 무엇이었나.
=일단 시나리오는 매우 짧은 시간에 썼다. 초고를 1주일 만에 썼으니까. 그런데 말 한대로 너무나 오래전부터 만들어진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하더라. 고심한 끝에 무엇보다 장철민과 하정화라는 두 캐릭터의 진심이 관객에게 잘 전달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직 그대만>이 배우 의존도가 높은 영화가 된 게 그 때문이다. 훌륭한 조연들이 있지만, 소지섭과 한효주는 이 영화 속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끌고 간다. 이들이 안 나오는 장면이 하나도 없을 정도다. 그때그때 순간의 진실한 감정을 담아야했고, 그래서 그들과 호흡을 맞추는 데 가장 큰 중점을 두었다.
-<오직 그대만>은 사실상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는다. 이 전에 만들던 작품의 성격 때문에라도 이러한 결말이 과연 맨 처음 의도였을지 궁금해지더라.
=마지막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처음부터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이야기 아닌가. 하지만 통속적이고 상투적인 이야기도 시대에 맞게 변주되면서 반복되기 마련이다. 그런 이야기를 지금의 시대가 필요로 하는 감정으로 만드는 게 중요했다. 앞부분의 모든 장면들이 마지막 컷을 위해 달려가도록 대본을 썼고, 촬영했다.
-주인공의 직업과 공간 등에 담겨있는 사회적인 여러 단상이 눈에 띄었다.
=나로서는 인물들만큼이나 지금의 도시가 중요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철민이 생수를 배달하는 일이나, 정화가 콜센터에서 일한다는 설정은 그런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이미지들이 배우의 뒤에 배치되기를 바랐다. 무엇보다 중요한 게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하는 감정이었다. 어떻게 보면 진짜 중요한 감정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시대 아닌가. 영화도 자극적인 영화만 나오고 있고,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모든 게 극한을 향해서만 달려가는 것 같다. 우리가 생각해오던 게 무엇이었는지를 망각하고 있다. 온갖 욕망으로 점철된 도시 속에서 우리가 알고 있던 사랑이란 감정도 먼 구세대의 소유물이 된 것 같다. 가장 보편적이고 단순한 감정의 이야기를 먼저 드러내고 싶었다. 이 영화의 감성이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이런 이야기가 유효할 수 있다고 본다.
-스스로 전작들과 비교하자면 <오직 그대만>은 어떤 의미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내가 아직은 젊은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일찍 시작했을 뿐이다. 그리고 처음 10년 정도는 내가 꿈꾸던 영화를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껏 만들었다. 하지만 <오직 그대만>에도 내가 꿈꾸는 영화의 요소들은 모두 들어가 있다. 단지 스타일상의 변화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스타일이 꼭 그리 중요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무엇보다 장철민, 하정화란 캐릭터를 두 배우에게 이입시켜서 관객들에게 진심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영화적인 스타일은 내용에 따라 어떻게든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내 영화들이 조그만 공방에서 빚어낸 도자기 같은 작품이었다면, <오직 그대만>은 더 무게 있고, 더 크고, 더 손이 많이 간 작품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