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터뷰]
[김도훈의 가상인터뷰] 찬란했던 과거는 가슴에 묻어두고
2011-10-12
글 : 김도훈
<코쿠리코 언덕에서>의 카자마 슌

-많이 늙으셨네요. 영화에서는 빛나는 고교생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때는 1963년이었으니까요. 지금은 예순이 넘은 영감이 다 됐습니다. 오지상이죠 이젠. 하아….

-요즘은 뭘 하고 지내십니까. 당시에는 피가 팔팔 끓는 청춘이었잖아요. 분명히 열혈의 젊은 날을 보내셨을 것 같아요.
=그땐 그랬죠. 도쿄대에 입학했는데 당시 일본은 학생운동 전공투의 시대가 막 시작되고 있었죠.

-뜨거운 시대였습니다! 그땐 일본의 젊은이들이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학원 민주화를 요구하며 일본 역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전국적 혁명운동을 일으켰잖아요!
=특히 제가 도쿄대 다니던 1969년에 야스다 사건(학생들이 도쿄대 야스다 강당을 점거하고 일본 경시청과 무력 충돌을 일으켰던 사건)이 벌어졌고, 저도 그 역사의 현장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싸웠습니다. 그땐 우리 모두가 화산처럼 분노하고 억새처럼 버티며 투쟁했더랬죠.

-그러나 전공투 시대는 금방 막을 내리고 말았는데, 그것도 학생운동 조직 내분에 의한 자멸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특히 학생들이 서로를 숙청했던 아사마 산장사건은 정말….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저는 학생운동을 그만두고 취직을 했거든요.

-어… 어디요?
=소니였습니다. 좋은 시절이었죠. 패전국 일본이 세상을 바꾸던 시절이었다고나 할까요. 나 같은 젊은이들 역시 학생운동의 열정을 위대한 일본의 미래로 전환하며 앞으로 앞으로 달렸지요.

-하지만 그건 젊은 날 동아리 건물을 지키기 위해 고압적인 기성세대와 싸웠던 젊은 카자마 슌의 미래로는 도무지 어울리지가 않는걸요.
=당신도 이제 30대 중반 아니신가? 사람이 나이가 들면 항상 화만 내며 살 순 없는 법이지. 한 국가의 국민이라면 국가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생산적인 일에 인생을 바쳐야 한다고.

-그럼 코쿠리코 언덕에서 애틋한 순정을 나누던 마츠자키 우미양과는….
=마츠자카? 누구? 그런 여자랑 사귄 적이 있던가 내가….

-슬프네요. 인생이란 이런 것인가…. 그럼 요즘은 어떻게 사십니까.
=버블시대가 시작되면서 정리해고당하고 지금은 그냥 공원에서 살고 있어. 박스로 만든 집에 살면서 밥도 해먹고. 일본엔 복지제도도 없냐고? 한국에는 그런 게 있나? 있을 뻔했는데 없어지고 있다고? 거봐. 여기나 거기나 다를 것도 없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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